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대학생만의 주거문화
 

‘자신의 공간’을 마련하지 못한 대학생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제2의 과방과 같은 ‘모두의 공간’이었다. 

  영화 <퍼레이드>엔 한 집에 뒤엉켜 사는 네 명의 남녀가 등장한다. 공감대라곤 전혀 없는 네 사람은 집이라는 가장 비밀스러운 공간을 공유하지만 결코 가깝지 않다. 연인 관계도 아닌 네 남녀가 함께 산다는 설정이 의문스러워 한참을 들여다 본다. 하지만 요사이 대학가 풍경을 돌아보면 영화의 장면이 더는 ‘의문’이 아니다. 누군가와 방을 나눠 쓰는 일이, 어느덧 영화 속 설정을 넘어 현실에 녹아든 탓이다. 마치 <퍼레이드>의 주인공들처럼, ‘자신의 공간’을 마련하지 못한 대학생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모두의 공간’이었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최우현씨(정치국제학과 1)는 이어지는 술자리에 막차를 놓치기 일쑤다. 이런 날엔 그는 찜질방 대신 ‘영선텔’을 찾는다. 이름에 ‘텔’이 붙어 있어 숙박업체로 오해하기 쉽지만 실상은 동기의 자취방이다. 기꺼이 자신의 방을 내어준 동기 덕에, 그곳은 어느새 새내기들만의 ‘제2의 과방’이 됐다. 제2의 과방엔 모텔을 의미하는 ‘텔’이나 여관을 뜻하는 ‘장’ 등의 이름이 붙는다. 자취방을 학과 사람들과 공유하는 전통 아닌 전통은 학번에 따라 나름의 세대교체도 거친다. 김환희씨(사회학과 2)가 애용했던 ‘배송장’이나 ‘혜토피아’ 역시 이제는 그 명성이 구색이 됐다. 자취생들이 하나둘 휴학과 함께 방을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제2의 과방 칭호도 후배들에게 물려준 것이다. 비좁은 자취방이지만 서너 명이 부대껴 누워도 즐겁다. 외로움을 이불 삼아 잠을 청했던 자취생들의 긴 밤이 이날만큼은 가벼워진다.


  캠퍼스 밖엔 동아리방에서 서식하는 ‘동방살이’들이 살고 있다. 학생회관에 동방을 마련하지 못한 일부 동아리들은 학교와 가깝게 위치한 원룸을 계약해 동방으로 삼는다. 동방살이는 통학이 번거로운 이들이 자취방을 얻는 대신 동방을 집처럼 드나들며 시작됐다. 박준석씨(가명)는 주말엔 집, 주중엔 동방을 오가며 1년간 동방살이를 했다. 중앙대 중문 부근에 위치한 동방은 네 명이 함께 자기엔 빠듯할 정도의 1.5룸 구조(작은 주방 겸 거실과 방)였지만 살림살이는 번듯했다. 캠퍼스 내 마련된 동방이 아닌 탓에 동아리 차원에서 부담한 보증금을 뺀 월세 63만원이 오롯이 그들의 몫이 됐다. “집이 멀어 통학이 어려웠어요. 저 포함 세 명이 동방에서 자취하면서 월세 63만원을 나눠냈죠.” 하지만 동방살이들에겐 피할 수 없는 선택의 기로가 있다. 동아리를 탈퇴하면 동방에 꾸린 살림도 정리해야 한다. 동방살이와 자취생활을 저울질하며 ‘결단’을 내려야 한다. 박씨는 올해 동아리 탈퇴를 결심하고 동방살이 생활을 청산했다.


  봇짐 하나 들고 떠돌이 생활을 하는 ‘나그네족’에겐 머물만한 좁은 동방마저도 그림의 떡이다. 나그네족은 거처를 정하지 못해 살림살이와 함께 지인들의 집을 전전하는 이들이다. 안정근씨(정치국제학과 2)는 재작년 한 학기동안 뜻하지 않게 나그네 생활을 하게 됐다.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는 바람에 정작 합격해놓은 기숙사 입관비를 내지 못한 것이다. 그는 블루미르홀에 내려놓아야 했던 캐리어를 들고 매일매일 다른 장소에 몸을 뉘였다. 하루는 과실, 하루는 도서관의 열람석, 또 하루는 복도에 놓인 소파. 친구의 집에서 샤워를 한 뒤, 장소를 옮겨 다른 친구의 집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수업을 일주일 중 3일에 몰아넣고 수업이 있는 날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어요. 수업이 없는 날엔 부산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곤 했죠.” 한 학기동안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나그네 생활을 하다 보니 심신이 피로해졌다. 안씨는 결국 나그네 생활을 교훈삼아 이듬해 자취방을 구했다.


  친척 집에 얹혀사는 ‘더부살이족’은 그나마 형편이 낫다. 동방살이들처럼 돈이 들지도 않고, 나그네족처럼 떠도는 처지도 아니다. 하지만 더부살이족을 괴롭히는 의외의 복병이 있다. ‘눈치’다. 지난해 숙모 집에서 더부살이를 시작한 김지현씨(가명) 역시 1년간 매끼 저녁식사를 밖에서 해결했다. 맞벌이에 뛰어든 숙모 부부에게 폐를 끼칠까 걱정해서다. “괜히 눈치가 보여서 처음 세 달은 매주 본가가 있는 대전에 내려갔어요. 저 때문에 주말을 편하게 못 지내실 것 같아서요.” 모르는 얼굴들도 아니건만, ‘제 집’처럼 지내기는 쉽지 않다. 김씨는 올해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몸은 조금 불편하지만 마음만은 한결 편해졌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