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과목을 맡은 이후 다양한 학과의 멋진 학생들을 만나게 되어 강의하기 전날에는 기분 좋은 긴장을 하게 됩니다. 강의는 문화적인 관점에서의 건강과 질병에 관한 것인데 강의 내내 인간의 가치와 경제성에 관하여 마음 속에서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전공분야가 의학이라서 그런지 인간의 존엄성을 경제적으로 평가하는 현실에 대해 마음이 불편합니다. 이 불편함은 나의 삶 어느 경험에서에서부터 시작된 걸까? 이런 생각은 시대에 뒤 떨어진 것 아닌가? 하고 반문합니다. 대학에서 교수업적평가를 산출물로만 하고 있어 교수의 모든 행위를 경제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실정임을 누구나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내 자신은 가치니 뭐니 하며 주변에서 어정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만약 내가 인간의 존엄성의 가치를 경제적으로 해석하여 시장의 가격으로 생각하기로 마음을 굳힌다면 스마트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생각 뒤에는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삼십 중반에 대학교수가 되고 이제는 중늙은이가 되었지만 실직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빈곤의 상상은 끔찍하기만 합니다. 이제 막 연금수혜를 받을 수 있는 연배에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20년 이상을 더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데 빈곤과 두려움을 느껴야 하는 변화를 맞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 또한 변화에 대한 적응을 애써 거부하는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중요한 점은 조선시대 지배계층인 사대부가 국민의 건강을 어떻게 생각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핵심은 “조선시대의 양반계층이 백성의 몸과 마음이 국력임을 진정 깨달았다면 조선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유럽으로부터 전수 받은 근대의 일본의 건강관은 조선과 청나라를 정신적으로 극복할 수 있게 하였으며 동아시아를 정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발전하고 나아가 러시아를 굴복시킵니다. 이때의 일본이 지금의 일본입니다. 우리나라 지도층(소위 신 양반계층 또는 부의 세습을 당연시하는 계층)이 우리 젊은 학생들의 건강 즉 몸과 마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과연 지금 젊은이들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조선시대의 일반백성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양반계층에 맡기고 알아서 해 주길 바라듯이 가만히 있을까?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의 진지한 열정의 눈을 마주하면서 나의 두려움이 전해질까 겁이 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사회는 내가 있거나 없거나 관계없이 그대로 굴러갈 것을 생각하면 저절로 힘이 빠지지만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합니다. 남을 믿을 수 있는 근거도 되기도 하니까요. 우리에게 두려움의 대상으로 나타난 변화가 학생들에게는 기회일지도 모르는 역설의 시대입니다. 우리 모두 변화에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와 실력을 갖추기를 기원합니다.
 
홍연표 교수
의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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