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옥인동 터줏대감 박노수 미술관

옥인동의 젊은 예술가들이
오래된 동네에 색채를 입힌다

 

 

  박노수미술관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일까. 옥인동의 작은 골목길 사이에 일제 강점기부터 옥인동을 내려다보고 있는 아름답고 따뜻한 이층집이 있다. 지난 2011년 별세한 박노수 화백의 숨결이 여전히 살아 숨쉬는 ‘종로 구립 박노수 미술관’(이하 박노수 미술관)이다.

  박노수 미술관은 박노수 화백이 40년을 살아온 가옥이다. 지난해 9월 박노수 화백의 작품과 소장품을 기증받아 문을 열었고, 지금은 옥인동의 대표적인 명소가 됐다.

  박노수 미술관에서는 작품을 감상하기에 앞서 가옥에서부터 이국적이면서도 전통적인 건축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1930년대 일제 강점기에 지어져 1973년 박노수 화백이 소유하게 된 가옥은 일제 강점기의 건축양식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겉모습은 유럽 마을의 주택 같은 흰 벽과 붉은 벽돌로 되어있지만 내부는 서양식 벽난로와 우리나라의 온돌이 공존한다.

  미술관의 입구에 걸린 추사 김정희가 썼다는 현판엔 ‘여의륜(如意輪)’이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이 집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만사가 뜻대로 돌아간다’라는 의미로 손님의 안녕을 바라는 박노수 화백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면 반들반들 윤이 나는 마루와 나무계단이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뒤틀리지 않고 세월을 간직하고 있다. 가옥의 주방, 다락방, 서재, 안방 곳곳은 아담한 미술관으로 탈바꿈했지만 예술가의 집다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현재 박노수 미술관에는 박노수 화백 작고 1주년을 기념해 <수변산책> 전이 진행되고 있다. 일본색이 팽배했던 한국미술계에서 박노수 화백은 신지식인으로서 일본색을 탈피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게 그는 전통 산수화에 파격적인 구도, 화려한 색채와 조선의 전통을 담아 신화풍을 창조해 냈다.

  “동양의 산수화는 자연의 재현이 아니고, 무한히 생동하는 작가의 세계를 희구하는 자세이기 때문에 공간에 작용하는 화면의 처리를 무척이나 중히 여긴다. 때로는 하늘을 그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하늘을 그리면 하늘 자체로 끝나버릴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를 무한대한 공간의 일부로 다루려는 작가의 구성의식이 작용한다.” 그가 쓴 「중국회화대관」 서평 일부에서 느낄 수 있듯이 그의 그림에는 여백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그림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대자연을 여백에 압축해 넣은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작품 이외에도 소묘와 스케치, 작품의 제작과정을 알 수 있는 에스키스도 함께 관람객들에게 공개됐다. 오 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빠르게 그려진 스케치들은 작가의 직관과 통찰을 느낄 수 있는 요소다. 2층 전시실로 가는 복도의 한 벽면에는 모란꽃을 그리고 있는 작가의 사진이 걸려있다. 양복을 입은 작가의 모습이 사진을 촬영하기 위한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는 항상 깨끗한 차림으로 작업에 임했다고 한다. 그림을 대할 때에는 항상 정갈해야 한다는 작가의 마음가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미술관을 나와 미술관 뒤로 나 있는 작은 등산로를 오르면 주택이 옹기종이 모여 있는 옥인동 일대가 내려다 보인다. 대나무 숲 사이를 서걱서걱 지나는 바람 소리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옥인동의 배경음악이 된다.

▲ 옥인동길엔 1970~80년대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사진 김영화 기자

  옥인동길
  미술관을 나와 옥인동 골목을 걷다 보면 어렸을 적 엄마가 불러주었던 동요의 배경일 법한 분위기와 마주하게 된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눈을 피곤하게 하는 전광판과 높다란 빌딩 대신 양철간판과 소박한 한옥, 저층 주택들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작은 골목길 사이사이에 숨은 작은 공방과 가게들이 사람들 발길을 머물게 하는 곳이다.

  건물은 높아 봐야 3층이고 지붕만 한옥인 개량 한옥들이 1970~80년대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조선 시대부터 예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이곳에서는 윤동주가 머물며 시를 짓기도 했다. 신선이 나올 것처럼 산이 바로 보이고 계곡이 가까운 곳에 있으니 예술가들의 이목을 사로잡았을 만하다.

  지금은 그들의 뒤를 잇는 젊은 예술가들이 예술적 감성으로 골목 곳곳을 채우고 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김소연씨는 박노수 미술관 옆에서 ‘미술관 옆 작업실’이라는 카페 겸 공방을 차렸다. 직접 만든 인테리어 소품을 전시, 판매하고 있는 그녀가 옥인동에 자리 잡게 된 건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 번째는 자연이 있는 곳, 두 번째는 이야기가 많은 곳, 세 번째는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소재가 많은 곳이었다. “수성동 계곡이 있는 데다 예술가들이 살던 곳이고, 다양한 공방이 많아 영감을 받기 좋은 이곳은 저의 보금자리로 가장 좋은 곳이죠.”

  옥인동의 상점들은 사람냄새가 가득하다. 조그만 선물가게 ‘우연수집’은 지나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물건들로 상점을 가득 채웠다. 우연수집의 주인인 우연 수집가는 직접 꾸미고 장식한 가게에서 책을 쓰기도 하고 오고 가는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옥인동길을 지나다 보면 상점 하나하나마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은 쉽게 볼 수 있다. 직업 가게로 들어가 예술적인 그들의 삶에 동화되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옥인동 골목을 따라 큰길로 내려오면 길 건너로 통인 시장이 보인다. 시장입구에서는 동네 어르신들이 장기 한 판을 두고 계신다. 식재료를 배달하는 오토바이와 저녁거리를 궁리하며 먹거리를 둘러보는 어머니들을 만날 수도 있다. 정감 가는 상점을 지나다보면 통인시장을 이름나게 한 ‘기름 떡볶이’를 맛보는 일도 즐겁다.

  낮은 건물만큼 작은 마을버스인 9번 버스를 타고 창밖으로 내다보는 서촌도 아름답다. 따뜻해진 공기만큼 가벼운 발걸음을 옥인동으로 옮겨보자.
 


■박노수 미술관 관람정보
- 관람료 : 무료
- 관람시간 : 10:00 ~ 18:00
- 관람 종료 30분 전까지 입장 가능
-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추석 당일 휴관

- 교통안내
지하철 : 3호선 경복궁역 2번출구(도보 16분)
마을버스 : 3호선 경복궁역 3번출구 종로9번
(박노수 미술관 정류장 하차)
버스 : 7212, 1020, 1711, 7018, 7016, 7022번
(통인시장 종로구보건소 정류장 하차 도보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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