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구멍 깊숙이

 

 

그건 아직도 시커먼 엄마의 눈동자 때문이었다.
다른 것은 늙고 병들어 변해도, 눈은 변하지 않았다.


남들보다 유난히 툭 튀어나온 눈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마지막 시선 같은 것이었다.

 

나는 생선 눈을 뺀다.


엄지손톱만한 생선의 눈을 입에 넣고 씹는다. 툭, 하고 터지는 소리가 난다.
어딜 가도 잔류하고 있을 생선의 알들과 죽어서도 이름이 남을 엄마.


팬티를 내리고 운전석에 앉아있는 남자의 무릎에 앉는다. 남자는 어색하게 창밖의 감독을 바라본다. 나는 핸들에 기대어 고개를 좌우로 돌린다. 목이 뻐근하다. 감독은 나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한다. 할 때 아까 보여줬던 걸로 해.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차 천장의 손잡이를 잡는다. 감독이 피우는 담배를 끄면 촬영은 시작된다. 나는 마른기침을 하고 남자의 팔을 잡는다. 남자의 팔이 철제펜스처럼 차갑다.

자꾸만 눈이 감긴다. 잡고 있는 핸들이 저절로 기울어질 것만 같았다. 집에서 나오기 전에 가스레인지 밸브를 잠갔었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귀에서 자꾸 전화 벨소리가 들려온다. 집에 나오기 전 계속 울렸던 전화 벨소리. 나는 조심스럽게 핸들 뒤로 눕는다. 남자는 내 목덜미를 잡으며 움직인다. 닭살이 돋는다. 차 안은 더웠지만, 어제부터 자꾸 오한이 돌았다. 남자는 목덜미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젖가슴으로 손을 움직인다. 젖가슴을 잡을 때에는 일부러 고개를 젖힌다. 그럼 카메라는 자연스럽게 내 가슴으로 클로즈업을 한다. 큐 사인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린다. 꽉 막힌 사타구니 사이로는 붉게 솟아오른 남자의 성기가 들어오지 못한다. 나는 눈을 살짝 뜬다. 여드름이 섞인 남자의 얼굴이 곧 터질 것 같이 흥분되어 있었다. 눈을 다시 감고 남자의 표정을 따라해 본다. 작게 내뱉었던 신음을 크게 내뱉기 시작한다. 나는 허리를 점점 세게 움직인다. 남자는 내 엉덩이를 부여잡으며 묻는다. 좋아? 천천히 눈을 뜬다. 남자의 볼에 툭 튀어 나온 붉은 여드름이 보인다. 나는 남자의 목에 두른 손을 천천히 뗀다.


남자에게 떨어져 핸들을 돌려본다. 기어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핸들이 움직인다. 나는 스텝이 주는 담요로 몸을 감싼다. 담배를 피우던 감독은 나에게 한 개비를 준다. 나는 차에 있는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인다. 시나리오는 한 장도 채 되지 않았다. 대사를 외우지 않아도 패턴은 거의 비슷하다. 수줍어하는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면, 남자는 자연스럽게 내 위에 올라타는 것이다. 남자는 차 아래에 있던 옷을 꺼내 입는다. 조연출로 들어 온 남자는 이제 배우가 되었다. 배우가 되는 것은 참 쉬웠다. 보통 남자들 보다 조금 더 못생기거나, 길거리에서 지나쳐도 기억나지 않을 얼굴이면 합격이었다.


“맥주나 마시고 싶네요.”
나는 남자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는다. 진짜로 섹스를 한 것도 아닌데 남자는 어색해한다. 나는 다시 옷을 걸쳐 입고 밖으로 나간다. 공사를 하고 입은 팬티가 불편하다. 살색 테이프를 떼고 싶었다. 담배를 입에 물고 근처 공중 화장실로 들어간다. 몸이 자꾸만 춥다. 테이프를 살살 뗀다. 미쳐 솜을 붙이지 못한 테이프엔 음모가 몇 가닥 붙어있다. 나는 테이프를 돌돌 말아 쓰레기통에 버리고 담배를 마저 피운다. 위로 올라가는 연기가 뿌옇게 시야를 가린다.


감독은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감독 옆에 서서 담배꽁초를 버린다. 감독은 나에게 담배를 건넨다. 나는 담배를 다시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한 오십군데 올라갈 거야. 그럼 자연스럽게 퍼지겠지.”
감독은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한다. 더 이상 에로물은 비디오로 나오지 않는다. 에로물을 판매하는 사이트에 올린 후 한 달 정도 지나면, 회사와 제휴를 맺은 사이트에서 700원에 파일을 판매한다. 사람들은 1분이면 다운을 받아 각자의 파일에 저장을 한다. 이런 시스템은 오래 되었다. 그리고 계속 판매 수는 낮아져간다. 다운을 받은 사람들은 다른 사이트에 제목을 바꾸어 70원에 판매를 하거나, 일본에서 불법 수입 된 포르노를 다운받아 본다.
“생각은 해봤어?”
일본 포르노 회사에서 우리 쪽으로 제의가 들어왔다. 그 제의에 응했던 여배우는 일본에서 원정 포르노를 찍어 대박을 냈다. 한국여자라는 이유로 가슴이 작고, 피부가 까매도 잘 팔렸다. 그 제의는 나에게도 들어왔다. 아마 대부분의 배우에게도 제의가 들어왔을 것이다. 포르노는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도 일본에 가서 모르는 말을 내뱉은 어떤 여드름이 돋아난 남자와는. 공사를 하지 않은 사타구니에서는 음모가 떨어질 일은 없겠지만 가서 반나절을 신음소리만 내뱉고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감독님 제 휴대폰 못 보셨어요?”
감독은 차를 가리킨다. 휴대폰은 뒷좌석에 던져져 있다. 차를 멍하니 바라본다. 중형차가 열로 달구어 진지 십분도 지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차는 가만히 그 자리에 있다. 나는 담배를 끄고 천천히 차 문을 연다. 휴대폰에는 부재중 수신이 3통이 와 있다. 다 같은 번호였고,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으며, 오늘 아침부터 알게 된 번호이기도 했다. 나는 짧게 문자를 남긴다. 두 시간 뒤에 도착할 것 같네요. 전화번호부를 열어 번호를 저장한다. 저장한 이름은 병원 이었다.

 

의사를 만나고 간호사를따라 7층으로 간다. 내 옆에 있는 간호사는 무표정으로 차트를 살펴본다. 차트에는 익숙한 이름과, 낯선 글씨체로 휘날려진 영어가 보인다. 나는 고개를 올려 숫자를 바라본다. 한 층 한 층 올라갈 때마다 붉은 글씨가 바뀐다. 승강기 문이 열리고 간호사는 나보다 먼저 병실 앞으로 다가간다. 8인실의 병실에는 익숙한 이름이 적혀 있다. 나는 복도 끝에 있는 글씨를 바라본다. 파랗게 쓰인 굵은 글씨다.


거짓 십년 만에 보는 엄마는 죽어가는 중이었다. 엄마는 멍하니 하얀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간호사는 엄마에게 내가 왔다고 말한다. 엄마는 나를 흘깃 쳐다본다. 허옇게 버짐이 피어오른 팔에는 주사바늘 자국이 툭툭 번져 있고, 배에는 시퍼런 멍 자국들로 가득하다. 힘없는 피부는 축 쳐져 검게 변해 있었다. 복도 끝에 쓰여 있던 암 병동이라는 글씨가 아른거린다. 의사는 엄마가 자궁암 말기라고 말했다. 자궁이 아닌 손톱 끝에도 퍼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덩어리들. 나는 그런 엄마에게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십년 만에 보는 엄마에게 다가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엄마를 보고 있기 싫었다.


그건 아직도 시커먼 엄마의 눈동자 때문이었다. 다른 것은 늙고 병들어 변해도, 눈은 변하지 않았다. 남들 보다 유난히 툭 튀어나온 눈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마지막 시선 같은 것이었다. 엄마는 죽음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눈을 부릅뜨고 있다. 오랜만에 보는 그 눈은 익숙했다. 그건 사람의 눈이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엄마가 살면서 제일 많이 마주친 것은 눈을 감지도 못하는 생선이었기에. 그래서 생선처럼 눈을 뜨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엄마는 눈에 힘을 주고 잘 껌벅거리지도 않는다. 나는 눈을 깔고 손톱을 바라본다. 초승달 같은 손톱 사이사이에는 검은 때가 깊이 박혀 있다. 바짝 깎지도, 길게 기르지도 않는 손톱. 여전했다. 10년의 세월동안 엄마가 변한 건 곧 죽을 것이라는 것 외엔 별 거 없었다.


애초부터 엄마가 연락한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나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 다는 것도, 그동안 나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도. 엄마는 내가 집을 나간 그 순간부터 기억을 지웠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듯이.


나는 침대 앞에 앉는다. 엄마는 고개를 돌려 다시 천장을 바라본다. 나는 쉽게 말을 걸지 못한다. 엄마는 나에게 말을 걸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걸고 싶지 않은 듯 보인다. 나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는 것은 이해했다. 엄마가 나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고등학교 때였고, 지금의 나는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늙어가고 있었다. 엄마는 지금의 내가 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고등학생 때도 나에겐 엄마는 그냥 엄마였고, 지금은 죽어가는 엄마일 뿐이었다.


“내일, 다시 올게요.”
어렵게 말을 건넨다. 엄마는 아무런 대답조차 하지 않는다. 곧 엄마의 목소리를 듣게 될지도, 아니면 죽는 날까지 듣지 못할지도 모른다. 엄마는 곧 마약 진통제를 맞아야만 했다. 그게 고통을 줄이는 마지막 방법이라고 의사는 대답했다. 더 이상 엄마의 몸은 자신의 것도, 그렇다고 희생할 수도 없는 몸이었다. 마약 진통제를 맞으면 헛소리를 할 수도, 사람들을 못 알아 볼 수도 있다고 의사는 말했다.


엄마가 정신을 잃기 전에 물어야 했다. 의사가 쥐어 준 전화번호. 아침에 걸려온 전화와 달리 강원도 지역번호로 시작하는 낯선 요양원 번호. 이 달 말일이 지나면 엄마에게로 보내질 것이라는 할머니.


“할머니.”
작게 소리 내어 말해본다. 할머니라는 말을. 나에게도 할머니가 있었다. 살아생전 엄마에게 피붙이는 나밖에 없을 줄 알았다. 엄마의 시한부와 함께 전달 된 할머니의 존재는, 어쩌면 엄마의 죽음보다 나에게 더 큰 덩어리 같은 것이었다. 엄마는 나의 물음에 한 치의 대답도, 어떤 소리도 내지 않는다. 사타구니가 가렵다. 오전에 내뱉었던 신음소리가 이명소리처럼 파고드는 듯하다. 엄마의 얼굴은 다른 누구보다 또렷하게 기억에 남을 것이다. 아무런 말도, 아무런 몸의 움직임도 없기에.


나는 대답을 듣는 것을 포기하고 병실을 나선다. 목이 간지럽다. 몇 번 마른기침을 작게 내뱉는다. 허기가 진다. 무엇이라도 먹고 싶다. 고개를 젖혀 천장을 바라본다. 누군가가 나의 가슴을 뚫어지게 쳐다볼 것이란 불안한 생각이 든다. 어딘가에 휴대폰을 버리고 싶단 기분이 들었다. 한숨을 쉬고 고개를 떨궜다. 버릴 거였으면 번호부터 십년 전 것을 쓰면 안됐었다.

 

다된 밥솥에서 소리가 난다. 밥솥을 열어 밥을 퍼 식탁에 앉아 흰 쌀밥을 퍼 입에 넣는다. 하얗고 뜨거운 밥은 입 안에서도 김을 뿜어낸다. 반찬은 거의 먹지 않고 밥만 먹는다. 포만감이 생기고 배가 터질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까지 먹는다. 아침부터 신음소리를 낸 날이면 힘이 들었고, 다리가 저려왔다. 밥을 많이 먹는 것은 고치지 못하는 버릇 중 하나였다. 예전에 엄마는 일을 하고 오면 3인분 정도의 밥을 앉아서 꾸역꾸역 삼켰다. 일을 하면 먹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 날에도 일을 할 수 있다. 엄마는 그렇게 나에게 이야기 했다. 일을 했기 때문에 밥을 먹는 게 아니라, 그 다음 날도 일을 해야 할 힘이 있어야 했기에, 엄마는 밥을 삼켰다.

 

식탁에 있는 노트북을 켜 메일을 확인한다. 메일의 절반은 야한 제목이었다. 내 동영상을 본 사람들은 내 주소를 추적해 가끔씩 메일을 보내곤 했다. 일주일 입은 팬티를 십만 원에 팔라거나, 진짜로 섹스를 해줄 수는 없냐, 다음번에는 신음소리를 더 크게 내달라 등의 내용이었다. 메일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메일을 보낸 사람들은 내가 옆을 지나가도 알아채지 못한다. 몇 번 대화를 해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모르는 주소의 메일을 삭제하고, 감독이 보낸 시나리오를 확인한다. 두 개는 포르노의 이야기였고, 한 개는 전에 찍은 속편의 내용이다. 나는 다시 숟가락을 든다. 포르노를 찍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기분이 들었다. 인터넷 창을 켜 검색을 한다. 기초생활수급비. 그리고 죽어서 나오는 보험금. 낮에 받았던 엄마의 통장 잔고. 수없이 입금이 되어왔던 엄마의 월급과 병원비로 나간 돈. 벽에 붙여놓은 사진을 바라본다. 몽골. 떠나고 싶었다. 더 이상 메일을 받고 싶지도, 생선요리를 파는 길거리도 돌아다니고 싶지 않다. 따뜻한 하늘 아래 잔잔한 호수 앞에 앉아 있고 싶었다. 밥그릇을 비우고 식탁 위에 있는 담배를 피운다. 자꾸만 트림이 나오는 것을 담배를 피우며 삼킨다. 아직 속에서는 식지 않은 밥의 김이 자꾸만 피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화장실 앞에서 옷을 벗고 들어간다. 누런 빛 아래에서 물을 틀었다. 뜨거운 물이 몸을 타고 흐른다. 닭살이 돋는다. 하얀 비누로 몸을 씻는다. 사타구니 안쪽을 문지르고 겨드랑이를 문지른다. 욕조에 물이 고인다. 머리카락이 수챗구멍에 엉켜 있었다. 쭈그려 앉아 머리카락을 뺀다. 머리카락에는 비누 조각과 물때가 묻어 있다. 나는 쓰레기통에 머리카락을 버린다. 고였던 물은 쉽게 아래로 떨어진다.

 

현관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요란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연다.남자가 보인다. 조끼에는 강릉 요양병원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휠체어에 앉은 노인이 보인다. 흰머리를 곱게 묶은 모습이다. 요양병원에서는 할머니를 직접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승강기 없는 4층 빌라까지 할머니를 엎고 온 남자의 이마엔 땀이 맺혀있다. 남자는 휠체어와 짐을 집에 놓아주고, 할머니의 생활 패턴과 식사량이 적힌 종이를 건네준다. 나가려는 남자를 붙잡고 묻는다. 수급비는 언제 입금이 되는 건가요. 남자는 나를 쳐다보다 시선을 거둔다. 다음 달 초에 들어오는 걸로 알고 있어요. 나는 남자를 놓는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열고 나간다.
거실엔 할머니가 있다. 몇 달 전 풍이 와 말도 잘 하지 못한다는 할머니. 관절이 쓸려 잘 걷지도 못하고, 수술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아 마취가 힘들다는 할머니. 할머니는 고장 난 상태였고, 더 이상 무엇도 해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신발장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다. 뒤를 돌면 할머니가 있다.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해 어떻게 생겼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손에 든 종이를 접어 신발장 위에 올려두고 뒤를 돌아 할머니 앞에 선다. 나는 아무런 말도 없이 할머니를 바라본다. 할머니는 누렇게 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할머니의 눈은 엄마와 달랐다. 누런 점막에 곧 흩어질 것 같은 회색 눈동자. 그것은 엄마와는 다른 눈이었다. 할머니는 나를 치켜뜨며 쳐다본다. 나를 위로 올려다보고 있다. 나는 눈을 내리깔며 할머니를 보았다. 발이 계속 저려왔다. 주저앉아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발가락에 힘을 줘 겨우 지탱한다. 절대로 앉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하면서.


방문을 열고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는다. 큰 바퀴가 돌아가며 할머니가 움직인다. 휠체어의 무게 때문인지, 할머니의 무게인지 움직일 때마다 무거웠다. 나는 최대한 보폭을 크게 걸으며 할머니를 밀어 넣는다. 할머니는 아무런 미동조차 없다. 나는 거실로 나와 방문을 닫는다. 할머니는 방 중앙에 있다. 아니면 휠체어를 움직여 침대에 누웠을지도 모른다. 엄마를 보러 가야 했다. 마을버스를 타고 삼십 분 거리인 병원으로. 가서 엄마에게 말해야 한다. 할머니는 죽을 때까지 나와 살지도 모르고, 아니면 엄마가 죽으면 나는 혼자 떠날지도 모른다고. 할머니는 지금 내 방에 있다. 십년 만에 본 엄마의 엄마란 이유로.


식탁에 밥을 차리고 방문을 연다. 할머니는 내가 밀어 둔 그 상태로 가만히 있다. 나는 할머니를 끌고 와 식탁 앞에서 멈춘다. 할머니에게 숟가락을 쥐어준다. 할머니의 손이 덜덜 떨려온다. 할머니는 힘겹게 숟가락질을 한다. 나는 할머니 옆에 서서 담배를 피운다. 할머니는 모를 것이다. 밥을 먹어야 하는 이유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을. 할머니가 밥을 씹을 때마다 입안의 음식물이 보였다. 나는 끊임없이 담배를 피우며 속을 달랬다. 밥을 먹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있기 힘들었다. 늙고 병이 들었다는 이유로 나라에선 할머니에게 돈을 준다. 그 돈은 내 통장으로 들어온다. 내가 보호자라는 이름을 달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생각을 하니 뭔가 이상했다. 누군가를 보호해야한다는 입장은 쉽게 버려질 수 없는 이름표였다. 엄마도 그랬을까.
 

엄마는 자꾸 일을 했다. 대형마트에서 생선을 팔고,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고, 집에 들어와선 청소를 하며 단순 노동을 했다. 엄마가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밥을 먹을 때 밖에 없었다. 항상 굽고 튀기던 생선. 약간 쉰 비린내가 섞인 탄 생선이었다. 엄마는 내 보호자였다. 보호를 할 수 밖에 없는 입장. 나는 그게 싫었다. 엄마란 단순한 이유로 자꾸만 주는 것. 필요 없는 한숨소리까지도.

 

테이블 미팅이 시작되었다. 간단했다. 내가 나온 파일들을 보여주고, 실제로 만나서 시나리오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딱 붙는 짧은 원피스를 입어달라는 감독의 부탁에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옷은 전에 촬영할 때 입었던 옷이었다. 영상을 찍을 때 입는 옷은 다 벗기 쉬웠다. 지퍼를 내리거나, 고무줄로 된 치마를 들어 올리면 끝이었다. 나는 화장실에서 나와 사무실로 간다. 사무실에는 일본에서 왔다는 포르노 제작사와 감독과 조연출이 있었다.


제작 쪽에서 가져온 시나리오는 대부분 특이한 것들이었다. 봉고차에서 일반인들을 불러와 섹스를 시작한다거나, 공중화장실에서 한 남자가 옆에서 볼 일을 보고 있으면 그 옆 화장실에서 섹스를 하는 것이었다. 아니면 술집에서 섹스를 하면 옆 남자가 흥분해 자위를 한다던가. 나는 숨죽인 목소리로 감독에게 말한다. 저 포르노 안 찍어요. 감독은 내 손등을 치며 조용히 하고 있으라고 한다.
 

나는 마른기침을 내뱉는다. 포르노를 찍은 여배우는 더 이상 포르노가 아니면 아무 것도 찍지 못했다. 상대 배우를 바꿔서 촬영하거나, 아니면 자위하는 거라던가, 더 자극적인 것이 아니면 팔리지 않았다. 감독은 어색하게 웃으며 내 손을 끌고 나온다. 감독은 복도 끝에 있는 창문 앞에서 담배를 건넨다.


“너 외국 나가고 싶어 했잖아.”
감독은 내 집에서 보았던 사진을 기억한다. 그곳이 어딘지는 몰라도, 한국이 아니라는 것은 기억하고 있다는 태도였다. 공기 빠진 웃음이 새나왔다. 사진은 감독이 가보고 싶다는 곳이었다. 감독을 처음 보았을 때, 그는 나에게 연기를 잘 할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그건 잘 할 것 같다는 말이었다. 에로배우가 되기 위해서 노력한 것은 없었다. 면접을 본 것도 아니었고, 캐스팅이 되어 간 것이었다. 얼굴이 튀지 않아서 좋다는 말. 기억이 잘 날 것 같지 않다는 말. 왜 잘 웃지 않느냐는 물음. 처음으로 누구에게 내 모습에 대해 이야기 들은 날이었다. 그날로 시나리오를 받고, 연기 지도를 받았다. 최대한 높은 소리로 신음을 뱉고, 엉덩이를 조이면 되는 것이었다. 벗는 건 부끄럽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외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괜찮았다. 그는 나중에 다큐멘터리 형식의 에로물을 찍고 싶다고 했다. 아무도 살지 않을 것 같은 초원에서 누군가가 몸을 섞는 건 행복이라고 했다. 몽골에서 생선을 잘 먹지 않는 다는 말은 그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정작 그는 기억하지 못했다.


외국 나가서 섹스 하고 싶지 않아요. 감독은 나를 쳐다본다. 일을 관둘 거야? 명료한 물음이었다. 더 벗지 않으면 관둬야 한다. 에로물에선 이미 내 이름을 잊어간다. 더 젊은 여자와, 가슴이 크고 높은 신음소리를 내는 여자들이 입봉 한다. 감독은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잊혀가는 것은 이미 감독의 입 밖으로 나온 말이었다. 이젠 나만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사무실로 와서도 담배를 한 대 피운다. 일본 포르노는 자주 보았다. 일본어가 없으면 일본인지도 모르는 장소들. 그 장소는 바람이 불지 않는 답답한 공간들이다. 제작자의 시선이 자꾸 나에게 멈춘다. 나는 그를 쳐다보지 않는다. 감독은 내 담배를 들어 자기가 피운다. 나는 테이블에 있는 시나리오를 훑어본다. 홈 비디오 형식의 에로물. 선생님과 제자간의 섹스.


나는 시나리오를 제작자에게 건넨다. 제작자는 시나리오를 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감독은 지금 내가 혼자 사는 줄 알고 있다. 집을 생각한다. 영상을 찍으면 한번쯤은 붙여 놓은 풍경 사진이 잡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와 그 사진을 보며 섹스를 한다는 것은 이상하게도 평온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몇 개의 시나리오는 2개로 줄어들었다. 감독은 집에서 포르노를 찍어 일본에서 팔자는 이야기와, 일본으로 가서 봉고차에서 준비 된 배우들과 찍자는 것으로 추렸다. 제작자는 나에게 손을 건넨다. 잘 부탁한다는 이야기를 하며. 나는 처음으로 제작자와 눈을 마주친다. 끊어진 실밥 같은 눈과 튀어나온 덧니. 나는 어색하게 웃고 손을 놓는다.


사무실을 나온다. 승강기 버튼을 누르고 입고 온 옷이 사무실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무실 문을 한 번 바라본다. 불이 꺼지고 차가운 불빛이 새어나온다. 문 앞에서 사무실 안을 본다. 자그만 텔레비전에서 내가 나온다. 얼굴에 있는 온갖 근육을 찡그리며 신음을 내뱉고 있다. 나는 들어가지 않고 밖을 나온다. 사람들이 길을 지나다닌다. 나는 건물 앞에 멍하니 서있다 마른기침을 한다. 내가 기침을 한다고 나를 쳐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엄마는 진통제를 맞기 시작했다. 의사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나에게 일러두었다. 진통제를 맞는 건 제한이 있다고 했다. 나중엔 고통이 몰려와 죽을 수도 있고, 아프기 전, 힘이 들어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엄마는 고통을 잊었다. 고통을 잊으면서 기억도 조각났다. 나는 젖은 물수건으로 엄마의 팔을 닦는다. 엄마에게 손을 대는 것이 낯설다. 집에 같이 있었을 때조차 엄마에게 손을 댄 적이 없다. 엄마의 눈이 나에게로 향한다. 나는 고개를 들어 엄마를 바라본다. 얼굴 살이 빠져 눈이 더 도드라져 보이는 엄마였다. 피부엔 하얀 각질이 일어났다. 마른 나뭇가지 같았다. 바짝 발라 불에 타버릴 것 같은 앙상한 팔. 나는 손에 로션을 묻혀 엄마의 팔에 바른다. 일을 하지 못한 손은 더 늙어간다. 갑자기 모든 것을 놓아버리면 허공에 뜬 것처럼 공허할 것이다.


궁금한 이야기가 있었다. 늘 궁금했던 이야기. 집을 나가기 전에는 일부러 집안을 헤집었다. 옷장을 열고 냉장고 안에 있는 반찬통을 쏟고, 부업으로 하던 휴지 포장지를 다 찢어놓았다. 집에 돈이 될 만한 것들은 다 챙겼고 엄마가 냉동실에 얼려놓은 생선은 변기통에 처박았다. 그리고 기다렸다. 근처 공중화장실에 앉아 휴대폰을 바라보기만 했다. 저녁이 되어도, 그 다음 날이 되어도, 충전을 위해 편의점에 있어도 휴대폰은 울리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집으로 가서 반찬을 다시 주워 담고, 옷장을 정리하고, 부업 회사에 전화를 해 사과를 하며, 변기통에 있는 생선을 건져 구워먹었을 것이란 기가 막히는 생각.


“……엄마.”
엄마라고 부른다. 나를 찾을 생각도 한 적 없는 엄마에게, 당연한 듯 다시 엄마라고 부르며 생각한다. 물어 볼 말을 삼킨다. 담배를 피우고 싶었다. 할머니는 언제부터 요양원에 있었어요? 엄마를 바라본다. 엄마는 눈을 내리깔고 내가 잡고 있는 팔을 바라보았다. 못 알아듣는 것일까. 나는 다시 한 번 묻는다. 엄마의 엄마는 누구에요. 엄마가 나를 바라본다. 새카만 눈동자. 그림자처럼 사라질 순 있지만 절대로 떼지 못하는 엄마의 검은 시선.


에로배우를 하면서 깨닫는 것은 결코 나를 바라보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집에서도 느꼈던 기분이었다. 항상 혼자 있는 집. 밥을 먹을 때만 앞에 앉는 엄마. 같이 있어도 같이 있지 않는 것. 비디오를 찍는 일도 같았다. 어떤 남자에게 안겨 있어도, 내가 수많은 동영상에서 소리를 지르고 표정을 바꿔도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 내 흔들리는 가슴과, 확대되는 혀. 붉고 빨리는 것들만 보는 사람들,


엄마는 곧 죽는다. 엄마의 죽음을 알리는 보험금은 곧 들어온다. 엄마가 이 사실을 각인하고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엄마의 딸이라는 이유로 엄마가 평생을 낸 돈이 나에게로 온다는 사실을. 나는 천천히 기다릴 것이다. 궁금했던 말은 이야기 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흩어지며 공중에 사라질 말이었다.


물수건을 침대 옆 펜스에 걸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일어나 엄마를 내려다본다. 엄마는 꼿꼿하게 나를 쳐다본다. 엄마는 입을 웅얼거린다. 무엇을 이야기 하려고 한다. 나는 한걸음 뒤로 물러난다. 듣고 싶지 않던 낮은 음성이 귓가에 박혀온다.

 

집에 가기 전 마트에서 장을 보았다. 포장 된 김치와 반찬들, 그리고 생선. 할머니에게 주고 싶었다. 엄마가 질리도록 주었던 생선과 먹고 나서도 코를 찔렀던 누린내를 맡게 해주고 싶었다.


빌라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연다. 바로 할머니가 보인다. 할머니는 냉장고 앞에 있었다. 누런 불빛 앞에서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다. 나는 한발 짝 앞으로 다가가 할머니를 본다. 된장이 발려진 시금치를 주름진 손으로 꺼내 먹고 있었다. 시계를 본다. 열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봉지를 내려놓는다. 고등어를 받으면서 손에 물이 묻었다. 그 물에서는 비린내가 났고, 지금 마른 손에서도 나고 있을 것 같았다. ‘……년.’ 엄마는 나에게 년이라고 했다. 무슨 년인지는 듣지 못했지만, 분명 마지막 말은 년으로 끝났다. 나쁜 년. 병신 같은 년. 씨발년. 나는 년으로 끝나는 단어들을 생각했다. 김치를 고를 때도, 반찬을 고를 때도, 생선을 고를 때도. 된장이 묻은 할머니의 입술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나는 할머니의 반찬통을 뺏어 싱크대에 버린다. 또한 나머지 음식물들까지도 다 버린다. 싱크대에 온갖 음식물이 섞인 냄새가 올라온다. 나는 마른 침을 삼킨다. 목이 쩍쩍 갈라지는 기분이 든다. 거실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 침을 뱉고 계속 담배를 피운다. 할머니는 휠체어를 움직여 싱크대 앞으로 다가간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만 본다. 씨발년. 병신 같은 년. 좆같은 년. 개 같은 년. 미친년 ……년. 할머니를 보며 엄마를 떠올린다. 수많은 단어 중에 엄마가 나에게 하려고 했던 말이 있을까. 내가 나가기 전까지, 그 후에도 계속해서 하려고 했던 말. 할머니는 싱크대에 버려진 음식을 손으로 집어 먹었다. 할머니는 자꾸만 앉아서 씹으며 삼킨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 튀어오는 말과, 죽을 때까지 들어야 하는 말들이 있다. 어딜 가나, 누구와 말을 해도, 라디오나 TV를 보아도, 심지어 촬영에 들어가 섹스 씬을 찍어도. 그 말이 싫다. 담배를 끄고 부엌으로 간다. 할머니는 내가 옆에 있어도 음식을 먹는다. 나는 싱크대에 물을 튼다. 할머니는 그래도 음식을 먹는다. 뿌연 눈이 잘 보이지도 않으면서.


서랍을 열어 가위를 든다. 할머니의 쪽진 머리를 본다. 엉키고 설케 있는 머리카락. 엄마의 짧던 머리카락. 나는 가위로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자른다. 가위의 서걱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할머니는 더 이상 음식을 먹지 않는다. 나는 음식 위에 자른 머리카락을 버린다.

 

포르노는 집에서 찍기로 했다. 감독은 출연료보다 돈을 더 얹어 입금한다고 했다. 집을 알고 있는 감독은 문을 두들겼다. 감독과 배우. 그리고 제작자와 조연출 9명이 집으로 들어왔다. 감독은 익숙하단 듯이 거실에 앉아 재떨이에 담뱃재를 턴다. 나는 조연출이 주는 옷을 받아들고 갈아입는다. 저, 사람이 있네요. 문을 연 다른 조연출이 나를 향해 묻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고 감독은 눈을 크게 뜨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간다. 할머니가 있었어? 감독의 말이 귓가에 파고든다. 나는 그렇다고 답한다. 감독은 왜 말하지 않았냐고 묻는다. 괜찮아요. 나는 짧게 대답한다. 거실에 있으면 돼요. 감독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은 담배를 마저 피운다.


살색 테이프가 없다는 것은 은근히 큰 일 같이 느껴졌다. 나는 속옷을 입지 않은 채로 비치는 티셔츠와 짧은 고무줄 치마를 입는다. 방에 작은 상을 펴고 그 아래에 카메라를 설치한다. 감독은 다리를 한 번 벌려보라고 말한다. 나는 살짝 다리를 벌린다. 작은 카메라 화면에 사타구니가 보인다. 상대 배우는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조연출이었다.


촬영은 시작되었다. 남자는 알지 못하는 일본어로 중얼거린다. 나는 남자의 팔에 가슴을 붙이고 빳빳한 종이에 손을 대며 말한다. 이게 아니야. 이건 틀린 거야. 남자는 부끄러운 듯이 움츠려든다. 나는 남자의 허벅지에 손을 대며 사타구니를 쓰다듬는다. 남자의 손이 내 손을 잡는다. 나는 팬티를 입지 않은 다리를 벌리고 남자의 손을 잡는다. 남자는 천천히 나에게 얼굴을 들이민다. 나는 눈을 감는다. 남자의 축축한 입술이 맞닿는다. 시원한 바람. 거대하게 불어오는 찬바람. 그 초원 아래에 있는 나. 남자의 얼굴이 가슴으로 향하고, 카메라를 든 감독이 다가온다. 남자는 티셔츠를 벗기지 않고 젖꼭지를 빨기도 하며 나를 쳐다보며 어색하게 웃기도 한다. 나는 신음소리를 내뱉는다.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뭔가를 내뱉는다.


상을 밀고 남자를 눕힌다. 같이 촬영하는 것은 두 번째였지만 남자는 아직도 손이 떨렸다. 나는 남자의 젖꼭지를 빨고, 귓불을 빨기도 했다. 남자가 발기한다. 나는 남자의 팬티를 벗기고 손으로 성기를 만진다. 남자는 내 티셔츠를 벗기기 위해 손을 뻗는다. 나는 남자를 손으로 눕히고 옷을 벗는다. 침이 묻은 젖가슴에 닭살이 돋았다. 나는 남자의 성기를 가랑이 사이로 밀어 넣는다. 음모가 듬성듬성 난 남자의 살에 맞닿는다. 나는 천천히 소리를 지른다. 고개를 젖히고 신음소리를 낸다. 거실엔 할머니가 있다. 짧은 머리를 한 할머니는 거실에서 내가 내는 소리를 듣고 있다. 눈을 감는다. 할머니 뒤편에 붙은 사진을 생각한다. 양을 치고 있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 나는 그 사람들과 섞여 누구의 메일도, 연락도 받지 않는다. 나는 잔잔한 호수를 바라본다. 바람소리에도 요동치지 않는 거대한 호수. 녹록한 색을 지닌 호수의 밑에 팔뚝만한 물고기들. 수천마리의 물고기들이 잉태할 수 백 개의 손톱만한 알들. 눈을 뜬다. 나는 땀을 흘리고 있다. 식은땀인지 온 몸에 닭살이 돋는다. 나는 남자의 어깨를 잡고 허리를 흔들며 엉덩이를 조인다. 감독의 큐사인이 들리지 않는다. 체위는 계속해서 바뀐다. 서서 하기도 하고, 상 위에 올라가서 하기도 했다. 허벅지 안 살이 빨갛게 부어오른다. 나는 남자의 팔을 부여잡고 신음소리를 지르며 입 꼬리를 올린다. 누군가의 컷소리가 떨어질 때 까지 계속된다.


촬영이 끝나고 감독은 담배를 건넨다. 나는 방에서 담배를 피운다. 할머니는 뭐야? 감독이 나에게 묻는다. 나는 그냥 고개를 젓는다. 아무 것도 아니에요. 거실엔 아직도 할머니가 있다. 조연출은 카메라를 정리하고 나갈 준비를 한다. 감독은 밤에 술을 먹자고 한다. 돈을 받았으니 자신이 낸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냥 어색하게 웃는다. 일본에서 모자이크 한 게 먼저 나온다니까 나중에 상황 봐서 비슷하게 하나 더 찍자. 동영상은 퍼진다. 그게 일본 꺼든, 한국 꺼든, 누가 나왔든, 살갗이 나오는 영상들은 하나같이 온 사이트에 퍼진다. 나는 담배를 끄고 거실로 나간다. 거실에는 할머니가 있다. 거실 바닥이 젖어 있다. 할머니가 싸 놓은 오줌들이 휠체어에서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를 흘기는 눈들이었다.


사람들이 가고 나는 할머니를 화장실로 데려가 바지를 벗긴다. 할머니의 바지를 세면대에서 빤다. 누런 오줌의 지린내가 올라온다. 나는 눈을 감았다 뜬다. 할머니는 변기에 앉아 있다. 축 처진 살갗 때문에 허벅다리가 앙상해 보인다. 나는 바지를 널고 할머니의 음부를 수건으로 닦는다. 수건에 음모가 몇 가닥 붙어 있다. 나는 수건을 휠체어에 던지듯 놓는다.


사온 반찬을 덜고 김치를 썰어 접시에 담는다. 허기가 졌다. 가스레인지 아래에서 소리가 난다. 그릴에 올려둔 생선이 구워졌다. 생선을 접시에 담는다. 수저를 놓고 담배에 불을 붙이고 방으로 들어간다. 할머니가 창문 앞에 있다. 문득 할머니가 집에 오고 나서 밖을 나간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창문을 닫는다. 불투명한 창문에선 빛의 실루엣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의 휠체어를 끌어 식탁 앞에서 멈춘다. 할머니는 식탁에 손을 올린다. 나는 할머니에게 숟가락을 쥐어준다. 할머니가 천천히 밥을 푼다.


할머니 앞에 앉아 밥을 먹는다. 숟가락을 크게 밥을 퍼 씹는다. 반찬은 손이 가지 않았다. 천장을 떠도는 누린내가 몸속을 파고들었다. 할머니는 숟가락으로 생선을 툭툭 건드린다. 나는 젓가락을 들어 생선의 살을 바른다. 퍼렇게 날 것이었던 생선이 익어 변했는데, 어째서 눈은 그대로 새카말까. 나는 밥을 삼키지 못한다. 생선은 알을 밴 것이었다. 작은 알갱이들을 할머니의 숟가락에 얹는다. 할머니는 숟가락을 입에 넣는다. 씹을 때마다 회색빛의 알갱이들이 보인다. 수 십 개의 알을 삼키는 할머니. 생선을 바라본다. 생선의 눈을 본다. 짙은 검은색 동공이 줄어들지 않는 생선이 싫었다. 죽어서도 눈을 감지도 못하는 것들.


나는 생선 눈을 뺀다. 엄지손톱만한 생선의 눈을 입에 넣고 씹는다. 툭, 하고 터지는 소리가 난다. 어딜 가도 잔류하고 있을 생선의 알들과 죽어서도 이름이 남을 엄마. 나는 씹었던 생선의 눈알을 뱉는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나오는 음식물을 게워낸다. 허연 밥 알갱이와 그 속에 섞인 고춧가루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마저 구토를 한다. 머리에 툭 하고 뭔가 떨어진다. 할머니의 음부를 닦았던 수건이었다. 할머니는 나에게 수건을 건넨다. 처음으로 나에게 무언의 이야기를 한다. 나는 할머니를 올려다본다. 눈을 치켜뜨고 할머니를 바라본다. 할머니의 때가 낀 목. 어렴풋이 엄마와 갔던 목욕탕을 생각한다. 뜨거운 물의 온도가 느껴지던 목욕탕에서 엄마는 내 등을 밀어주었다. 거울에 서린 김과 엄마의 턱에 흐르던 땀인지 모를 물방울. 그리고 아랫배에 깊게 남은 붉은 수술자국과 살이 터져 생긴 하얀 튼살 자국. 병실에 누워있던 엄마의 배가 기억나질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싱크대에 물을 튼다. 어제 버렸던 음식물이 하수구를 통해서 올라온다. 나는 손으로 음식물을 건져 올린다. 물은 다시 내려간다. 나는 손으로 물을 받아 마신다. 손에서 뚝뚝 물이 떨어진다. 더 이상 올라올 것들은 없었다.

소설 부문 당선자 김지현 interview

       

사소한 이미지로부터의 역발상
 

-소설을 쓸 때부터 당선 예감이 들었나.
“전혀 아니다.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는 착오가 있는 게 아닐까 걱정됐다. 혹시 내가 아닌 건 아닐까? 하면서.”


-제목인 ‘목구멍 깊숙이’는 무슨 뜻인가.
“사실 ‘목구멍 깊숙이’라는 포르노 영화 제목에서 따왔다. 내용과 크게 관련이 있다기보다는 뭔가를 삼키는 이미지를 넣고 싶어서 제목을 빌려왔다.”


-첫 장면이 자극적이다. 자극적인 장면과 전달하려는 주제와의 밸런스 유지가 어려웠을 것 같은데.
“처음 글을 써서 친구들에게 보여줬을 때는 오히려 자극적이지 않고 평이하다는 의견이 전반적이었다. 그래서 실제로 포르노 영상을 많이 찾아보기도 하면서 잘 쓰려고 노력했다. 첫 장면의 경우 초안에서는 그렇게 자극적이지 않았는데 신경써서 수정했다.”


-소설 상에서 가장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주인공이 에로배우다. 옷을 벗어젖히고 다 까발리지만 기억되지 못한다. 사람들이 동영상을 자주 보면서도 에로배우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할머니와 엄마라는 가족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할머니는 말을 못하고 엄마의 말은 주인공이 알아듣지 못하는 소통의 부재를 그리고 싶었다.”


-소설을 쓸 때 어떤 사전 조사를 했나.
“실제로 에로배우 에이전시에 메일도 보내보고 전화도 해봤다. 에로배우 관련 다큐멘터리도 많이 봤다. 에로배우를 직접 만나긴 힘들었지만 에이전시 계약 방법 같은 기본적인 것들은 많이 조사할 수 있었다.”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
“일상적인 것에서 많이 얻는다. ‘목구멍 깊숙이’도 화장실에서 세수하면서 구상했다. 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좋은 것은 떨어지는데 안 좋은 건 역류한다’는 생각이 들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어떤 글을 쓸 예정인가.
“이번 소설을 쓰기 전에는 아직 어리고 경험이 없다 보니 가족적인 이야기를 많이 썼다. 앞으로는 독특한 인물들에 대해 써보고 싶다. 예를 들어 무속인이나 전문 의사같이 반드시 철저히 조사해야 하는 인물들에 대해 쓰고 싶다.”

소설 부문 심사평

이 시대의 코드

젊은이들의 소설을 읽는 일은 즐겁다. 이 시대의 새로운 지점을 발견하게 하기 때문이다. 지난 몇 해 동안 경제 불황을 반영하는 길 없는 청춘들의 방황을 그린 소설들이 대학 문학상뿐만 아니라 신춘문예와 문학잡지 신인상을 휩쓸었다. 고시원과 편의점이 주 무대로 등장하는 소설이 휩쓸던 몇 년도 있었다. 2013년의 새로운 경향은 뭘까? 나는 이 시대를 사랑하지 않는다. 하기야 글 쓰는 자가 시대와 화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이 시대의 코드는 가벼움과 섹스인 모양이다. 응모작들의 상당수가 성의 세계를 건드리고 있었고, 가볍디가벼웠다. 이 가벼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나는 아직도 난감하기만 하다.


하여튼 본심을 통과한 작품은 세 편이다. 함윤이의 「Auto Make Up Remover」는 발상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자동화장제거기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까? 이 시대의 핵심을 관통하는 제목이었고, 주제였다. 그러나 서사가 따라주지 못했다. 이야기가 빈약했고, 인물과 사건이 발상에 미치지 못했다. 하여 가장 안타까운 작품이었다. 이 발상이 그에 값하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엄지희의 「망토」는 솜씨로는 가장 뛰어난 작품이었다. 문장도 가장 좋았다. 섬세함은 돋보였으나 섬세 그 자체가 지향은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섬세함으로 직조된 무엇이다. 그 무엇이 별 것 없었고, 망토라는 상징 또한 진부하여 당선작이 되지 못했다. 자신만의 색깔이 무엇인지 좀 더 고민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


당선작 「목구멍 깊숙이」는 문장이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문장의 수준 때문에 마지막까지 선정을 망설였다. 단문 위주의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문장이 이 수준이라는 것은 아직 문장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선작으로 선정한 것은 소재를 선정하는 안목과 그로부터 만들어낸 이야기의 흥미성과, 대중적 재미를 지향하면서도 끝까지 놓지 않은 주제 때문이다. 한마디로 문장을 제외하면 소설에 필요한 모든 재주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삼대를 이어 온 가족의 가난이, 결핍이, 때때로 마음을 울리기도 했다. 생선이라는 상징물도 처음부터 끝까지 균형을 잃지 않았다. 제대로 듣지 못한 어머니의 마지막 한마디가 주는 여운도 컸다. 그 냉정한 시선이 기본도 되지 않는 띄어쓰기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하게 했다.


소설은 이미 있는 길이 아니다. 인생 또한 마찬가지다. 사는 것도, 쓰는 것도 나만의 길을 찾아 가는 고단한 여정이다. 새로운 문학의 길을 열겠다는, 청춘의 다부진 각오가 그립다.

정지아 교수 (공연영상창작학부 문예창작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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