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종강이다. 이번학기 동안 맡았던 이 지면도 이 글로 마지막이다. 처음 ‘중대신문을 읽고’를 맡지 않겠느냐고 제안 받았을 땐 사실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러나 어째선지 갈수록 책임감이 생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중대신문>이 점점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게 꼭 내가 이 지면에 쓴 글 때문이겠냐만, 그렇게 믿고 싶었다. 가끔은 ‘착각과 자뻑’도 필요한 법이다.

 
  마지막이니만큼 원론적인 얘기를 하자. 통계를 내보진 않았지만, 아마 이 지면이 시작된 이후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기계적 중립’이 아닐까? <중대신문>이 끝내 벗어나지 못한, 아니 벗어나려 ‘하지 않는’ 것이 기계적 중립이다. 이번 학기 구조조정 사태처럼 양 주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이런 사건이 있을 때면 지면 배치가 항상 같다. 사건 설명, A의 입장을 대변한 기사, B의 입장을 대변한 기사. 세 기사의 양 배치는 정확히 1:1:1이다. 사안에 대한 <중대신문>의 입장은 사설과 칼럼에만 겨우 드러난다.


  <중대신문>이 지향하는 언론 모델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구성원들이 ‘언부심’이라도 지녔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자신의 글이 학교를, 혹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착각과 자뻑’이라도 지니자는 것이다. ‘기껏해야 대학 언론인데’, ‘언론사 취업의 발판일 뿐인데 뭐’, 그런 편리한 알리바이들을 지양했으면 한다.


  <중대신문>의 역사와 위치는 결코 그 정도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편향에 대한 두려움과 중립에 대한 강박을 떨쳐내자.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자. <중대신문>의 치열하고 논쟁적일 내일을 기대해 본다. 충분히 그럴 만한 역량이 있다. 또한 그래야 한다.

강남규 학생(정치외교학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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