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N 뉴스 토크쇼 <LARRY KING LIVE>의 전(前) 진행자였던 래리 킹이 서울에서 진행된 한 행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술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발견하든, 기술이 빚어내는 온갖 사건과 더불어 우리가 얼마나 멀리 나아가든, 우리에게는 인간적 유대가 필요하다.” 이 발언이 주목되는 이유는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흐름을 검토하는 자리였던 ‘2011년 서울 디지털 포럼’의 기조연설에서 행해졌다는 것 때문이다. 디지털 문명의 오늘과 미래를 논의하는 포럼에서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연결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그의 말은 소통방식이 나날이 첨단화되고 있는 이 시대에 있어 인간과 사회의 존재 방식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유도한다. 그의 말을 다소 거칠게 정리하자면,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도 일대 일로 격의 없이 대면하지 않고서는, 인간으로서의 존재 이유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소통과 유대(紐帶). 이 두 가지는 디지털 문명이 아무리 성장한다 하더라도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포기될 수 없는 요소다. 이러한 사정은 대학 사회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젊은이들로 넘치는 대학 사회는 첨단 디지털 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에 따라 디지털 시대의 대학 사회는 파편화되고 고립적이며 독백주의적인 주체들을 양산할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사회학자 한완상은 대학의 구성원이 가져야 할 의식 중 하나로, 운명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공속(共屬)의식과 연대의식을 제시한 바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학 사회는 개인과 개인의 소통, 개인과 집단의 소통을 추구해야만 한다. 이 소통은 상호 존중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을 때에 가능하다. 칼 야스퍼스가 ??대학의 이념??에서 대학은 “학자와 학생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진리를 터득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했을 때, 이는 곧 대학 사회 구성원들의 상호 소통과 유대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모름지기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인간의 실현을 위해서는 이윤, 권력, 단순한 지식보다는 존재, 공유, 이해와 같은 새로운 동기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인간형은 “비판적이고 냉철한 사고 능력과 더불어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발전”(에릭 프롬, ??소유냐 삶이냐??)시키는 인간상을 구현해야 한다. 사랑할 수 있는 능력, 이 능력이야말로 소통과 유대를 가능케 하는 기본 동력이 아니겠는가. 이 능력은 나와 타자(他者)와의 관계, 또는 나와 타자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능력이기도 하다. 그것은 독백주의가 아니라 대화주의이다. 대화주의는 ‘나’와 ‘너’의 관계에서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함께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지향한다. 
 
  사랑의 능력은 래리 킹이 기조연설에서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 즉 아무리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고 그것이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하더라도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을 통해 소통과 유대 의식을 지켜나가야만 한다는 메시지와 연결된다. 인간과 인간의 연결을 위해서는 인내와 이해 그리고 상호 존중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해도 좋으리라. “차이와 다양성, 애매함과 불확실성이란 조건에서 행동하는 어려운 기술을 완벽하게 습득한 사람들만이 인간적 교류가 그들의 의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지그문트 바우만, ??지구화, 야누스의 두 얼굴??) 있을 것이라고. 차이와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더불어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고양은 소통과 연대로 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통섭과 상생의 길을 도모하는 것, 이는 비록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하지만은 않은 우리들의 의무다.
 
박명진 교수
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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