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교수의 공강시간
김영백 교수(의학부)
 
 
 
 
  평소에는 환자들의 척추를 고치는 신경외과학전공 김영백 교수. 그런 그가 주말이면 나무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기 위해 작업실로 향한다. 그의 취미는 목공예다. 자신의 작품들로 전시까지 했었다니 오랜 기간 동안 나무와 인연을 맺은 듯하다. 작업실이 위치해 있는 광명으로 그를 만나러 갔다. 
 
목공예를 시작한 후
특별해진 주말의 시간들

나무의 다양한 단면은
그의 작품 속에 살아 숨쉰다

  광명역 근처 정신없는 도로 옆으로 좁은 길이 나 있다. 재촉하는 자동차들의 등쌀에 밀려 겨우 빠져나온 길은 한적했다. 길 끝에서 만난 창고 앞에는 굵고 큼지막한 통나무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다. 맞은편 건물의 시원하게 뚫린 입구 옆에도 역시나 나무들이 반겨준다. 슬쩍 내부를 들여다 보니 벽마저 짙은 갈색 껍질을 벗은 황토빛깔의 나무가 차지하고 있다. 어디를 둘러보더라도 틀림없이 나무에 관련된 공간일 듯하다. 몇 대의 기계들과 수많은 목재들 틈 사이로 하늘빛 수술복을 입고 있는 김영백 교수(의학부)를 찾았다.
 
“주말이면 이곳에 와서 나무로 작업을 하며 쉬고 있어요. 가구도 만들고, 소품도 만들고….”  자연의 짙은 향이 나는 작업실 안에는 김영백 교수가 틀어 놓은 잔잔한 음악과 밖에서 울고 있는 매미 소리만이 들려왔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바로 큰 차도가 있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조용했다. 울창한 나무들은 번잡한 소음들을 모두 막아주며 숲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나무를 사랑했던 소년
 
그가 만들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주 어릴 적 중학교 때부터다. “집안이 풍족하지는 않았으나 재료가 구해지는 대로 이것저것 조립하며 만들기를 즐겼습니다.” 그 중에서도 나무라는 재료를 선택한 까닭은 무얼까. “어떤 한 가지 이유 때문이 아니라 나무 그 자체를 좋아하다보니 시작하게 되었지요.” 
 
목에 청진기 대신 귀마개를 걸친 그는 이곳에서 의사와 교수의 모습을 벗는다. “참 오래 전부터 교수생활을 시작했어요. 병원에서는 신경외과, 그 중에서도 척추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작업을 할 때에도 수술복을 입고 있는 까닭이 궁금해졌다. “여름에는 작업복으로 입을 만한 시원한 옷이 없어서 이걸 입고 있어요.” 
 
얼핏 들으면 동떨어져 보이는 그의 취미와 본업은 이야기를 듣다 보니 닮은 점이 참 많아 보였다. “환자들을 고칠 때 척추를 깎고 붙이듯이 목공예를 할 때에는 나무를 자르고 나누면 돼요. 물론 두 가지 일이 같은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기구까지 비슷하지요. 그렇다고 목공을 하며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더 배우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도, 취미로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즐거운 것이죠.” 
 
 
좋아하는 길로 찾아가는 법
 
작업실의 한 가운데에는 작업 중인 두 개의 작품이 놓여 있었다. “첫 손주가 태어나서 선물해 주려고 침대를 만들고 있어요.” 하나는 아기를 위한 침대이고 비슷한 모양을 가진 또 다른 하나는 엄마가 앉아서 아기를 돌볼 수 있도록 만든 의자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가족에 대한 애착도 대단한 듯하다. 한쪽 벽에는 골동품들과 함께 가족들의 사진이 붙어져 있었다. 여행을 다니며 찍은 듯한 가족사진부터 딸과 아들, 아내의 개인사진까지. 백발로 인자하게 웃고 있는 어머니 사진을 가리키며 자랑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유명한 사진작가가 찍어준 저희 어머니 사진입니다. 멋있지요?”
 
나무와 함께하며 자그마한 소품을 만지는 단계를 거쳐 실용적인 가구도 많이 만들어왔지만 그가 최근에 관심을 갖게 된 분야는 순수예술이다. 김영백 교수는 그 이유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이야기했다. “처음부터 특정한 어떤 분야가 좋아서 시작해야겠다는 사람은 드물거예요. 이것저것 하다 보니 좋아하는 것을 찾게 되는 거죠. 여러 음악을 듣고 다양한 책을 읽다 보면 좋아하는 장르를 찾아나갈 수 있듯이 말입니다.”
황토빛깔로 가득 찬 보물창고
 
 
그의 작품들이 보고 싶었다. 김영백 교수가 하는 목공예의 범위란 어디까지일까. 작업실 맞은편에 위치한 회색 창고로 안내 받았다. 천장이 높은 기다란 문을 열고 들어간 곳 역시 나무의 갈색 빛으로 가득하다.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작품들 중 일부를 놔두었는데, 가끔 사람들을 초대해 파티도 하며 쉬는 곳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오래전 전시를 했던 작품부터 최근 만든 것들까지. 그 용도와 모양, 크기가 다양한 작품들이 구석구석 놓여 있었다. 주황색 페인트를 칠한 계단을 밟고 2층으로 올라갔다. 전시를 했었던 공예품뿐만 아니라 직접 수집한 판화나 사진들도 한 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예술에 관심이 많다는 그의 취향을 대변하는 듯했다.
 
창고에 들어서자마자 두 눈을 사로잡은 것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형상화한 작품이었다. 2층에서부터 1층까지 걸쳐 있는 커다란 나무기둥에서 뻗어 나온 여러 개의 나무줄기 끝에는 반짝이는 전구를 형상화한 것처럼 흰색 페인트칠이 동그랗게 되어 있었다. 손을 씻는 곳 역시 평범하지 않다. 잔 나뭇가지를 쌓아 도자기로 만들어진 세면대를 감쌌다. 단순히 의자나 책상을 만드는 것에서 더 나아가 나무 자체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김영백 교수의 목공예였다. 
 
 
매 순간이 ‘가장’의 시간
 
그의 작품에는 나무들이 살아있었다. 각 나무들의 다양한 단면은 그 자체로 아름다움이 되는 재료였다. “남이 만든 것을 보고 그대로 만들어야지 했던 적은 거의 없습니다. 창작을 하는 활동 자체가 취미인 것 같아요.” 그는 나무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처음 생각했던 도면의 그림으로부터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다. “결과물은 처음 도면에 그려뒀던 모습이 아니라 크기, 모양 그리고 그 목적까지 달라진 모습이기도 해요. 그런데서 집중을 하게 되고 재미를 느끼죠.” 
 
그는 취미가 삶을 살찌운다고 말한다. “만들 땐 제 생각을 안해요. 다른 생각이 들면 그건 진짜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좋아한다면 그 순간에만 몰두하게 되지요. 마음도 비워지고요.” 일주일 중 주말은 그에게 또 다른 생활이 된다고 덧붙인다.
 
창고에서 나와 다시 작업실로 가는 길,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떠오른다. 들어올 땐 그저 나무만 많아 보였던 공간이었는데 이제는 무엇 하나 의미 없이 놓여 있는 게 없는 것 같다. 그저 나무를 쌓아 놓은 줄 알았던 네모난 공간은 김영백 교수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오두막이었다. 가만히 보니 무릎 아래 높이로 세워진 길가 옆의 울타리 또한 통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 
 
“어떤 작품이든 만들기 시작할 때에는 그 마음이 모두 같습니다. 그렇기에 어떠한 한 순간이 ‘가장’이라기보다 매번 그 자체에서 재미를 가지려고 노력해요.” 김영백 교수가 꾸준히 목공예를 즐겨올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손주를 위해 만들고 있는 침대를 마무리해야지요.” 그는 나무의 향이 짙게 밴 작업실로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글·사진 하예슬 기자 yesul@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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