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를 다니다 보면 종종 익명보장을 요구받곤 합니다. 이유는 다양합니다. 일반 학생들의 경우 신문에 이름이 나오는게 창피하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정 부서의 실무를 담당하는 교직원들은 너무 자주 신문에 등장하는 게 보기 좋지 않다며 나름의 고충(?)을 털어놓기도 합니다. 취재원들이 익명을 요구한다는데, 들어주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반대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취재기자가 먼저 익명을 보장해주기도 합니다. 자신의 의견을 밝히길 꺼려하는 사람에게 꼭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익명보장을 권하는 취재원들은 대부분 입을 열기 곤란한 입장에 처해있거나 ‘약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취재해본 사람들 중 시간강사나 방호원, 미화원 등 학내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비정규직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번주엔 교육조교를 취재했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이들이 입을 여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익명이니까 편하게 말해달라고 부탁해라”고 당부했습니다. 역시 효과는 뛰어났습니다. 입을 여는 것조차 꺼려하던 이들이 익명이라는 말 한마디에 속사포처럼 입을 열어 그간의 설움과 고충을 쏟아냈습니다.
 
 같은 ‘익명보장’도 누군가에겐 귀찮음을 면할 수 있는 편리한 도구가 되고 다른 누군가에겐 신변을 보장받을 수 있는 보호막이 되어줍니다. 전자에게 익명은 선택의 영역이지만 후자에 속하는 이들에겐 필수불가결입니다. 불안한 고용형태와 계급관계의 하단부에 위치한 이들이 의사를 표현하는 일은 중앙대의 다른 구성원들이 의견을 개진할 때보다 수십, 수백번의 고민이 더해진 후에야 가능한 일입니다.
 
 얼마 전 중앙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전직 교육조교는 ‘어려움을 토로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곤란한 일이 생길 때 교직원은 노동조합을, 학부생과 대학원생은 각각 총학생회와 원우회를 찾아가면 됩니다. 하지만 시간강사나 방호원과 같이 신분이 ‘애매한’ 경우엔 마땅히 찾아갈 곳도 없습니다.
 
 익명을 보장받은 의견이 지면화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문제를 제기해도 잠시 화제가 되었다가 이내 가라앉기 때문입니다. 비밀을 엄수해야 한다는 특성상 구체적인 통계자료를 제시하거나 실체를 드러내기가 어려워 ‘일부의 의견’으로 치부되기 쉽습니다.
 
 결국 누군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개선을 요구해야 하는데, 팍팍한 세상에서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그것까지 기대하긴 어려운 것 같습니다. 몇몇 대학의 사례처럼 학내 구성원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최근의 학내 분위기를 보아하니 그것도 힘들어보입니다. 
 
 SNS가 활성화되면서 너도 나도 속마음을 공유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아직 말할 수 없는 비밀도 많은 것 같습니다. 비밀을 숨기고만 있는 이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어줄 SNS는 어디에 있을까요.
 
이현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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