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세상에 쉬운 일 하나 없더라’며 신문사 생활의 고충을 털어놓던 기자는 벌써 임기만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처음 신문사에 입사하던 날로부터의 2년이 눈 깜짝할 사이 훅 지나갔다. 그 사이 기자에겐 신문사 증후군이란 게 생기고 말았다.
 
 신문사 증후군. 신문사 때문에 생긴 병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겠다. 스트레스를 가져다주는 아주 몹쓸 병이다. 이로 인해 기자는 병원을 제 집처럼 드나든다거나, 사소한 일에 강박증이 생기게 됐다. 
 
 기자는 본래 꼼꼼함과 섬세함과는 다소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철두철미함보단 약간의 여유로움이 더 좋았으니까 말이다. 이렇다보니 지난학기 첫 여론부 생활은 유난히도 고단했다. 신문사의 모든 부서가 다 마찬가지겠지만, 여론부에선 특히나 ‘꼼꼼함’이 생명이다. 다양한 코너로부터 쏟아지는 칼럼과, 학내의 여론을 책임지다보니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치면 큰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기자의 빈틈 탓에 중대신문에 기고한 필진의 글을 불가피하게 수정하고선 연락을 못했다거나, 필진이 부탁한 사항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등의 실수가 연거푸 발생했다.
 
 몇 번의 실수로 자신감은 떨어졌고, 스트레스는 날마다 쌓여갔다. 작은 실수 하나가 큰 허물이 되어 신문사를 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까지 번졌다. 하지만 사람을 만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여론부를 그만 둘 수 없었다. 결국 중대신문에 끝까지 남기로 결정한 이상 스스로 바뀌는 것이 최선이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가 아니라 ‘피할 수 없으니까 고쳐야’했다.
 
 우선 내 빈틈을 메우기 위해 그동안 책상 서랍 속 고이 모셔뒀던 메모장을 꺼냈다. 어색했다. 그러나 어색함은 잠시, 해야 할 일들을 차례로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곤 하나 둘, 일을 마무리할 때마다 적어놓았던 일들을 거침없이 지워갔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항상 하는 일이 있다. 필진에게 연락을 돌릴 것. 필진 컨택을 얼른 마칠 것. 그리고 들어온 원고를 검토할 것. 수업을 듣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머릿속에는 온통 해야 할 일들로 가득 차 복잡했다. 생각날 때마다 적었다. 분명 스트레스가 동반되는 일이지만 적으면 적을수록 마음은 가벼워졌다. 어느날 신문사 L선배에게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지나가는 말일지도 모를 이 한마디가 내겐 그 어떤 말보다 그동안의 어려움을 한 번에 녹아내리게 만들었다. 
 
 앞서 몹쓸병이라고 표현했던 증후군은 사실 기자의 성격을 바꿔놓은 고마운 존재다. 메일함을 매일매일 확인하는 버릇도, 필진들과의 잦은 연락도, 쏟아지는 칼럼도 익숙해져가기 때문일까. 그동안의 나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꼼꼼함’은 마치 내가 원래 그랬던 사람처럼 자리잡혀갔다. 
 
 지독한 신문사 증후군은 기자를 아픈 만큼 더 강하게, 보다 단단하게 만들었다. 아쉽지만 기자로서 지낼 시간도 이젠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3번의 신문을 끝으로 더 이상 사람들에게 칼럼을 받을 일도, 인터뷰이나, 필진을 컨택하는 일도 내 몫이 아니게 된다. 이 사실이 기자를 해방감에 기쁘게 하기 보단 섭섭하게 한다.
 
 편집국을 나간 후엔, 익숙했던 신문사가 점점 낯설어지겠지만 기자에게 ‘신문사 증후군’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임기원
여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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