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 그것은 특권이 아니다
  • 중대신문
  • 승인 2013.06.09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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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일 ‘갑의 횡포’가 화제다. 한 대기업 상무가 비행기에서 승무원에게 라면을 끓이게 시킨 후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승무원을 폭행한 사실이 밝혀졌고, 한 우유회사 직원이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대리점주에게 물품을 ‘밀어내기’시키는 음성이 인터넷에 공개됐다. 심지어는 청와대 대변인이 외국 임무 수행 도중 인턴사원을 성추행해 고소되기까지 했다. 이외에도 백화점, 어린이집 등 다양한 곳에서 자행되는 갑들의 횡포가 잇따라 이슈가 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왜곡된 갑을 관계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사건들이다.
 

  얼마 전 숙명여대 취업 강연에 강사로 참석한 모 기업 인사담당자가 막말한 것이 알려져 논란이 된 바 있다. 강연에서 학생들의 외모를 지적하고 “수업 태도가 안 좋으면 인사에 불이익을 주겠다.” 등의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강연에 참석한 학생이 학내 홈페이지 게시판에 강의 내용에 대한 불만을 게재하면서 알려진 이 사건은 학내 구성원뿐만 아니라 외부 언론에 까지 퍼져 나갔다. 결국 강사가 학내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시하고 해당 기업 상무가 강연을 들은 학생들에게 직접 사과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이 강사의 발언은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또 하나의 갑의 횡포라는 비난을 받았다. 인사담당자라는 신분을 이용해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막말했고, 강연에 참석한 학생들은 혹시라도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돼 불쾌한 내색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질타에 해당 강사는 사과문을 통해 ‘제가 언제부터 ‘갑’이었던가 큰 충격을 받았고, 먼저 그 길에 들어섰다는 이유로 방만해졌던 저 자신을 뼈아프게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근신하겠습니다’라고 전했다.


  본래 계약서를 작성할 때 사용하는 갑과 을이라는 단어가 어느새 우열을 가리는 용어가 돼 버렸다. 이로 인해 갑들은 상대적으로 을보다 우위에 있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을들을 함부로 대하기까지 하고 있다. 물론 관계에 따라 어느 한 쪽이 우위에 있을 수는 있다. 강연에 참석했던 학생들이 입사지원자가 되고, 강연을 맡았던 인사담당자가 면접관이 된다면 인사담당자가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위에 있다고 해도 상대를 함부로 대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인사담당자의 사과문처럼 갑은 단지 ‘먼저 그 길에 들어선 사람’ 또는 ‘조금 먼저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일 뿐이다. 그들 역시 을의 위치였던 때가 있었을 테지만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듯 그 자리에 취해 끊임없이 횡포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뉴스와 신문에는 갑의 횡포에 대한 기사가 보도된다. 계속되는 논란에 정부는 갑을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제도로 사람 간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을을 함부로 대하는 갑에게 필요한 것은 제도가 아닌 인성이다. 위치를 이용해 사람을 군림하려는 갑들이 아닌, 위치를 낮추고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갑들이 우리 사회에 더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김효정 편집장(숙대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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