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곤 영화감독(영화학과 02학번)
  • 임기원 기자
  • 승인 2013.09.29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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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이 선택한 청년, 그에게 감독이란 타이틀을 안기다

 

사진제공 문병곤 동문

지난 5월, 예상 밖의 소식으로 국내외의 영화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사람이 있다. 바로 제 66회 칸영화제 단편부문 황금종려상의 주인공 문병곤 동문(30·사진에서 가장 왼쪽)이다. 장편경쟁부문에서 한국영화가 후보에 오르지 못했기에 문감독의 수상을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영화계 사람들의 찬사를 받으며 당당히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 <세이프>는 대한민국 영화의 위상을 확인하는 데 충분했다. 수상 이후에도 부지런히 다음 작품을 생각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소탈한 옷차림과 꾸밈없는 모습, 인터뷰를 위해 만난 문병곤 감독의 모습이었다. 칸영화제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영화감독의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얼마 전에 본 영화 <더 테러 라이브>가 인상 깊었다며 기자에게 추천하던 그의 모습에서 천진난만함도 묻어났다. 그러나 언론의 쏟아지는 관심과 인터뷰에 정신없는 틈에도 새로운 시나리오를 생각하는 모습은 영화감독 그 자체였다. 
-칸영화제 수상이후 달리진 게 있다면.
“대통령 축사도 받고 학교에 플래카드도 걸리고 여기저기서 보자고 하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하루에 인터뷰를 5개씩 한 적도 있고요. 순간적으로 엄청 바빠졌죠. 아무래도 언론의 관심은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이런 부분 외에는 수상전과 달라진 부분이 없어요.”
-달라진 부분이 없다니.
“수상 직후엔 여러 언론사로부터 인터뷰도 많이 하고 축하인사도 많이 받았는데 이젠 거의 잠잠해졌죠. 대신 전처럼 꾸준히 다음 작품을 생각하고 있어요. 영화와 관련해서 제작사 대표님도 만나고 영화도 보고 책도 많이 읽고요.”
-이번이 두 번째 칸영화제 방문이라고.
“2011년에 졸업작품이었던 단편 <불멸의 사나이>로 처음 칸영화제 비평가 주간 후보에 올랐어요. 당시엔 포부가 너무 컸던 탓에 내심 기대를 가졌는데 결국 수상은 하지 못했죠. 실망이 컸던 것 같아요.” 
-<세이프>는 수상을 예상했을 것 같다.
“첫 번째 방문과는 다르게 기대보다는 편한 마음으로 임했어요. 다른 영화감독들과 같이 술도 마시고 칸의 분위기를 즐겼죠.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만족했거든요. 영화제가 끝나고 얼른 한국으로 돌아가서 시나리오를 써야겠다는 생각만 했었어요.”  
-이름이 호명됐을 때 기분이 어땠나.
“정말 당황했어요. 상을 탈거라고 생각했던 감독들이 있었는데 제 이름이 불려서 놀랐거든요. 전혀 생각을 못하고 있었는데 황당했죠. 얼떨결에 시상대에 올라갔는데 수상소감도 준비를 못해서 제대로 말도 못했어요. 바보같이 무대 앞으로 퇴장하고.(웃음)”
-수상 이후 곧바로 한국으로 귀국했는데.
“원래는 조금 더 머무를까 생각했는데 민망하기도 하고.(웃음) 그러던 중에 학교 선배가 일찍 들어오는 게 어떻냐고 조언을 해줬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잘한 것 같아요. 일찍 온 만큼 인터뷰도 많이 하고 <세이프> 제작을 지원했던 필름게이트에서 기자회견도 크게 열었고요.”
 
칸영화제 두 번째 방문 만에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지만 턱시도도 준비하지 못했을 만큼 수상에 대한 별다른 기대감이 없었다는 그. 하지만 13분 남짓한 그의 작품 <세이프> 속의 강렬한 메시지는 칸 영화제의 인사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세이프> 얘기좀 해달라.
“사행성 게임장 환전소에서 일하는 여대생의 이야기에요. 빨리 돈을 벌어서 나가고 싶어 하지만 결국 그 과정에서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는 거죠. 허우적대면 허우적댈수록 더 깊은 곳에 갇히게 되는 개미지옥 같은 곳을 표현했어요.”
-영감은 어디서 받았나.
“영화감독을 생각하다가 잘 안 되서 취업을 준비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막상 회사를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오히려 그 곳에서 나오고 싶어 하더라고요. 회사나 조직의 굴레가 싫어서 회사를 나오고 싶은데 열심히 하면 할수록 회사에서는 돈을 더 주면서 절대 안 놓아주는 그런 상황들을 <세이프>에 담았어요.” 
-특별히 주인공을 여대생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나.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동시에 겁도 많은 나이가 대학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좁은 공간에 갇혀있을 때 남자보단 여자가 공포감이 더 조성된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금전적인 부분에서도 약간 더 계산적인 캐릭터가 여대생일 것 같았어요.”
-캐스팅은 어떻게 하나.
“대부분 단편영화제에서 알게 된 친구들을 캐스팅 하는 경우가 많아요. 시나리오를 쓰고 직접 부탁을 했죠. <세이프> 여주인공의 경우엔 순진해 보이면서 비겁해 보이는 양면성이 마음에 들었어요.”
-작품들이 대부분 어두운 편인데.
“상업영화가 아니고 독립영화다 보니까 공부하면서 느꼈던 것을 영화로 이야기 했던 것 같아요. 돈과 관계없이 관심이 가는 내용들을 찍었어요. 내용이 어두웠던 건 아무래도 제가 관심을 가지던 분야가 사회의 어두운 부분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어둡게 표현된 것 같아요. 만약 좋아하는 게 즐거움이고 연애면 즐겁게 표현됐겠죠.(웃음)”
-<세이프>의 원작은 어떠한가.
“영화학과 동기인 권오광 작가의 시나리오 <한 평짜리 혐오>를 각색해서 탄생한 게 세이프에요. 이 작품에서도 환전소라는 공간과 등장인물은 같아요. 원작에서 환전소가 의미하는 것이 ‘대학’이라면 세이프는 ‘돈’이라고 할까요. 빠져나가려고 할수록 더 깊숙이 빠져든다는 전체적인 틀은 같지만 상황들이나 캐릭터의 대사들이 달라요. 세이프에선 주인공들의 대사가 거의 없어요.”
-그래서인지 영화 속에서 음향효과가 특히 돋보인다.
“우선 공간이 한 평 남짓한 환전소로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서나 상황을 전달해야하는 데 소리가 유용하다고 생각했어요. 긴장감을 주기 위해 돈 세는 소리, 망치 소리, 손가락으로 카운터 탁자를 두드리는 소리 등의 효과음을 점점 커지게 설정했어요. 대사보다 소리로 표현하는 게 사람들을 더 긴장할 수 있게 만드니까 소리에 많이 의지했죠.”
-<세이프>라는 제목의 의미가 궁금하다.
“세이프는 ‘안전하다’와 ‘금고’의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어요. 원작에 없는 금고를 추가하면서 내용을 조금 더 강화시켰어요. 안전할 것 같은 금고가 결국엔 위험에 빠뜨리는 아이러니를 담았어요. 제목을 무엇으로 지을까하다가 우연히 세이프가 떠오른 거죠.”

13분 남짓의 단편영화 <세이프>
짧지만 강렬한 인상으로 칸의 무대에 오르다
 
▲ <세이프> 속 장면.
날카로운 메시지와 짜임새 있는 구성 그리고 작품 속 등장하는 여러 장치까지. 좋은 메시지가 담긴 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그는 어린시절부터 영화와 친숙할 것만 같다. 
-영화학과가 아닌 생명공학과 학생이었다니 다소 의외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딱히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생각은 안했어요. 결국 점수에 맞춰 대학에 진학했죠. 영화 <비트>의 정우성처럼 의지가 별로 없던 학생이었어요.(웃음)”
-영화학과로 진학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학교를 다니는 동안 굉장히 공허했어요. 진짜로 하고 싶었던 것도 없었고요. 학교를 다니면서 재미도 없고 돈은 돈대로 쓰는 상황이 싫었던 것 같아요. 그러던 중에 중앙대 영화학과에 다니던 형을 보면서 어느 순간 영화가 재밌겠다 싶더라고요. 원래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7월부터 반수를 하게 됐죠.”
-영화감독치곤 시작이 소박하다.
“엄청난 포부를 가지고 시작하진 않았어요. 일단 취직을 하기는 싫었고.(웃음) 큰 야망보다는 흥미로워서 ‘한번 해보자’ 이런 생각이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이야기를 읽는 것은 누구나 재밌어 하잖아요.”
-형제 모두가 영화를 한다고 하는데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
“반대는 없었어요. 제가 영화학과에 진학할 때만 해도 영상, 영화 쪽이 비전 있는 학과였어요. 부흥기라고 할까. 사회 분위기가 영화의 부가가치가 높다는 분위기였고 대학에서 영화학과가 막 생기던 때였거든요.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별 말씀 안하셨던 것 같아요. 대신에 졸업하고 난 이후의 생활비는 스스로 해결했죠.” 
-원하는 공부를 시작하니 학구열이 높았을 것 같다.
“사실 수업을 잘 안 나갔어요. 학점이 낮은 편이죠. 2.35정도인가.(웃음) 그것도 군대 다녀와서 정신 차리고 공부해서 올린 점수에요. 날라리는 아니었는데 그때는 내가 필요한 게 무엇인지 혼자 책을 읽으면서 고민하던 시간이 많았던 것 같아요. 물론 수업을 안 나간 게 조금 후회가 되긴 해요. 수업을 같이 병행했다면 보다 더 많이 배웠을 수 있었겠죠.” 
-학부생 시절, 영화제작이 상당히 늦은 편인데 고민의 연장선이었나.
“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고 그만큼 귀중한 시간을 뺏는 건데 의미가 있어야 하잖아요. 3학년 때까진 영화가 그냥 폼 잡는 거라고 생각해서 안 찍었어요. ‘나는 영화인이야’ 이런 식으로 자존감을 불필요하게 내비치는 행위들이 싫었어요. 대신 내가 가지고 있던 고민들을 발전시키고자 했죠.” 
-고민의 끝은 어디였나.
“3학년을 마치고 간 군대에서도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제대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영화를 만들어볼까 생각하게 됐어요. 그렇게 <노 모어 커피 브레이크> 라는 첫 작품을 만들었죠.”
-취업을 준비했는데 영화감독의 길을 생각하진 않았던 건가.
“두 번째 작품인 <불멸의 사나이>를 찍고 나서도 별다른 성과가 없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취업을 결심하게 됐죠. 정직원이 되지는 못했지만 CJ E&M에 필라멘트라는 회사에서 10개월 정도 인턴으로도 근무했어요.”
-결국 영화로 돌아온 이유는. 
“사실 취업이 안 되서 못한 것도 있어요. <불멸의 사나이>로 칸에 다녀왔지만 역시 별다른 성과가 없었어요. 그래서 광고회사에 지원했는데 결국 최종에서 떨어지더라고요. 그때 저한테 남은 건 영화밖에 없구나 싶었어요. 만약 광고회사에 합격했으면 취직을 했겠죠.(웃음)”
 
취직과 꿈 사이에서 조바심을 내기보단 자신의 가능성을 확인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는 아르바이트와 인턴 경험 그리고 영화제작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조금씩 영화감독으로서의 내공을 쌓았다. 하지만 그에게도 단편영화 제작이 쉽지만은 않았다.  
-단편영화 제작의 어려움이 있다면.
“메시지를 전할 때 논리도 필요하고 감정도 필요한데 그 두 가지를 짧은 시간 안에 균형 있게 전달해야하는 게 어려워요. 물론 이야기가 짧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은 시간 안에서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할 수 있는 장점도 있어요.” 
-관객에게 짧고 강한 메시지를 주기 위해 어떤 점을 신경쓰나.
“우선 강약조절을 잘해야 하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심심해도 되지만 나중에는 재밌어야 하거든요. 무턱대고 임팩트 있는 장면을 앞에 쓴다고 좋은 것은 아니니까요. 이점을 두고 시나리오 쓸 때 고민을 많이 해요.” 
-완성도 있는 단편영화가 많지만 아직까진 대중들의 관심이 적은데.
“단편소설과 장편소설처럼 단편영화 다음에 있는 것이 장편영화가 아니고 장편이면 장편, 단편이면 단편 이렇게 단편영화를 하나의 장르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면 좋겠어요.” 
-영화 제작에서의 철학이 있다면.
“관객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들려줘야 하는지를 정확히 아는 것이요. 멋지게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무엇을 보여줘야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음 작품이 궁금하다.
“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심사평 중에 하나가 ‘이제 장편을 찍어라’였어요. 다음 작품은 장편영화를 생각하고 있어요. 아직 완성된 시나리오는 없지만 전처럼 계속 책을 읽으면서 아이디어를 찾고 있죠.”
 
 
당신에게 
중앙대란?
 
“놀이터와 같은 곳이에요. 책도 읽고 친구들과 같이 놀기도 하고 공부도 재밌게 하고. 학교 다닐 때 도서관에 많이 갔어요. 책을 읽으면서 영화에 대한 영감도 많이 얻었거든요. 수업을 조금 열심히 듣지 않았던 것만 제외하면 학교생활을 누구보다 즐겁게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중앙대는 제게 놀이터라고 할 수 있죠.”
 
 
그의 또 다른 작품들
 
노 모어 커피 브레이크(No More Coffee Break)
문병곤 감독이 학부생 시절에 만든 첫 작품.
 
   
 
줄거리: 아들 석인과 남편 용연 사이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주부 겸 직장인(일명 슈퍼맘) 김자경. 어느 순간 그녀를 둘러싼 평범한 일상들이 감당할 수 없는 공포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연출의도: 예측 불가능한 사건사고가 범람하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예민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이 누굴까 생각하다가 떠오른 것은 ‘슈퍼맘’이었다. 영화를 통해 누구보다 가장 많은 역할을 소화하고 있을 슈퍼맘들에 주목해보자. 
 
불멸의 사나이
문병곤 감독의 졸업작품이자 2011년 칸영화제 비평가 주간 후보에 오른 작품.
 
 
줄거리: 어느 날, 독거노인이 천장에 무엇인가를 열심히 설치한다. 그가 설치한 것은 다름 아닌 철봉. 그러나 마지막 순간, 뜻밖의 사건이 벌어진다.
연출의도: 아무리 바보 같은 짓일지라도 열심히 하다보면 삶에 변화가 있지 않을까. 꾸준히 노력하다보면 결국엔 좀 더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문병곤 감독의 <세이프>는 오는 11월 2일 토요일에 ‘필름게이트 영화제’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세이프>뿐 아니라 그간 필름게이트가 제작지원한 15편의 단편영화를 모두 상영하며
장소는 한국영상자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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