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기념 특별 기고

53년 전 4월, 중앙대 학생들은 ‘의에 죽고 참에 살자’는 기조아래 혁명의 물결에 뛰어들었다. 경찰의 무력 진압 속에서 6명의 중앙대 학생들이 희생됐고 중앙대는 이들의 넋을 기려 추모탑을 세우기도 했다. 중대신문은 제53주년 4·19혁명을 기념해 이승하 교수(문예창작전공)의 기고문을 지면에 실었다.

▲ ‘의에 죽고 참에 살자’란 플래카드를 들고 내무부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모습. 중대신문 자료사진

문학 속에서 지금도 살아있는 4·19 그 때 그 날의 정신.

혁명은 세상만 바꿔놓는 것이 아니라 문학의 흐름도 바꿔 ‘문학적 혁명’을 일궈냈다

  4ㆍ19 때 우리 학교에서는 7명의 희생자를 낸 서울대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6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시위대에 앞장섰던 고병래와 지영현과 전무영 학생은 내무부 앞에서 경찰의 무차별 총격에 사망했다. 김태년은 치안국 무기고 앞에서 시위 상황을 녹음하다 사망했다. 서현무는 경찰에 잡혀가 고문을 받아 7월 2일 병원에서 사망했다. 송규석은 총을 맞고 택시에 실려 갔는데 정릉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이들 6명은 이 땅에 민주화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숨진 고귀한 희생양이었다. 서현무 학생의 수기가 그날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중대 데모대가 내무부 앞에 도달했을 때 경관들은 우리들에게 정면으로 총부리를 댔다. 더 이상 나아갈 것을 단념한 데모대는 앉아서 농성을 시작했다. 그때 시청 쪽에서 발포를 시작하여 점점 크게 들리자 우리를 경비하던 경관들도 별안간 발포하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아찔함과 동시에 머릿속에 어떤 뜨거운 액체가 하나 가득 흐르는 듯함을 느꼈다.

  이들의 넋을 기려 세운 위령탑이 양 캠퍼스에 다 있는데 어디에 있는지 학생들이 알고 있을까? 4·19의 발발은 제1공화국 정권의 부정부패와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집권에 대한 욕심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3·15부정선거에 대한 마산 사람들의 규탄 데모가 도화선 역할을 했고 마산상고 김주열 학생의 시체 발견(4. 11)이 불을 붙였다. 당시 데모대의 주요 구호가 ‘불법선거 다시 하라!’였다. 혁명은 대통령의 하야를 끌어냈을 뿐 아니라 종래의 잘못된 정치제도와 불합리한 사회적 관습을 일거에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세웠으므로 역사 속의 사건이 아니다. 민주화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기에 혁명의 의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4ㆍ19를 다룬 소설이 적지 않다. 신상웅은 '불타는 도시'에서 4ㆍ19 당일의 시위현장 모습을 실감나게 전하고 있다. 대학생들의 생각과 행동 및 시위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작가가 당시 중앙대 영문학과 학생으로서 시위 대열에 앞장섰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유주현의 '밀고자'는 아버지가 정부 고위관리인 대학생 둘이 뒷산에 올라가 잡담을 하며 시위를 먼 산 불 보듯이 하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경찰에 쫓겨 산에 올라온 친구로 인해 한 명은 “독선적인 기성세대와 대결”하기 위해 시위에 참여하기로 마음을 바꾸고 한 명은 “데모 좀 한다구 정권이 뒤집힐 줄 아냐”라며 이들을 비웃는다. 즉 이 소설은 인간의 양심을 거론하고 있다. 두 작가 모두 훗날 중대 문창과 교수가 된다.

  박연희의 '개미가 쌓은 성'은 흥남철수 때 월남한 신문사 청소부 장 서방과 축구부 주장인 아들 2대에 걸친 4ㆍ19의 피해를 다룬 소설이다. 아들은 총상을 입어 병원에서 죽고, 아들에 대한 기대로 살아가던 아버지는 미쳐버리고 만다. 박태순의 좬무너진 극장좭은 정치깡패로 유명했던 임화수의 평화극장을 시민들이 방화하는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독재에 반대하여 시위를 벌인 시민들의 분노는 고려하지 않고 폭도들이 군중심리에 의해 극장으로 몰려가 불살라버렸다는 식으로 그려 혁명의 정신을 오해한 작품이다.
 

  한상윤의 '떨켜'는 역사의 회오리바람에 날려간 한 사내의 이야기다. 정 노인은 6ㆍ25 때 아내를 잃고 4ㆍ19 때 아들이 죽는 슬픔을 겪는데, 80년대가 되자 손자가 국가보안법으로 수감되어 깊은 시름에 잠긴다. 이밖에도 4ㆍ19 현장을 다룬 소설로 남정현의 '너는 뭐냐', 한무숙의 '대열 속에서'가 있었다.

  시 쪽에서의 작업은 더욱 활발했다. 1960년 6월호 '사상계'는 ‘민중의 승리 기념호’라는 타이틀을 붙여 출간하면서 혁명 기념시를 실었다. 그해에 발표된 혁명 기념시를 모은 '항쟁의 광장'이라는 시집이 나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시집에는 기성시인의 작품 30편과 대학생의 작품 30편이 실려 있다. 청록파의 일원으로 자연과의 만남과 신성의 발현을 주로 노래했던 박두진이 이런 시를 썼다.

  불길이여! 우리들의 대열이여!/ 그 피에 젖은 주검을 밟고 넘는/ 불의 노도, 불의 태풍, 혁명에의 전진이여!/ 우리들 아직도/ 스스로도 못 막는/ 우리들의 피 대열을 흩을 수가 없다/ 혁명에의 전진을 멈출 수가 없다

  '우리들의 깃발을 내린 것이 아니다'의 일부이다. 많은 희생자를 낸 혁명이지만 해야 할 일을 했다고 하면서 혁명의 당위성에 대해 찬성을 표한다. 박두진은 학생들을 그대들이나 너희들로 부르지 않고 혁명의 대열에 마음으로 동참한다는 의미로 ‘우리들’이라 칭한다. 학생과 시민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참가한 혁명이기에 너와 내가 아니라 우리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무의미시론을 전개하여 절대순수의 대표시인으로 군림했던 김춘수도 혁명을 외면하지 않았다.

  이제야 들었다. 그대들 음성을/ 그대들 가슴 깊은 청정한 부분에/ 고이고 또 고였다가/ 서울에서 부산에서/ 인천에서 대전에서도/ 강이 되고 끓는 바다가 되어/ 넘쳐서는 또한/ 겨레의 가슴에 적시는 것을 김춘수의 좥이제야 들었다 그대들 음성을좦 또한 부정선거 재실시를 요구하다 죽은 학생들의 영령을 추모하고 총기 난사로 죄악을 덮으려 한 위정자의 폭력을 규탄하는 내용이다. 시는 후반부에 이르러 “그대들 음성이/ 메아리 되어/ 겨레의 가슴에 징을 치는 것을/ 역사가 제 발로 달려오는 소리를……” 하면서 4·19가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은 장거임을 강조하고 있다. 

  어머님은 내가 죽는 것보다는 딴 어떤 꽃다운 목숨이 죽어주기를/ 아니 그보다도 차라리 조국이 송두리째 썩어서 결딴나 버리기를 바라셨거늘/ 허나 내 곁에 비겁은 없었다 나의 순수한 신경이 가르치는 대로/ 난 알몸으로 총구를 향해 돌진했다

  성찬경의 '영령은 말한다'의 일부이다. 혁명의 순수성과 혁명 참가자들의 용감함이 이 시의 주제다. 시인은 죽은 학생을 시적 화자로 삼아 “트로이의 영웅처럼/ 나는 미소하며 푸른 하늘을 끝으로 크게 호흡했다”면서 학생들의 기개를 예찬했다. 죽은 이들을 애도하는 시인의 마음과 4·19혁명에 대한 감격을 충분히 느끼게 한다. 시인이 데모 대열에 직접 나서진 않았지만 마음은 자유와 정의를 외치다 죽은 학생들과 함께했기에 이 시를 썼던 것이다. 4ㆍ19를 다룬 시 가운데 가장 생생하게 현장을 묘사한 시는 신동문의 장시 좥아ㅡ 신화같이 다비데群들좦이다.


  빗살 치는/ 총알 총알/ 총알 총알 총알 앞에/ 돌 돌/ 돌 돌 돌/ 주먹 맨주먹 주먹으로/ 피비린 정오의/ 포도에 포복하며/ 아ㅡ 신화같이/ 육박하는 다비데群들

  시인은 프랑스혁명을 대표할 수 있는 화가 다비드를 지목하여 시를 쓰면서 혁명에 참여한 사람들을 ‘다비데群’이라 지칭한다. 이 시에서 중요한 낱말은 ‘대열’과 ‘群’이다. 한꺼번에 수만 명이 대열을 이루어 데모를 했다는 점을 시인은 주목했다. 이들은 국민의 희망을 태양처럼 불태웠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신화를 창조했다는 것이다.

  4.19 이후 모더니스트 김수영은 '풀', '푸른 하늘을' 등 일련의 혁명시를 써 시세계가 확 바뀐다. 신동엽은 동학혁명과 3ㆍ1운동과 4ㆍ19혁명을 같은 역사적 맥락에서 보고 장시 좥금강좦을 쓴다. 이밖에도 혁명의 감격을 열정적으로 노래한 시는 박남수의 좥불사조에 부치는 노래좦, 박목월의 좥죽어서 영원히 사는 분들을 위하여좦, 장만영의 좥弔歌좦, 조병화의 좥旗는 또다시좦, 조지훈의 좥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좦, 김남조의 좥기적의 탑을좦, 송욱의 좥소리치는 태양좦 등 부지기수였다. 대다수의 시인이 붓으로나마 혁명에 참여했고 혁명을 옹호했다. 4ㆍ19는 온 국민이 나서서 한 혁명이었다. 혁명은 세상만 바꿔놓는 것이 아니라 문학의 흐름도 바꿔놓는다. 그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혁명이다. 프랑스혁명은 낭만주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사실주의의 시대가 오게 했다. 혁명은 절대왕정을 공화정으로, 농업사회를 공업사회로, 봉건체제를 자본주의체제로, 귀족사회를 시민사회로 바꿔놓았다.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스탕달과 발자크의 대표작들은 결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4·19 또한 전후문학과는 완전히 다른 ‘60년대 문학’의 시발점으로 삼기에 모자람이 없는 문학적 혁명을 유도했다. 앞으로 4ㆍ19를 다룬 작품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혁명을 소재로 한 작품도 생산되기를 기대한다.

이승하 교수
공연영상창작학부 문예창작전공

18일 4.19혁명 기념식

제53주년 4·19혁명을 맞이해 오는 18일 오전 11시 30분에 4·19혁명 기념식이 열린다. 기념식은 서울캠 중앙도서관 앞에 위치한 의혈탑 앞에서 진행된다. 이번 기념식에는 이용구 총장과 박진서 동창회장을 비롯해 중앙대 4·19혁명정신선양회 회장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식순에 따라 4·19혁명 중앙대 역사보고, 분향 및 헌화, 서울캠 이재욱 총학생회장(전자전기공학부 4)의 ‘선배 영령께 드리는 글’ 등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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