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이 모자라
  • 중대신문
  • 승인 2013.09.08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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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망 같은 걸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안락한 삶을 꿈꿔본 적도 없다. 하지만 재수생 생활을 하다 수시로 대학에 붙은 탓에 대학 생활에 대한 기대는 강했었다는 기억이 난다. 그것도 연애쪽으로만. 벤치에 앉아 여자 친구와 ‘꽁냥’ 거리는 상상, 그게 나를 지탱해 주는 즐거운 생각 중 하나였다. 물론 고등학교 시절부터 꿈꿔온 음악 관련 일을 하겠다는 생각도 나를 채찍질 하는 것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대학교에 입학하며 나는 음악 관련 일은 취미로 해야겠다고 맘을 바꿨다. 그래서 연애 대신 교직을 따겠다며 열심히 공부를 했다. 결국 교직 이수를 하게 되었지만 늘 꿈을 따라 살겠다며 다짐했던 나는 목표와 꿈이 사라지자 크게 흔들림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음악 관련 일을 하겠다는 꿈이 너무 커져서 이미 주체할 수가 없었다.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연재한 경력을 가지고 가끔씩 전문가 의견으로 인용되어 나가던 나는 수많은 제안서와 홍보를 펼친 끝에 24살이 되던 해 처음 엠넷에서 방송을 만들게 되었다. 개인 홍보를 펼친 지 딱 3년 만이었다. 24시간이 부족한 하루였지만 잠을 못 자도 무척이나 행복했다. 그 후 군 생활을 포함한 이후의 시간 동안 3개의 프로그램을 더 만들었다. 교직까지 포기해 가며 매달렸다. 하지만 뭔가 허전했다.
 
 내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다. 좀더 현장 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 제의를 받았지만 그냥 박차고 나왔다. 주변 사람들은 다들 나보고 미친X이라고 했다. 하지만 난 내 선택을 믿었다. 
 
 그 후 새롭게 미디어를 만드는 일에 의기투합했다. 내 나이에 다소 벅찬 편집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쉴 새 없이 뛰어다녔다. 숱한 굴욕을 당하며 자존심도 상했지만, 6개월 만에 서점 유통에 성공했다. 가끔은 취재 연락도 먼저 온다. 내가 먼저 전화하면 적어도 취재를 오라는 말은 듣는다. 어차피 24살 때 단 메인 작가의 타이틀도 내 나이에는 벅찬 수식어였다. 여전히 벅찬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그래도 타이틀이 부끄럽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 24시간이 부족한 삶을 산다. 
 
 얼마 전에 KBS 연예가 중계에 인터뷰가 나갔다. 이후에 공중파 인터뷰가 많이 들어오고 있고, 다음에 연재하고 있는 나의 칼럼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모 대학교에서는 매 학기 초청 강연 진행을 제안 받았다. 요즘의 나는 뭐랄까, 그냥 노력하는 신진 미디어인이다. 여전히 꿈을 위해 산다. 그게 내가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니까. 누구나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한다.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와도 같다. 하지만 난 기왕이면 이상 쪽을 선택해 보라 조언한다. 한번쯤 그래 봐도 인생에서 남는 게 생기니까. 현실과의 타협은 좀 늦어도 상관없으니까. 
 
 나는 늘 24시간이 부족하길 바란다. 이 글을 읽는 학우분들도 그렇게 되길 바란다. 24시간이 부족할 때 까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라. 내일을 맞이할 자신이 궁금해 지도록. 요즘의 나는 여전히 내가 궁금하다.  
노준영 동문
위니케이스타 편집장
영어영문학과 06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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