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묘랑씨(왼쪽)가 특강 중 학생의 질문에 답해주고 있다.

끊임없이 경쟁하는 사회에서
‘인권’언급하기 어려워

인식의 프레임을 깨는 것이
소수자 인권 제고에 도움 돼

 화장실 변기에 돈을 빠뜨렸다고 가정해보자. 10원이라면 그것은 그리 신경 쓰일 일은 아닐 것이다. 500원까지도 사람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지폐라면 이야기는 달라지기 시작한다. 특히나 수표라면 더럽다는 생각은커녕 손을 뻗어 건져 올리는데 급급할 것이다. 만약 변기에 빠뜨린 것이 돈이 아닌 ‘인권’이라면 어떨까? 우리는 사생결단의 의지로 변기 속에서 인권을 건져 올릴 수 있을까?


 지난 1일 102관(약학대학 및 R&D센터)에서 교양 수업 ‘통섭과 인간아카데미’와 함께하는 인권특강이 열렸다. 교양학부대학과 인권센터가 공동 주최한 이번 인권특강은 세 차례로 진행되며 첫 특강이었던 1일엔 ‘인권과 개인’을 주제로 이묘랑씨(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가 맡았다. 


 요즘은 책 제목에 ‘미쳐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10대는 공부에, 20대는 공모전에 미치라고 강요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는 ‘힐링’을 말한다. 병주고 약주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개인에게 앞만 보고 달려가라고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것이다. 이묘랑씨는 “우리 사회는 차별과 모욕이 일상화된 공간이다”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엄성을 고려해주지 않는 지금의 한국 사회는 사람들을 위로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우리가 인권을 경쟁 뒤로 미뤄놓는 현상은 개인을 경쟁으로 내모는 사회가 부추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차별과 모욕 속에서 끊임없이 경쟁하는 우리가 인간에 대한 존엄, 또는 인간에 대한 존중을 이야기 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인권’의 영역에서는 인식의 프레임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 인식의 프레임을 깨는 것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인권을 제고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우리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들 수 있다. 장애인복지법에 따르면 장애인은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인하여 장기간에 걸쳐 일상생활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로 정의된다. 하지만 생활에 있어서 제약을 받는 것은 그들이 장애인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사회가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위해 도서관의 모든 책을 점자로 만들고 공중전화가 휠체어를 탄 사람에게 맞춰져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 사회에서 불편을 겪고 제약을 받는 것은 비장애인일 것이다. 이묘랑씨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사회적 약자 개인의 능력 때문인지, 개인이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끔 만든 우리 사회가 문제는 아니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의 일상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든 것이 장애인 개인의 문제인지 비장애인 중심으로 만들어진 우리 사회의 문제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어 이묘랑씨는 인권의 기본 원칙 몇 가지를 들며 인권의 특성을 설명했다. 그 중에서도 인권의 상호의존성은 주목할만한 가치다. 이는 모든 문제는 개인에서 출발하지만 개인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영국의 평화활동가 앤지 젤터가 작년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며 “모든 문제는 연결돼있다. 이건 내 문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흔히 ‘내 문제가 아니다’는 인식 때문에 ‘차별’에 둔감하다. 하지만 인권의 상호의존성은 ‘내 문제’로 한정된 문제는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처럼 인권은 모든 것과 연결된,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단어이면서도 중요성을 잊기 쉬운 가치다. 


 ‘통섭과 인간 아카데미’ 수업을 강의하는 노영돈 교수(교양학부)는 “수업을 통해 학문의 경계를 넘어 자유롭게 통섭이 이루어지는 장을 만들고 싶다”며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통해서 그 분야를 깊이 있게 이야기하려 한다”고 이번 특강의 기획 의도를 밝혔다. 특강을 들은 김희은 학생(광고홍보학과 2)은 “인권이라고 하면 제도적이나 법적으로만 접근해야 할 것 같아 멀게 느껴졌다”며 “이번 특강으로 인권이 나와 멀지 않다는 걸 배워 사고의 전환을 가져다 준 기회였다”고 말했다.


 한편 다음 특강은 오는 8일 오후 1시 같은 장소에서 열리며 ‘인권과 국가’를 주제로 신광영 교수(사회학과)가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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