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그림책 『100만 번 산 고양이』를 읽어본 적이 있는가. 그림책 작가 사노 요코의 작품으로 요상한 얼룩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다. 백만 년이나 죽지 않고, 백만 번이나 죽고, 백만 번이나 산 기묘한 얼룩 고양이. 백만 명의 사람이 얼룩 고양이를 귀여워했고, 백만 명의 사람이 얼룩 고양이가 죽었을 때 슬퍼했다. 그러나 얼룩 고양이는 단 한번도 울지도 웃지도 않았다. 한때는 도둑고양이, 서커스단의 고양이기도 했지만 얼룩 고양이가 진정으로 마음에 들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왜냐, 얼룩 고양이는 자기 자신만을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난생처음으로 사랑하는 하얀 고양이를 만나 행복한 삶을 살지만 그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하얀 고양이가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싸늘하게 굳어버린 하얀 고양이 옆에서 매일 밤 하염없이 울던 얼룩 고양이도 결국 생을 마감하게 된다. 참 심오한 이야기다. 아동문학을 전공한다고 대학을 다니는 기자도 몇 번이나 책을 곱씹어봤지만 얼룩 고양이의 마음을 헤아리기에 역부족이었다.
 
 기자는 그렇게 풀리지 않은 실타래를 품고 강의실로 향했다. 60명 남짓한 학생들이 북적이는 좁디좁은 강의실 안.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등장한 교수님은 강의실을 쑤욱 훑어보더니 출석부를 부르기 시작한다.
중간쯤 불렀을까. “임XX! 임XX! 오늘 안 왔나?” 교수님의 말에 그제야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학생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럼 같은 과 동기들은 임 학생 왜 안 오는지 알고 있나?” 학생들은 그저 모르겠다는 듯 고개만 절레절레 흔든다. “여러분들은 왜 동기가 안 오는지 궁금하지 않나? 다음부턴 동기가 안 왔을 때 그 사유를 미리 알고 오도록. 아님 모두 결석처리 해버릴 거야!”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교수님의 핀잔에 한쪽에선 웃음을 한쪽에선 의아함을 드러냈다.
 
 말수가 적은 교수님이 그날따라 왜 그런 말을 하셨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학생들이 너무 떠들었나? 수업 태도가 엉망이었나? 그러다 문득 기자는 최근 우리 곁을 떠난 한 유학생이 떠올랐다. 아무도 그 유학생이 왜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없지만 뒤늦은 관심에 미안함만 밀려들 뿐이었다.
 
 모든 게 찰나였다. 유학생이 우리 곁을 떠나버린 그 순간도, 누군가 그 유학생을 기억하는 일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우리 주변에 관심을 두는 일도 말이다. 왜 우린 지금까지 누군가의 존재와 부재 사이의 간극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는지… 그리고 왜 우리는 아직도 타인의 시선에 갇혀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용기가 부족한 것인지. 
 
 앞서 이야기한 『100만 번 산 고양이』의 얼룩 고양이는 그 진리를 깨닫기까지 백만 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백만 번째 죽음 앞에 영원히 잠들고 말았다. 때론 죽음이 사랑하는 그 누군가를 빼앗아 간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계속해서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 고통 그 자체일 것이다. 마디마디가 끊어져 녹는 듯한 기분 말이다. 만약 이것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당신은 그 누군가를 가슴 깊이 사랑했다는 증거다. 그리고 아직도 그런 경험이 없는 자라면 지금 당장 당신의 주변을 샅샅이 살펴봐라. 어디선가 분명 당신을 기다리던 그 누군가가 혹은 당신이 그토록 찾던 그 누군가가 당신을, 언제나, 항상,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최아라  
문화출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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