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8일 밤, 꾸준히 내리는 비를 무릅쓰고 잠실종합운동장을 찾아간 이유는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아들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주겠다는 일념 외에는 없었다. 아들은 외울 게 너무 많다고 한국사 공부를 어려워했고 지겨워했다. 시험 때만 벼락공부를 하니 성적이 잘 나올 리 없었다. 


  언젠가 왜 일본 정치인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하려 드는지 물어보기에 어설픈 역사 상식으로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이 저지른 각종 침략전쟁 때 죽은 250여만 명의 영령을 합사한 신당으로, 여기 참배하는 것이 자신의 애국심을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주었다. 태평양전쟁이 명백히 침략전쟁이었음에도 미화하는 것은 그들이 괴롭혔던 나라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없다는 뜻이니 신사 참배는 옳지 못한 행위라고 덧붙여 말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 영유권 주장, 종군위안부 부정 등 일련의 행위는 분노를 치밀게 한다. 한일전 축구 관람은 아들의 마음에 조국이 무엇인지, 애국이 무엇인지 알게 하는 좋은 교육의 장이 될 것 같았다.


  경기 휘슬이 울리기 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대형 펼침막이 내걸렸다. 응원단 붉은 악마는 이순신 장군과 안중근 의사 영정을 담은 대형 그림을 잠시 보여주기도 했다. 일본 응원단은 이에 뒤질세라 대형 욱일승천기를 꺼내 흔들었다. 양측의 응원 분위기는 시선을 경기에 집중할 수 없게 했다. 축구협회 진행요원이 대형 펼침막 철거를 시도했고 응원단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철거에 항의하다 실패한 붉은 악마는 후반전 때 응원을 포기하고 말아 뒷날 공식 사과하게 된다. 응원석에서의 실랑이와 응원 포기가 경기에 영향을 미쳤을 리 없겠지만 우리는 2-1로 패하고 말았다. 그것도 후반전 끝 무렵에. 


  다음날 언론은 붉은 악마의 응원 포기에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후반전 응원을 보이콧한 것은 명백히 잘못한 일이다. 박종우 선수의 독도 세리머니가 다시 거론되면서 ‘스포츠 민족주의’를 질타하는 내용이 여러 언론매체에 실렸다. 정치적 구호가 운동장에서는 나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내 생각은 좀 다르다. 펼침막 내용이 스포츠 민족주의요 정치적 구호인가. 젊은이들이 우리 역사를 너무 모르고 있으니 앞으로는 역사의식을 조금이라도 갖자는 말인데 이것 자체가 잘못된 일은 아니잖은가. 안중근 의사 영정을 담은 대형 그림이 펼쳐진 것은 몇 초밖에 안 되었지만 코끝이 시큰해지는 감동을 느꼈다. 이 감동의 현장을 ‘스포츠 민족주의’로 매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학 1학년 때 교양과목에 한국사가 있어서 고등학교 때 못 배웠던 근현대사를 공부할 수 있었고, 강사분은 우리에게 역사의식과 시대정신 같은 것을 심어주려 애써 감동적인 강의였다고 기억된다. 교양과목으로 한국사가 부활한 것을 환영한 이는 나만이 아닐 것이다. 영어나 수학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국사이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것은 슬로건이 아니라 진리이다.

이승하 교수(공연영상창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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