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시와 소설을 합평하면서 자주 사용하게 되는 단어 중 하나가 ‘호흡’이다. 작게는 문장과 단락의 밀도를 이야기하면서, 또 크게는 작자의 전작(全作)을 바탕으로 그의 세계관을 이야기할 때 사용된다. 혹은 단편과 중·장편을 구분하면서, 작가로서의 시각과 플롯 구성이 각기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를 말하면서도 쓰인다. ‘문장의 호흡이 좋다, 나쁘다.’, ‘이전 작품과 비교했을 때 호흡이 어떻게 변화했고, 앞으로는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등의 말을 예로 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글이 정말 숨을 쉬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작품 속에 작가의 필력과 세계관이 투영되는 방식을 통틀어 호흡이라고 칭할 뿐이다. 그렇기에 좋은 글은 저마다의 고유한 리듬으로 호흡하여 문장을 구성하고 이끈다. 또한 작가는 생을 걸쳐 자신의 세계관을 어떤 호흡으로 펼쳐낼지 고민한다.
 
  그렇다면 중대신문의 호흡은 어떤가? 각각의 기사는 꽤 잘 짜여 있다. 매호마다 특색 있는 아이템으로 독자들의 흥미를 끌어내는 것은 물론, 현재 학내에서 주목받고 있는 문제들을 놓치지 않고 다루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긴 호흡의 보도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문단위 구조조정과 같은 각 단과대학의 교육환경 문제와 학내 청소노동자 문제 등의 경우, 보도기획으로 다뤄진 뒤에 후속기사를 통해 한 학기 이상의 긴 호흡으로 다뤄져야 할 문제임에도 단발성으로 처리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일정한 기조와 시선으로 사건의 경과를 체계적으로 보도하고 있다기보다 그때그때 상황에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주간지인 중대신문의 특성상 지면 제한 등의 한계가 있겠지만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서울캠퍼스의 공간부족 문제의 경우 어느 정도 집중적으로 다뤄지고 있지만, 기사가 현재 상황에 대한 해설에 치중되어 있어 원인 분석과 대안 제시가 미흡해 보인다. 언론사의 중립성은 기계적 중립에 대한 강박이 아니라 독자적인 입장을 바탕으로 한 당당함에서 근거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중대신문이 단순히 사건의 전달자의 입장에서 그치지 않고 이슈메이커로서의 역할 또한 적극적으로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 명의 독자로서 중대신문이 이미 발생한 사건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학내 곳곳에 감춰져 있는 갈등과 병폐를 좀 더 탐사하고 보도하기를 기대하는 게 결코 무리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 면에서 중대신문이 예술대학을 비롯한 안성캠퍼스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학우들 사이에서 중대신문이 어떤 사건이 보도했는지, 또 그것이 어떻게 다뤄졌는지는 언제나 초미의 관심사다. 부디 앞으로도 현장에서 학우들과 함께 호흡하는 학내언론으로 굳건히 남아주기를 기대한다.

박경섭 학생

(문예창작전공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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