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올린 게임 레벨보다
밤새 읽은 책 한권이
추억 속에 남는다


오늘만은 나도 책벌레
불 켜진 한밤의 도서관에서
다함께 '꿈'을 읽다

 

프롤로그
우리는 때때로 밤을 꼴딱 샌다. 누군가는 내일 있을 쪽지 시험을 위해서, 또 다른 누군가는 친구가 추천해준 200화짜리 웹툰을 정주행 하느라. 하지만 웹툰을 볼 때는 그토록 말똥말똥했던 눈이 책만 보면 병든 병아리처럼 감긴다. 하얀 건 종이요 검은 건 글자일 뿐 독서의 즐거움은커녕 줄거리가 자장가를 불러주는 것만 같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데 프랑스 영화에서 보던, 밤새 책을 읽고 문학인들과 토론하는 살롱의 낭만을 실현시킬 곳은 없을까. 중간고사가 끝난 지난 1일, 웹툰 대신 밤새 책을 읽겠다는 포부로 도전장을 내민 학생들이 삼삼오오 서울캠 중앙도서관에 모였다. 다음날까지 졸음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것인가. 긴장감도 잠시, 책을 넘어 꿈을 읽는 청춘들이 밤새 도서관 불을 밝혔다.

 

 

S#1 독서의 시간
“밤새도록 책을 읽는 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라고 좋은 추억 만들어가길 바랍니다” 중앙도서관 조성한 관장의 격려사가 끝나자마자 학생들이 책꽂이로 달려든다. 산뜻한 에세이집부터 두께만으로도 위압감을 주는 철학서까지. 오늘 밤을 함께 할 녀석이니 선택은 신중해야 한다. 이 책 저 책 들었다 놨다하는 그들의 얼굴엔 저녁식사메뉴를 정할 때만큼이나 고뇌하는 흔적이 가득하다. 


 “꼭 완독하겠습니다.”
수줍어 보이는 한 남학생이 각오를 다지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평소 책 읽을 일이 없는데 색다른 경험이 못내 기대된다고. “시험기간 외에는 학교에서 밤 샐 일이 없는데 책을 읽으며 밤을 샌다니 기대돼요.” 이아름 학생(공공인재학부 1)도 활짝 웃으며 가지런히 꽂힌 책들을 살펴본다.


집에서 혼자 책을 읽을 땐 금세 까무룩 잠이 들었지만 150여 명의 동지들과 함께하니 시간가는 줄 모르겠다. 게다가 간식까지 무한 제공이라니 간식코너에서 과자와 귤을 가져가는 손이 부지런히 바쁘다. 드문드문 들리던 소란스러움도 점차 잦아들었다.  독서의 밤, 담요를 두른 채 귤을 까먹으며 책장 넘기는 손길 따라 ‘낭만’이 춤춘다.

 

 

S#2 OX퀴즈
새벽 1시다. 책 읽는 것도 슬슬 지칠 무렵 정신을 확 들게 해줄 만한 행사가 시작됐다. 바로 독서 관련 OX퀴즈. 거북목으로 독서하느라 지친 학생들이 재치 넘치는 사회자의 주도 아래 굼뜬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김동인, 주요한, 전영택 등이 모여 발간한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 문예동인지는 ‘창조’이다. 맞으면 O, 틀리면 X!” 여기저기서 끙끙 앓는 소리와 원망의 탄성이 들려온다. “너무 어려워요!” 투덜대면서도 서로 눈치를 보며 이리저리 O와 X 사이를 옮겨 다닌다. 보너스 문제도 인기가 만만치 않다. 아이돌 파이브돌스의 오연경씨가 직접 증정하는 싸인 CD에 번쩍번쩍 손을 드는 남자 학우들이 돋보였다. 퀴즈에 한창 집중하다보니 어느새 명예의 세 명 만이 남았다. 모두의 긴장 어린 시선 속에 드디어 결전의 시간! 운명에 맡긴다는 초연한 표정의 세 사람이 O와 X로 갈라서고, 접전 끝에 우승자가 정해졌다. “정말 우승할 줄은 몰랐어요!” 큰 눈을 왕방울만하게 뜨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우승자에게 박수세례가 쏟아진다.


S#3 자본주의팀과 함께 토론을
시간은 어느덧 새벽 4시 30분. 또 하나의 행사 코너가 지친 학생들의 마음을 달래준다. 바로 공개 독서토론 시간! 이번학기부터 중앙도서관은 학생들의 자발적 독서토론을 장려하는 독서커뮤니티 ‘중독’을 운영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좋은 활동성과를 보이고 있는 ‘자본주의팀’이 공개 독서토론을 선보였다. 토론 전문가들답게 많은 학생들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진행하는 토론에 모두들 숨죽여 귀를 기울인다.


자본주의팀이 선택한 책은 대니얼 액스트의 『자기절제 사회』(민음사 펴냄)로 유혹거리가 많은 현대에서 어떻게 자기절제를 하는가에 관한 자기계발서다. 자본주의팀은 책에 대한 각자의 감상으로 토론을 시작해 ‘자기절제는 내부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문제인가, 외부적 환경에 좌우되는 문제인가’라는 공통된 주제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여유보다는 즉각적 행복을 추구하는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자기절제가 어렵다는 외부 구조적 관점에 청중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곧바로 인간은 누구나 자기 의사대로 절제를 행사할 수 있다는 내부적 관점의 반론이 튀어나온다. 듣고 있던 학생들도 노트에 필기까지 해가며 몰입하고 치열한 토론이 이어졌다. 시연이 끝난 후에는 자본주의팀 외에도 다양한 학생들과의 질의응답을 진행해 많은 참여를 이끌어냈다.


“이번 행사를 통해 독서토론이 누구나에게 친근하고 쉽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자본주의팀 구성원인 이승휘 학생(국어국문학과 2)이 웃으며 소감을 밝혔다.

 

 

S#4 밤샘 그 후
새벽 5시가 넘어가자 여기저기 등을 둥글게 말고 엎드려 잠든 학생들의 모습이 보인다. 책과 치열한 사투를 벌인 듯, 미간에 주름을 잡은 채 고개만 숙이고 졸고 있기도 부지기수.


반면 밤샘독서의 전쟁터에서 아직 죽지 않은 학생들도 있다. 생존자들은 책에 푹 빠져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더니 주위를 휘휘 둘러본다. 전멸한 많은 친구들을 보며 뿌듯하다는 듯 씨익 웃곤 기지개를 켠다. 뒷목이 뻐근하지만 마음은 가볍다. 밤샘독서 행사의 폐회 시간인 6시가 다가온다. 새벽 내내 바쁘게 돌아다니며 청소하고 간식을 준비해주던 직원들이 학생들의 쪽잠을 깨웠다. 비몽사몽 상태로 눈을 비비던 학생들이 경품추첨을 한다는 말에 반짝 살아난다. 경품에 당첨된 학생들은 날아갈 듯이 가벼워진 얼굴로 활기를 되찾았다.


밤샘독서 행사가 끝나자 다들 연거푸 하품을 하며 짐을 챙겼다. 도서관 입구 근처에 마련된 캘리그라피 코너에 매미처럼 달라붙어 감상을 쓰는 학생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밤새 먹었다. 지식도 채우고 배도 채우는 밤샘독서!”라고 적힌 깨알 같은 캘리그라피에 “나도 엄청 먹은 것 같다”며 까르르 웃는 모습이 영락없는 청춘이다.


새벽 6시, 해가 아직 뜨지 않아 까만 새벽. 도서관을 나서는 학생들의 발뒤꿈치에 길게 그림자가 걸렸다. 긴 그림자만큼 지식도, 추억도 한 뼘 더 자랐다. 언젠가 돌이켜 생각해본다면 밤새 술을 마신 것 보다 밤새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는 추억이 더 포근하게 남지 않을까.

 

NG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카이사르가 이집트를 정복하고 반란군을 진압한 후 말했다.  밤샘독서를 정복하고 책을 덮으며 학생들은 뭐라고 외쳤을까. “잠이 왔노라, 다크써클을 보았노라, 둘 다 이겼노라!”


밤샘독서가 깊어가는 새벽 4시경, 졸음이 가득한 눈꺼풀이 만연하다. 의지를 꾹꾹 다지고 시작한 밤샘독서지만 느닷없이 찾아온 잠은 쉽게 떠나질 않는다. 눈을 비벼도 뺨을 때려도 역부족이다. 끝내 잠과의 전쟁에서 패배를 맛본 몇몇 학생들은 웅크려 쪽잠을 청한다. 반면 죽어도 잠에게 질 수 없다는 올빼미들에게 찾아온 낯선 그림자. 그들 눈가에 슬며시 다크써클이 드리워진다. 한 여학생이 거울을 요리조리 쳐다본다. 눈 밑의 퀭함은 가시질 않고 어째 더 짙어지는 느낌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 다크써클 공격개시! 팩트를 꺼내 눈 밑을 톡톡 두들겨준다. ‘이 정도면 다크써클도 좀 가려졌겠지?’ 왠지 모를 뿌듯함과 함께 다시 책을 집어 든다. “잠도 다크써클도 이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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