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캠 학생들은 이제 총여학생회(총여)라는 단어를 다소 낯설게 느낄 겁니다. 지난 5년간 4차례나 총여가 꾸려지지 않아 이젠 오히려 공석이 익숙해질 지경이죠. 이는 비단 서울캠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최근 대다수 대학에서 간신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총여의 역사를 되짚어 보았습니다.
 
가부장제 문화에서 벗어나
여학생의 주체성 회복 목표로
1985년 중앙대 제1대 총여 출범
 
  총여의 시작을 찾기 위해선 약 3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30년 전인 1980년대엔 군부독재 정권에 맞서는 민주화 투쟁이 한창이었습니다. 평등할 것만 같은 민주화 운동 세력 사이에서도 성차별은 존재했습니다. 투쟁 자체가 공격적이다 보니 남성 중심적 조직 문화가 형성된 것입니다. 주변부로 밀려난 여성들은 독자적 노선을 모색했죠. 
 
  1985년 대학가에선 학생자치기구 역할을 수행하던 학도호국단이 폐지되며 총학생회가 들어서게 됩니다. 이때 독자적 노선을 모색하던 여학생들이 총여를 구성한 것이죠. 중앙대의 제1대 총여는 1985년 6월 5일에 출범했습니다. 송혜경 동문(영어학과 82학번)이 회장직을 맡아 부회장인 고인숙 동문(교육학과 83학번)과 함께 ‘여학생의 주체성 회복과 권익 옹호’를 위해 활동했죠.
 
서울캠 최근 3년간 총여 부재
여전히 존재하는 젠더불평등
고발할 기구 축소돼
 
  1990년대에 들어선, 여성운동이 더욱 확산되며 대학 간 경계를 초월한 집단적 연대가 이뤄졌습니다. 서울권 9개 대학의 총여 및 여성위원회가 모여 ‘학내성폭력근절과 여성권 확보를 위한 여성연대회의’(여성연대회의)를 조직하기도 했죠. 이들은 반성폭력학칙 제정이라는 값진 결실을 거뒀습니다. 아쉽게도 당시에 중앙대는 여성연대의 소속이 아니었습니다. 중앙대의 경우 제2캠퍼스(2캠) 총여 주도로 2000년에 반성폭력 학칙이 제정됐습니다. 당시 2캠 제15대 ‘당찬 여성들의 아름다운 이야기’ 총여는 여성연대회의에도 참가하며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반면 서울캠 총여는 존립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2009년 총여 선거에 출마하는 이가 없어 선거 자체가 치러지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재선거와 후보자 등록 기간 연장 등 갖은 수를 써봤지만 후보자가 없어 결국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 돌입하게 됐죠. 이후 2011년을 제외하곤 매년 후보자 부재로 총여가 구성되지 못했습니다. 2011년 당선된 제24대 ‘우리’ 총여 역시 매우 어렵게 출범했습니다. 2010년 진행된 정규 선거에서 투표율이 부족해 재선거로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지난해엔 총여 선거관리위원회조차 꾸려지지 않아 선거 공고가 내려지지도 않았습니다.
 
  서울 주요 대학들 역시 서울캠과 사정이 비슷합니다. 연세대, 경희대, 한양대 등의 대학은 최근 총여 선거 후보자가 없어 여러 차례 선거 무산을 발표했습니다. 연세대는 2007년 총여의 총학생회(총학) 산하기구화에 대한 논의가 일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최근 3년간 총여 후보자가 나오지 않은 건국대의 경우 지난해 3월 총여를 폐지했습니다. 이처럼 여러 대학에서 총여 폐지론은 꾸준히 대두되고 있으며 총여의 입지는 계속 줄어들고 있는 실정입니다.
 
  총여의 부재로 인해 서울캠에서는 여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기구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지난해 총학과 각 단과대 소속 여성국장들이 참여한 여성연대협의회가 임시방편으로 구성됐지만 총여 선거가 무산되자 곧장 해산됐습니다. 또한 서울캠 제55대 좋아요 총학생회의 공약이었던 성평등위원회도 개설되지 않았습니다. 
 
  서울캠 내 성평등 관련 기구는 이제 인권센터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인권센터 성정숙 전문연구원은 성불평등을 고발할 기구가 줄어든 데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학교 사회가 충분히 평등해졌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학내 성폭력 피해자의 98%는 여성으로 학내엔 여전히 성별에 따른 불평등이 존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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