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놀란다. 상대적으로 미세하거나 약한 자극은 지나치거나 잊기 쉽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전까지 변하지 않는 것이 사람의 속성이기도 하다.
 

  새 학기가 시작됐다. 새로운 마음으로 건강을 위해 다이어트나 운동을 시작한다. 하지만 작심삼일. 어느새 달콤한 도넛이나 케이크, 그리고 술과 담배의 유혹에 빠진다. 내가 아는 한 학생이 그랬다. 늘 다이어트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운동도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어렵게 1kg 빼고 나면 거꾸로 2kg 불어났다. 헬스클럽에서 땀 흘려 운동하고 나면 성취감은 잠시, 갈증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의 유혹에 지고 말았다. 운동을 한 시간하면 맥주 집에서 두 세 시간을 보내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이건 그 학생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는 몸이 완전히 망가져 의사가 ‘오래 살지 못 하겠소, 큰 병이요’라고 말할 때 정신이 번쩍 든다. 당장 공부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게임에 몰입한다. 결국 ‘낙제’ 성적표를 받고  후회한다.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받고서 후회하고 회사에서는 해고를 당해야 정신을 차린다. 인생이 엉망진창이 돼야 비로소 기도한다.
“하느님 살려주세요.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역설적이지만 우리는 일이 어렵게 돌아갈 때 가장 큰 교훈을 얻는다. 사람들은 성공을 추구하고 성공에 기뻐하지만 거기서 얻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반면 실패와 시련은 가슴이 찢어지고 아프지만 우리가 깨닫고 눈뜨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인간은 습관적 동물이다. 늘 하던 대로 하는 습성이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전까지 말이다. 세상은 어떤 형태로든 신호를 보낸다. 그 신호를 보지 못하거나 외면하고 무시하면 불의의 사고가 터진다. 눈을 떠야 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눈감아버린 것이 원인이다.
 

  우리가 이해 할 수 없는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곳이 세상이다. 아들이 부모를 살해하고, 마을이 쓰나미에 휩쓸려 사라지고, 천진한 아이들이 정신이상자의 총에 쓰러지면 우리는 ‘왜’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일은 해답이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일상생활’이라는 영역을 놓고 보면 어떤 원인이나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삶의 교훈과 마주한다. 그 교훈에 눈뜨지 않는 한 계속해서 같은 문제에 부딪친다. 인생은 거대한 학교다. 눈뜨지 않는 자에게 삶은 끊임없이 수업료를 거두어간다.
 

  F학점을 받고, 요요현상에 시달리고, 아는 이에게 사기당하고, 연인에게 버림받을 때마다 거기에는 분명히 눈에 보이는 교훈이 있다. 당장 부당한 수업료를 지불하고 있다면  당신은 교훈이 보내는 신호를 보지 못하거나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김희현 교수 디자인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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