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중대신문>은 몇 가지 점에서 늦었다. 먼저 ‘친절한기자들’에서 김해인 기자가 쓴 ‘왜 구조조정 공청회를 막을 수밖에 없었을까요’ 기사. 꼭 필요한 기사인 것은 틀림없다. 균형 있게 잘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의적절하지 못했다. 그 말인즉 이 기사는 지난 호에 실렸어야 맞다. 5월 6일 자 같은 지면에는 구조조정이 2010년부터 이어온 일임을 밝히는 기사가 실렸다. 그것도 꼭 필요한 기사인 것이 틀림없고, 잘 쓰인 기사였다. 그러나 공청회 기사보다 시급한 문제는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공청회가 끝난 지 열흘이 지나 실린 이번 기사는 아무런 효과도 갖지 못하게 됐다.


  <중대신문>은 지난 호 학생대표자 인터뷰에서 공대위 입장에 대해 ‘후퇴는 없다’고 표현한 것을 ‘알립니다’로 정정 보도했다. 그러나 늦었다. 지난 주 지금 내가 쓰는 지면에 교육학과 강태중 교수의 글이 실렸는데, 다음과 같은 표현이 쓰였다. “대립 당사자들이 모두 ‘후퇴는 없다!’고 외치는 상황에서 과연 협상 역량이 소통의 관건일지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학생대표자 인터뷰 전문 어떤 맥락에도 ‘후퇴는 없다’는 입장은 없었다. 구조조정을 원천 반대한다는 것도 아니고, 그 필요성을 일정 인정하므로, ‘계열 발전 위한 협의체’를 구성하자는 상당히 ‘양보한’ 입장만 있었다.


  그럼에도 “대립 당사자들이 모두 ‘후퇴는 없다!’고 외치는 상황”이라는 표현이 쓰인 것을 <중대신문>은 그 필자가 기사를 성실히 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탓할 것인가? 무책임하게 뽑은 표제 하나가 이렇게 재가공되는 것을 보면서 <중대신문> 기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자신들의 기사 하나가 어떤 지위에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자각하고 기사를 쓰길 바란다.

강남규 학생 (정치외교학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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