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에게 국정원은 고유명사로 기억된다. 80년대 초 대학에는 안기부란 이름의 국정원 직원이 상주했다. ‘김 선생’으로 불렸던 그는 경찰을 지휘하며 학생과 교수들의 동태를 감시했다. 당시 친구 몇몇은 등굣길에 군대에 끌려가기도 했고(강제징집), 비판적인 교수들은 ‘남산’으로 끌려가 고초를 당했다. (당시 안기부 건물이 남산에 있었다.) 이때 ‘고초’라는 말은 은유가 아니다. 매우 구체적이며 직접적인 폭력과 협박을 의미한다. 
 
 87년 민주화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대학 감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보다 은밀하고 섬세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마침 중앙대 담당직원은 필자와 재학시절부터 잘 아는 ‘이 선배’였다. 그는 학문의 길에 들어선 필자를 격려했고, 유학을 떠나는 필자를 굳이 불러내 ‘봉투’를 주기도 했다. 그 봉투의 출처는 안기부 자금이겠지만, 그 선배의 진심을 의심해본 적은 없다. 다행히 그가 ‘공적인’ 부탁을 한 적은 없었다. 언제부턴가 그 선배와의 연락은 끊겼지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고 있으리라 믿고 있다. 
 
 최근의 국정원 기억은 한 여학생과 연결되어 있다. 적대와 공포와 대상이었던 국정원이 2000년대 들어서면서 조금씩 선망의 직장으로 바뀌고 있었다. 학생들 사이의 취업스터디모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암암리에 족보가 나돌았다. 그러다 몇 년 전에 한 여학생이 국정원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접했다.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언젠가 북한산에 갔을 때 걸음이 하도 빨라 ‘박 하사’란 별명을 붙여주었던 여학생이었다. 이제 국정원도 달라지겠구나 ― 이런 기대를 갖게 된 것도 이때쯤이다. 
 
 작년 대선 전에 국정원 여직원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필자를 긴장시켰던 것은 혹시 ‘박 하사’가 아닐까 하는 우려였다. 다행이 그녀는 아니었다. 불안한 마음은 홀쳤지만, 국정원이 ‘아직도 이 정도밖에 안 되나’ 하는 탄식이 배어 나왔다. 문제의 여직원 역시 뛰어난 인재였을 거고, ‘새로운’ 국정원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었을 것이리라. 그런 그녀에게 조직으로서 국정원이 시킨 일은 알바 수준의 댓글달기였다. 얼마나 찌질한 일인가. 
 
 제도와 행위는 구분되어야 한다. 제도로서 국정원의 필요성과 행태의 저열함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동맹국 지도자까지 도청하는 미국의 정보기관을 보라. 그만큼 치열한 정보경쟁이 벌어지는 것이 국제사회다. 국정원의 행동이 밉다고 국정원의 해체를 주장하는 것은 ‘목욕물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리는 꼴’이 된다. 문제는, 제도로서 국정원의 필요성이 그들의 ‘위헌적인’ 정치개입을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노골적으로 여당 후보를 지지하고 야당후보를 간첩으로 매도하는 일은, 명백한 정치개입으로 단죄 받아야 한다. 게다가 자신들에 대한 비난을 피하기 위해 국가비밀(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하는 행위는 탈법을 넘어서 국가이익을 훼손하는 ‘반국가적’ 행위에 해당한다. 용납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우리 ‘박 하사’가 일하고자 했던 국정원은 이런 곳이 아니었을 것이다. 국민과 국가를 위해 음지에서 묵묵한 일하는, 그리하여 그들이 내세운 원훈처럼,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이 실현되는 그런 곳이었을 것이다. 국정원은 본연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의 젊은 ‘박 하사’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그런 좋은 직장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깊은 반성과 개혁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최영진 정치국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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