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인류』(1,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저 / 열린책들 / 784쪽

‘만약에’라는 단어를 혀에 넣고 굴리다 이질감 때문에 내뱉지 못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공상을 재미있게 말하기보다는 현실을 재치 있게 풍자해야 인정받는다는 걸 알기 때문일까. 나이가 들면서 허황된 이야기보다는 맥락에 맞는 촌철살인만 다듬게 된다. 상식에 어긋나거나 비과학적이라는 느낌이 들면, 금방 생각을 접어버린다. 그렇지만 늙어서 전복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선 ‘천재’적인 머리가 필요한 게 아니다. 상식적인 사고를 파괴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나는 동시대에 ‘돈 키호테’처럼 용감하게 사고하는 한 소설가를 알고 있다.


혀끝을 굴리며 호명하면 입천장을 살짝 간질이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대표작은 단연 『개미』다. 개미의 생태를 개미의 시각으로 흥미롭게 묘사한 책을 읽으며 곤충을 연상시키는 저자의 이름과 이 역작이 상관관계를 갖고 있지는 않을까 의구심을 품었던 기억이 난다. 개미의 시각으로 묘사한  세계가 지나치게 사실적이고 매력적이어서, 어린 나는 이 작가가 곤충이거나, 곤충을 전공한 전문가이거나, 어린 천재일 거라 확신했었다. 『개미』의 저자가 영장류에 속하며, 대학에서 법학과 저널리즘을 전공했고, 개미 세계를 상상하기엔 나이가 지긋하다는 걸 알았을 때 꽤나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이렇게 극찬하지만 내가 읽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은 『개미』, 『뇌』, 『나무』 3편이 전부다. 고로 나는 모든 작품을 읽어보지 않은 상태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대한 일정한 선입견을 다져 왔다. ‘지구 밖에 생명체가 있다면 그들은 인간보다도 개미들과 대화하려 할 것이다’는 저자의 생각은 호수에 던진 돌처럼 큰 파문을 그렸다.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극복한 저자가 다른 인류처럼 다가왔다. 위의 세 작품 이후에 발표된 후속작에 약간의 불만을 가졌던 것 역시 사실이지만, 이번에 책으로 엮어 출판된 『제3인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와의 권태기를 극복할 만한 전기가 된 작품이다.


『제3인류』는 미래의 인류는 소형화될 것이라 예측하는 다비드 웰즈와 여성가 인류의 미래라 믿는 오로르 카메러가 인류의 파멸을 막기 위해 펼치는 위대한 실험과 탄생부터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까지 연결되는 지구의 역사가 두 축을 이룬다. 신화·성경·역사적 텍스트를 상상력의 끈으로 그럴듯하게 엮어내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엉큼한 상상력은 장대한 스케일로 확장되며 과감하게 전개된다. 지구상에 존재한 제1의 인류가 17m였고, 제2의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170cm였다면, 제3의 인류인 호모 메타모르포시스는 17cm일 것이라는 도발적인 상상력에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어떤 방식으로 박진감을 불어넣을 것인가는 소설을 읽는 또다른 묘미가 될 것이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며 감당해야 할 도발적인 상상력으론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현생 인류 이전에는 인간보다 키가 10배나 크고, 10배나 오래 사는 거인들이 살고 있었으며, 이후에는 키와 수명이 1/10밖에 안되는 인류가 살 것이다.
- 우리가 지구라고 부르는 행성은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직·간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현재 나온 소설 1,2권은 제1부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약 700쪽 분량의 내용이 그간 알려진 과학적 사실과 신화적 내용들을 도발적 상상력으로 조화롭게 결합시킨 산물이었다면, 앞으로는 제3의 인류인 ‘호모 메타모르포시스’가 현재의 인류로부터 어떻게 승리를 거둘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1부의 성공이 확장된 상상력을 얼마만큼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가 하는 ‘노련함’에 달려 있었다면, 2부는 제3인류가 호모 사피엔스의 세계에서 펼치는 모험을 얼마만큼 ‘담대하게’ 그려낼 수 있는가에 따라 소설의 완성도가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소설가로서의 노련함보다는 담대함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던 이 저자가 또 한번 우리들을 놀라게 할 것임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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