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48분경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황해 상에서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325명과 선원 30명 등 총 476명이 탑승한 세월호 여객선이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대한민국 정부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구성하고 비상근무체제에 돌입했다. 사건 첫날 나는 '모두 구조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사건보다는 코앞으로 다가온 중간시험을 걱정하는 그저 현실적인 대학생이었다. 
 
  오산이였을까. 승선자 476명 중 생존자는 고작 174명에 불과했다. 많은 탑승자들과 아직 고등학교 2학년 밖에 안 된 착하고 어린 학생들이 차갑고 어두운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인터넷뉴스와 SNS를 비롯한 모든 방송에서 세월호 사건을 다루기 시작했고 전 국민이 탑승자들의 무사 생환을 기도했다. 
 
  탑승자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스쿠버다이빙이 유일했지만 바다는 차가운 수온, 짧은 시야, 빠른 조류로 인해 다이빙을 하기에 최악의 조건이였다.
 
  스쿠버다이빙 강사인 나에게도 연락이 왔다. 한국수중환경협회의 특수구조봉사단으로 진도로 와달라고 하는 것이였다. 시험이 코앞이였지만 펜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가슴이 답답했다. 구조를 할 수 있는 인원이 극히 제한적이였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나로 인해 단 한사람의 탑승자라도 구조할 수 있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다음날 장비를 챙겨 진도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6시간 만에 도착한 팽목항은 말 그대로 백난지중이였다. 수많은 기자단과 경찰, 자원봉사자, 그리고 실종자 가족들은 좁은 팽목항에서 희망과 불안함속에 힘겨운 사투를 하고 있었다. 어깨가 무거워졌다. 
 
  다음날 1시간 30분 동안 경찰선을 타고 도착한 사고해협은 민관군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좋지 않은 바다상태로 인해 구조 활동이 뎌뎠고 실종자 가족들은 실망과 슬픔에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팽목항에 있으면서 보도와 실제에는 많은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들이 얼마나 SNS에서 많이 돌아다니며 또 사실도 아닌 사건을 가지고 남녀, 여야, 좌우, 경상도 전라도 둘로 나뉘어 진흙탕 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며 분개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군경들과 민간잠수부들은 목숨을 걸고 구조 활동을 하고 있다.
 
  나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당시 팽목항에서 나의 손을 부여잡고 자녀의 이름을 말하며 우리 애기 좀 꼭 좀 구해달라고 우시던 어머니 아버지의 얼굴이 잊혀 지지 않는다. 터질 것 같은 눈물을 꾹 참고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대답한 나였다. 인양 당시 마치 잠을 자는 듯한 단원고 학생들의 얼굴들도 잊혀 지지 않는다.
 
  옳고 그름, 사실과 거짓은 나중에 따져도 충분하다. 지금은 그저 모두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유가족 분들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위로하는 것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중앙인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경영학부 3학년 주진영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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