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박근혜 정부가 ‘국민 행복, 희망의 새 시대’라는 국정 비전을 내걸고 출범했다. 헌법 제66조 제1항은 ‘대통령을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렇게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행정부의 수장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젊은 세대는 이런 대통령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했다. 

 이번 18대 대선에서 중앙선거 관리위원회가 발표한 20대 투표율은 68.5%였다. 투표 가능한 연령대 중 가장 낮다. 5년 동안 한 국가를 이끌어갈 국가 수장을 뽑는데 이렇게 무관심한데 다른 사회 이슈들에 대해서는 어떻겠는가? 

 196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운동이 일어난 이후 사람들 가운데 개개인의 주관이 객관화되는 작업을 거치며 사회에서 절대적 규범이 해체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배경에서 사람들은 사회 이슈들에 관심을 두지 않기 시작했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는 산업화와 민주화가 이루어진 후 이러한 경향이 심화되었다. 특히 지금 젊은 세대는 다른 세대보다 더 다수의 규범과 사회보다 자신의 먹고사는 문제에 너무 매몰되어 있는 듯하다. 대학생들은 취업을 위한 학점관리와 스펙 쌓기에만 관심을 가지고 사회에 막 진출한 사회 초년생들은 경쟁적 사회 구조 속에서 자신의 경력 쌓기에 바쁘다. 마치 하루하루를 100미터 달리기를 하며 앞만 보며 달리는 것 같다. 

 우리는 사회 기본단위의 개인으로 사회를 구성하며 그 안에 속해 살아간다. 이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우리는 사회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회는 우리에게 의무를 요구하고 권리를 제공하며 우리는 우리의 원하는 것을 요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세대가 자신의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사회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모순적이며 근시안적인 행동이다. 앞에 보이는 이익만을 쫓다가 다른 큰 것을 놓치는 꼴이다. 그렇다면 우리 대학생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전공 책과 영어책에만 향해 우리의 시선을 신문이나 뉴스에 어느 정도 돌려야 한다. 분명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며 학생의 신분으로 전공 공부와 외국어 공부는 합당한 것이다. 하지만 사회에 관심을 두지 않고 신문과 뉴스를 보지 않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행동이다. 또한 우리는 사회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넘어서 사회에 참여해야 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사회와 우리는 서로 영향을 주는 관계이다. 이는 우리가 어느 정도 사회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 참여가 옛날 70,80년대의 시위와 같이 거창한 것일 필요는 없다. 투표나 우리의 의견을 인터넷 상에 피력하여 여론을 모으는 것도 사회 참여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의견과 원하는 것을 사회에 요구 할 수 있다. 이런 요구는 당연한 권리임과 동시에 의무이다. 이렇게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함으로 우리는 개인적인 이익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대학생이다. 대학생은 대학교에서 전공과목을 연구하고 사회에서 필요한 기초적 교양을 쌓는 학생이다. 즉, 교양 있는 지성인이 되는 것이 대학생의 목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이익만을 위해 행동하는 것 보다 더 나아가 우리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회에 필요한 지성엔 사회 복리의 향상 또한 포함하고 있다. 이런 것들을 아는 지성인들은 이것을 아는 만큼 행함이 필요하다. 행함이 없는 앎은 불완전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앎은 그만큼의 책임을 요구한다. 사회 전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모습이 젊은 세대, 특히 우리 대학생 가운데서 보이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다.

이형준(공공인재학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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