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사색에 처음 글을 쓴 것이 1996년으로 기억한다. 제목이 원래 ‘개판세상’이었는데, 너무 자극적이었는지 중대신문 측에서 제 맘대로 고쳐버렸다. 화가 났지만 이미 인쇄까지 마친 마당에 뾰족한 수가 없었다. 다신 중대신문에 글을 쓰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서운함을 대신했다. 어쨌든 당시 30대 초반의 병아리 교수 눈에 비친 대학의 모습이 제목과 같았던 모양이다. 그땐 젊디 젊었던 터라 대학사회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는 열정이 컸었다. 그러나 내가 겪은 대학의 현실은 편해도 너~무 편한 ‘유토피아’였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대충 살아도 불편함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살아야하는 분위기였다. 대학 순위가 추락하고 입시 시장에서 무시를 당해도 우리는 낙원의 산해진미와 포도주에 취한 소피스트들처럼 희희낙락했다. ‘월급은 적지만 아무런 간섭이 없는 것’을 우리 중앙대의 장점이라고 떠들지 않았던가!
 
  나이를 먹어 기억력이 나빠진 걸까? 절대 쓰지 않기로 한 다짐을 잊어버리고 2005년에 두 번째 글을 썼다. 내용인즉, 예전에 우리는 ‘역동(Dynamic) 중앙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했고, 대학본부는 학교 발전의 제대로 된 밑그림을 그리지 못했고, 교직원들은 겉으로 발전을 외치면서 속으론 개개인의 이익에 따라 철밥통을 지켜왔고, ‘이태백시대’가 되어도 학생들의 면학태도는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전보다 나이를 먹었는지 이 글에서 나는 ‘의와 참’ 정신을 근간으로 교격(校格)을 업그레이드시켜 ‘매력 중앙대’를 만들자는 희망을 품어보았다.

  그리고 세 번째 글을 쓰는 올해, 마침내 우리 대학은 교육부가 지원하는 4대 정부재정지원사업을 모두 성공적으로 추수하는 결실을 이루었다. 실로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우리 대학이 과거 100년 역사에서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새 역사의 창조이며, 새로운 100년을 위한 발전의 모멘텀이다. 그러나 대학의 다른 한편에서는 계속되는 평가와 구조조정, 점점 힘들어지는 환경 때문에 불만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드높다. 그 목소리의 공감지수는 조금씩 커져가고 있다. 지금 우리 대학은 긴 잠에서 깨어나 ‘매력 중앙대’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어쩌면 이런 현상은 필연적일지도 모른다. 원래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법칙은 정(正)-반(反)-합(合)의 변증법이 아니던가!

  얼마 전, 사는 게 참 힘들다는 얘기를 나누며 동료교수와 소주잔을 기울인 적이 있다. 세상은 세계화, 국제화의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사투를 벌이고 있고, 우리는 계속되는 구조개혁의 급물살에 허우적거리고…. 사실 좀 힘들고 지치기도 한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가만히 있어도 꼬박꼬박 월급주고 편안했던 ‘희망 없는 유토피아’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아무런 간섭이 없는 것’을 장점이라 여기던 시절로 돌아가 또 다시 제 살을 파먹으며 죽어가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나는 한국의, 아니 세계의 ‘명문 중앙대’ 교수이고 싶기 때문이다!

김세일 교수
러시아어문학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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