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서 ‘잘살다’와 ‘잘 살다’는 의미 차이가 있다. 앞의 붙여 쓴 ‘잘살다’가 물질적 풍요와 관련된 것이라면, 뒤의 띄어 쓴 ‘잘 살다’는 정신적 풍요와 윤리적 삶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잘 살기’보다는 ‘잘살기’에만 막무가내로 집착하고 있다. 물론 ‘잘 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잘살기’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삶은 ‘잘살기’가 아니라 ‘잘 살기’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글쓰기 담당교수로 나는 이러한 ‘잘 살기’의 중요한 계기가 글쓰기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를 통해 자기를 끊임없이 경계하고 반성하고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나의 생물학적 나이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성장(학문적으로나 인격적으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서정주를 빌려 말하자면, 내 지식과 인격과 품성의 8할은 글쓰기에 빚지고 글쓰기로 빚어진 셈이다.


  만약 내게 조금이나마 글쓰기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꾸준히 써 온 일기 덕분이다. 때때로 펼쳐 보는 그 곳에는 치기와 허영 같은 숨기고 싶은 나의 치부가 있고, 숭고한 고뇌와 치열한 열정 같은 되찾고 싶은 나의 자랑이 있으며, 아내와 연애하던 날의 기분 좋은 설렘과 딸아이가 태어난 날의 떨리는 감동 등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일상의 기록과 함께 그 곳에는 그동안 내가 읽은 책, 내가 들은 노래, 내가 본 연극·영화·드라마 등에 대한 감상과 단상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내 일기 속에는 철들고 난 후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의 이력과 역사가 가감 없이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습관처럼 연구실을 떠나기 전인 저녁 10시부터 30분 동안 거의 매일 일기를 쓴다. 오늘은 월요일이니 독서일기를 쓰는 날이다. 지지난주에는 한병철의 『피로사회』와 『시간의 향기』에 대한 짧은 감상을 썼고, 지난주에는 김흥규의 『근대의 특권화를 넘어서』에 대한 조금 긴 단상을 썼다. 오늘은 이기호의 새로운 소설집 『김박사는 누구인가』에 실린 단편 「탄원의 문장」에 등장하는 인상적인 대화(“당신 문제가 뭔지 알아? 당신은 말이야, 당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만 좋아해, 알아? 그게 문제라고.”)를 실마리로 이기호 소설의 매력과 구조를 간단하게 정리할 예정이다.


  폴 발레리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라는 명구를 남겼다. 나는 오늘도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 대로 살기 위하여 오늘치의 일기를 쓴다. 그리하여 오늘의 나는 분명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성장했다고 믿는다. 언젠가 은사님께서 “공부만큼 정직한 것은 없다”고 말씀해 주신 적이 있다. 이 말은 글쓰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글쓰기만큼 정직한 것은 없다.” 좋은 글을 쓰고 싶은 학생들에게 일기 쓰기를 권한다.

류찬열 교수 (교양학부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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