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졸업생의 취업 관련 부탁을 위해 국내 모 대기업의 인사채용 담당자와 만난 일이 있었다. 개인적인 부탁을 뿌리치지 못하고 꺼낸 취업이야기에 인사담당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입사한 사람들을 보면 거의 모든 지원자가 우수한 학업성적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업무능력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굉장히 뛰어납니다. 그런데 의외로 이런 사람들이 기업문화의 가장 기본인 인간관계에는 너무나 미숙하다는 거죠. 우리 그룹에서는 업무능력 외에 조직문화에 적응할 수 있는 올바른 인성을 가진 사람을 뽑고자 인성면접을 강화했습니다.”


  기업들이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사회봉사 실적을 평가, 반영하는 방식은 이미 많은 기업에서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국내 대기업을 중심으로 단순히 봉사활동 시간만이 아니라 지역사회 기여도, 창의성과 확산 가능성, 리더십 발휘정도 등 인성분야 덕목을 아울러 평가하고 있다. 이는 ‘스펙’에 치우쳤던 기업의 인재관이 ‘인성’에도 무게를 두기 시작했음을 보여주고 경쟁에 내몰려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무시되고 있는 현실에서 청량감을 주는 소식이다.


  선진국의 기업에서는 오래전부터 직원 채용 시 봉사경험이나 리더십을 갖춘 올바른 인성을 우선시했다.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등은 신입사원 면접 시 대학에서의 전공연계 봉사학습 이수 현황을 참고해 지원자의 인성을 가늠한다. 또 제너럴일렉트로닉, 포드와 같은 기업에서는 주로 봉사활동시간, 활동내역 등을 평가 자료로 인성을 평가한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금융 관련 회사들은 지역사회 무료 세무상담 봉사활동 등에 가산점을 부여하며 올바른 인성을 가진 지원자를 찾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문제는 인성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무한경쟁’, ‘2등은 없다’는 식의 사회적 분위기가 거세지면서 쳇바퀴 돌 듯 집과 학교만을 오가며 사회와 격리되다시피 생활하는 ‘나홀로족’ 학생이 늘어났다. 주변의 모든 사람을 자신과 잠재적 경쟁자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과 대학졸업 후 취업이 어려운 현실에 따른 심리적 부담감은 당연히 사회에 대한 적개심이 가득한 은둔형 외톨이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들이 반영돼 만들어낸 문제가 최근 사회에서 논란이 된 ‘XX녀, XX남’이니 ‘인터넷 막말’ 사건 등이다. 논란은 우리 사회의 인성 수준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도 하지만 우리 교육 환경이 가진 구조적 부조리에서 비롯됐다. 지나치게 도를 넘은 경쟁, 점수 제일주의가 낳은 부작용인 것이다.


  올바른 인성과 품성, 자질을 키우지 못하는 교육현실에서 아무리 인성, 인권 운운한들 현실감 없는 구호다. 어려서부터 사회구성원으로서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채 이기적이고 버릇없이 자라온 학생들은 사회에 나가서도 정신적 미숙아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학점과 취업에만 집중하는 획일화한 교육으론 인성과 창의성을 지닌 인재를 길러 낼 수 없다. 창의성과 공동체에 대한 따뜻한 이해심과 협동심을 가지는 ‘인성’이 우리 교육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급하다.


  “우리 대학의 근본은 과학자가 되기 이전에 인간이 되는 교육을 하는 것이 목표”라던 서남표 전 KAIST 총장의 이야기처럼 이제 대학도 ‘나 홀로 지식인’만을 양성하는 것이 아닌 타인을 배려하고 사회와 어울릴 수 있는 ‘도덕적 지성인’을 길러내야 한다. 또한 대학의 경쟁적 취업률 높이기가 자칫 취업지상주의에 빠져 구성원의 기본인성을 낮아지게 하는 것은 아닌지 한번은 돌아볼 때이다.

김주헌 교수(화학신소재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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