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책임철칙’이라는 말이 있다. 권력을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방식으로 행사하지 않으면 종국에는 그 권력을 잃게 된다는 뜻이다. 원래는 경제적 권력을 가지게 된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취지이지만, 정치권력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옛 소련의 스탈린이나 남아공의 인종차별(apartheid) 정권이 좋은 본보기다.
 
  사회적 책임이란 무엇인가? 사회책임에 관한 국제적 지침인 ISO26000의 규정에 의하면, 사회적 책임이란 “조직의 결정과 활동이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조직이 지는 책임으로 투명하고 윤리적 행위를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여야 하며…”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시간적 형평과 공간적 형평이란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시간적 형평이란 현재 세대의 행위가 미래 세대의 복지를 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공간적 형평이란 현재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사회적 정의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정치의 사회적 책임은 정치가 미래 세대의 행복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동시에 현 시대의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소임을 가지고 있음을 함축하고 있다.
 
  정치가 이러한 본연의 임무를 하도록 만드는 가장 입증된 제도가 바로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주인인 국민이 그 대리인을 뽑아 현재 세대 간의 형평과 미래 세대의 행복을 동시에 실현하도록 위임한 제도이다. 민주주의 하에서 정치인은 그들 주인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할 일종의 “수탁자 책무”를 지고 있는 대리인에 불과한 것이다.
 
  흔히 민주주의는 대의제, 다수결의 원칙, 삼권분립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정보 접근이 제한됐던 과거의 현실을 반영한 민주주의의 외형적 특징에 불과할 뿐, 그 본질이라고 볼 수 없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선출된 정치인이 주인의 이익만을 고려하는 결정과 행위를 하도록 어떻게 담보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시하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다시 말하면 우리 정치가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도록 할 수 있을까? 정치인들이 도적적인 판단 기준을 가지고 현명하게 행동하면 좋겠지만 우리의 역사적 경험에서 보면 그런 기대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즉, 주인이 주인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우선 선거에서 책임질 줄 아는 정직한 정치인을 선출하고 그 다음엔 그들이 사적 이익을 우선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독려해야 하는 것이다. 
 
  정치인은 국민이 주인으로서 역할을 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먼저 정치인은 모든 정치적 의사 결정을 투명하게 내려야 하고 이들 결정과 행위에 대해 주인에게 분명한 설명책임(accountability)을 져야 한다. 주인이 대리인의 행위를 알 수 없고, 대리인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설명하고 책임지지 않는다면, 주인이 주인행세를 할 수 없다. 과거 정보가 독점되고 문맹이 많던 시절이라면 몰라도 모든 정보가 막힘없이 흘러 다니고 국민의 대다수가 고등교육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케케묵은 민주주의 논리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 투명성과 설명책임이 제대로 지켜진다면 우리 국민은 무엇이 올바른지 결정을 내릴 충분한 지혜를 가지고 있다.
 
  최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고 해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퇴진 요구를 받은 측의 입장에서는 불편하겠지만 어차피 국민의 대리인일 뿐이다. 물론 사제단이 모든 국민을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입을 막는 것은 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다. 모든 결정이 투명하게 이루어지고 정치적 행위가 국민에게 납득된다면 누가 그런 퇴진 요구에 귀를 기울이겠는가? 주인은 불평을 말할 수 있지만 대리인은 주인에게 불만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 그것이 정치의 사회적 책임이다.
 
 
양춘승 교수
경영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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