내 고교생활을 두 글자로 표현하자면 ‘핑계’이다. 길게 풀어서는 ‘수능이라는 핑계’이다. 수능 외의 모든 일에는 무관심하고 불성실했다. 나를, 우리 가족을 행복하게 하는 일은 그저 대학을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외의 모든 일들은 내 관심 밖의 일들이었다. 대학에 가는 것만이 고등학생인 내게 유일하고 절대적인 과제였다.자유가 있었다. 술이 좋았고 어울리는 사람이 좋았다.

첫 학기 학점은 엉망이었다.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개인은 사회 앞에 너무도 작았고, 내가 지금껏 찾아왔던, 바라왔던 것은 본래 없던 것이었다. 나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 대학을 택했다는 생각은 사실이 아니었다. 미디어와 사회구조는 좋은 대학을 나오는 것이 ‘소득이 높은’ 계층에 편입시켜준다는 프레임을 우리 가족에게 주입시켰고, 나 역시 이러한 프레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인식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나의 대학생활은 경제적으로 부모님께 의존하였고, 그렇기에 나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할 의무가 있었다. 경제적인 의존에 기인한 죄책감과 공부하는 것에 대한 허무함,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 그리고 게으름이 1학년 대학 생활의 전부였다. 부모님의 예상은 잘못되었다고, 실은 누군가 우리를 꾀고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잔인했다. 나는 부모님 앞에서 솔직할 수 없었다. 아래는 그 시절의 어느날, 내가 남긴 일기이다.‘산을 보러 간 곳에는 사람이 많았다. 모두 산을 오르는 중이었다. 산 정상을 기대하며 열심히 올랐다. 앞사람의 등만 보며 앞을 올랐다. 같은 곳을 보며 함께 산을 오르는 사람이란, 내 앞뒤로 위치한 경쟁자일 뿐이었다. 말 한마디 없이 산을 올랐다. 긴 시간 끝에 그들은 산 정상에 도착했다. 발 아래로 내가 올라온 길과 내 뒤를 이어 올라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개운함으로 소리를 내질렀다. 그런데 이내 불안함이 찾아왔다. 산 위에서 무엇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무언가를 꼭 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다시 사람의 무리에 휩쓸려 산을 내려왔다. 정상에서 내지른 소리의 메아리가 채 닿기도 전이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어머니의 말을 빌리면 우리 가족은 조금씩 포기하는 중이다. 밖에서 우리를 꾀는 소리에 귀를 닫는 중이다. 몇해 전 아버지는 정리해고 통보를 받으시고 어머니는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셨다. 어쩌면 사회적으로 가장 활동적인 나이에서 한 발짝 뒤로 나온 50대가 되어서일지도 모른다. 이제 더 이상 수능과 취업 따위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다이어트, 아버지와 내가 갖는 술버릇의 공통점, 아들이 만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다. 서로의 삶에 집중하고 놓쳐왔던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우리의 모습이 멋있다. 우리는 안으로 조금씩 더 단단해지는 중이다.나의 대학생활에 큰 변화는 없다. 여전히 성실한 학생은 아니다. 하지만 더는 부모님과 내가 빠져있던 그 간극에서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속한 사회를 더는 미화된 모습으로 보지도 않는다. 누가 만들어 놓은 엘리트라는 개념에 나를 끼워 넣으며 애쓰지 않는다. 지금까지 내가 그렸던 미래가 내 생각 없이 만들어진 모습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고민한다. 아직 나는 젊고, 어리다. 그래서 스물 셋을 더 많이 고민하고 부딪히고 즐기는 중이다. ‘부담감을 즐기자’ 그리고 ‘더 열심히 움직이고 더 많이 접하자’라고 되뇌인다. 

강의실 앞에 수십 개의 ‘등’이 있다. 분명 다시 새로운 무리의 ‘등’이 들어오고 나갈 것이다. 얼굴을 감춘 ‘등’들은 모두 칠판만을 바라본다. 대답 없는 등에 말 한마디 걸자. 남들이 칠판을 볼 때 옆 사람을 보자. 타인들 속의 대학 생활은 내가 싫다. ‘남이 아닌 님들과의 대학생활을 만든다.’ 내가 할 일이다.      

채태준 학생
영어영문학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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