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왁스 바를 시간에 기름칠 한 번 더 하겠다.
  • 송민정, 김혜원 기자
  • 승인 2012.09.16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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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공대 친구들이 여자 후배들을 찾아 중앙동아리 가입에 전념하던 그때. NstopO 멤버들은 사내들과 부대끼며 자작 자동차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설계, 조립, 도색까지 자동차가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 전담했다. 그들은 폐차장을 전전하고, 밤샘 작업을 하며 오늘만을 기다렸다. 한국자동차공학회에서 주최한 대학생 자작 자동차 대회의 긴박한 현장이 지금 공개된다.

S#1. 찜질방 앞.
새벽 6시, 회색 봉고차가 전라북도 군산 해피죤불가마사우나 앞에 멈춘다.
“시간 없어 빨리 타.”
찜질방 앞에 앉아 있는 젖은 머리의 남학생들이 봉고차에 올라탄다. 헤어왁스를 바르는 시간조차 사치다. 이럴 시간에 엔진 기름칠 한번 더하겠다는 이들은 중앙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부의 소모임 NstopO의 제작위원장들이다. 12인승 봉고차에 몸을 싣고 그들이 향한 장소는 군산 새만금 자작자동차 대회장. 봉고차가 경기장까지 3번을 왕복하며 학생들을 실어 나른 후에야 중앙대 학생들로 점령당했던 찜질방이 한산해진다.

 

S#2. 경기장 진입
대회장 입구부터 경기장까지 캐노피 천막이 줄지어 서 있다. 한 쪽에선 글라인더로 부품을 자르고, 다른 쪽에선 기기를 점검한다. 경쟁 대학의 학생들이 천막을 기웃거리며 구색을 갖춘 자동차를 엿본다. ‘쟤네 뭐야?’ 타 대학의 염탐을 불쾌해하면서도 그들 역시 타대학의 차를 구경할 기회를 엿본다.
“협찬 마크 붙어 것도 봐바. 저게 다 몇 개야?”
“저 팀 드라이버 해외파래. 속도 죽인다.”
각종 협찬사들의 기업마크가 가득 붙어 있는 타대학과 달리 NstopO은 자동차 부품업체 한곳에서 협찬을 받았다.
차 바퀴 아래 체중계가 깔린다. 왠 체중계나 싶지만 다 이유가 있다. 네 바퀴의 무게를 재서 오차를 줄여가는 과정이다. 가벼운 차가 속도감도 좋다. 포뮬러도 오늘을 위해 다이어트를 감행했다. 차 무게 2kg을 줄이기 위해서는 일주일을 수리에 매달려야 한다. 제작위원장이자 드라이버인 유상훈(기계공학부 3)씨는 단 1c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가 문제를 지적하면 행동에 옮기는 것은 엔진팀장이다. 조금의 오차도 만들고 싶지 않은 제작위원장의 마음을 모르겠냐마는 유상훈씨의 수정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엔진팀장 최진(기계공학부 3)씨는 ‘그냥 좀 넘어가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대충 넘어간 경우는 한번도 없다. 수정과 재설계를 되풀이하며 NstopO은 대회장까지 달려왔다. NstopO의 신형 차인 바하도 마찬가지다. 바하와 포뮬러는 대회방식이 다르다. 정비가 마무리될 때 쯤 안내방송이 울린다.
“곧 9조 예선 경기가 시작됩니다.”
자 이제 돌격이다. 지난 일 년 동안의 노력이 지금 이 순간 결정 난다. 머릿속을 스치는 제작기간의 추억도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S#3. 제작 과정.
싼값에 자동차 부품을 구하는 것에서부터 제작기간의 첫 임무가 시작된다. 값싼 부품을 찾아 폐차장을 전전한다. 
“그거 비싼거야. 학생들이니깐 담배값만 주고 성의만 표시하고 가.”
폐차장 아저씨와 실랑이 끝에 2만원에 구한 부품을 들고 학교로 향한다. 폐차장과 학교까지 거리가 상당하다. 각종 부품들과 6M짜리 대형 쇠파이프를 들고 버스에 올라탈때면 버스 아저씨와의 기싸움이 시작된다. 번번히 퇴짜를 맞고 생긴 노하우는 ‘무대뽀 정신’이다. 일단 버스카드부터 찍고 보는 것이다. 승객들과 버스 아저씨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으며 작업실까지 부품들을 실어나르고 선배 제작위원장들에게 싼값에 산 파이프를 자랑한다. 선배들이 한마디 한다.
“임마, 그거 작년엔 공짜였어.”
폐차장 특성상 부르는게 값이다. 또 당했다 싶어 아쉬워하다가도 헐값에 구한 다른 부품에 안심한다. 폐차장이 아닌 전문 자동차 부품 매장 또한 구입이 쉽지않다.
“그러니깐 저희가 필요한 부품은요”로 시작해 제작팀의 장황한 설명이 시작된다. 매장직원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묻는다.
“네 고객님. 몇 세트나 필요하세요?”
“세트요? 저흰 하나면 되는데.”
직원의 표정이 굳는다. 대부분의 부품매장이 대량 판매를 주로 하다 보니 하나는 안팔겠다고 기분 나쁜 기색을 내비치며 퇴짜를 놓는 곳도 있다.
우여곡절 끝에 차가 완성되면 학교 운동장에서 시범주행을 시작한다. 엔진의 굉음 덕분에 기숙사생들의 항의가 잇따른다. 작년 경기 때는 경기 전날 차가 완성되는 바람에 새벽 2시에 시범주행을 감행했다. 그날 들어온 기숙사학생들의 항의는 생각하기도 싫다. 올해도 방학 내내 아침 9시부터 제작에 돌입해 대회기간에 임박했을 무렵엔 새벽까지도 제작에 몰두했다. 그래서 동아리 회원들의 절친은 예쁜 여자 후배들이 아닌 방호원, 미화원 분들이다.

 

S#4. 다시 경기장.
“이럴거면 비라도 오라고.”
폭염에 지쳐있던 제작팀원이 소리친다. 그때 거짓말처럼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곧 경기가 시작되는데 빗줄기는 점점 굵어진다.
폭우가 그들의 질주를 멈출 수 없다. 비오는 날을 대비해 빗길에서의 시범주행을 했다.
드디어 출발 신호가 울린다. 엔진의 덜컹거리는 소리만큼이나 그의 가슴이 쿵쾅거리다. 자 이제 출발이다. 가슴이 뭉클거린다. 소모임 멤버들이 환호한다. 차가 출발한지 15초 만에 첫 번째 코너를 돌던 NstopO 차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좋아, 가는 거어? 뭐야 저거 우리 차야?”
경기장을 구경하던 동아리 회원들이 모두 “어? 어.. 어? ”를 외친다. 첫 번째 바퀴를 채 돌기도 전에 바하가 코너 벽을 들이박는 순간이다. 경쟁대학의 차들이 차례로 바하를 통과한다. 비에 젖은 진흙바닥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헛바퀴만 돌 뿐 나올 기미가 보이기 않는다. 모두 애타는 마음으로 지켜보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모든 차가 NstopO의 바하를 지나친 후 차문이 열리고 허탈한 표정의 유상훈씨가 밖으로 나온다. 지난 일년의 노력도 한순간 가드레일을 박는다. 곧이어 차가 견인차에 실려 경기장 밖으로 끌려 나간다. 유상훈씨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경기장 밖으로 걸어 나간다. 그의 행방이 묘연하다.
 4시간 뒤, 옆 경기장에서 또 다른 경기를 펼친 포뮬러의 경기 소식이 들린다.
“포뮬러, 마지막 바퀴서 멈췄어요 실격이래요.”
설상가상이다. 
 
S#5. 준결승전 경기장.
비가 그쳤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 했던가. 동아리 회원들은 다시 경기에 임할 수 있는 발 디딜 땅이 생겼다. 실격이라 생각되었던 바하의 예선전 기록이 인정되어 본선 진출자 중 꼴찌로 준결승에 진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두 번째 출발신호가 울린다. 그리고 두 번의 실수는 없다. 엑셀을 밟는다.
예선전 때 실수했던 첫 번째 코너를 이번에는 매끄럽게 통과한다. 상대차 추월은 덤이다. 멤버들의 환호성이 들리고, 본격적인 추격전이 시작된다. 이제 14팀. 아직 갈길이 멀다. 바로 앞 차의 시동이 꺼진다. 차체에 이상이 생긴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알바 아니다. 또 한팀을 추월한다.
“자 이제 6팀만 더 꺾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또 한 대의 차를 추월하고, 또 한 대의 차가 기기결함으로 멈춘다. 꼴찌의 반란이 시작된 것이다. 역전의 드라마 속 주인공인 바하는 준결승 4위로 당당히 결승행 티켓을 손에 쥐게 됐다.
경기가 끝난 후, 차를 둘러싸고 NstopO 멤버들의 환호성이 들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드라이버가 제작팀에게 다급하게 외친다.
“너무 하드해. 빨리 다 소프트로 바꿔.”
땅 상태에 따라 차 세팅도 바뀐다. 비로 인해 땅의 상태가 예선 때와 다른 것을 감지한 드라이버가 수리를 지시한다.

S#6. 그날 밤 경기장.
결승을 위해 포뮬러는 제작위원장과 엔진팀장 주도하에 재정비에 들어간다. 엔진에 기름을 넣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실수가 벌어졌다. 수술로 치면 마취제를 적정치를 넘겨 투입한 셈이다. 마취약이 퍼지듯 넘친 기름이 차 안 곳곳에 스민다. 경쟁자들은 내일 경기를 기약하며 자리를 뜬다. 제작위원장과 엔진팀장은 찜질방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꼬박 포뮬러 간호에 밤을 샌다. 
 
S#7. 결승전 출발선 앞.

출발선 앞에 결승에 진출한 차가 선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NstopO의 바하가 보이지 않는다. 밤샌 수리에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차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어렵게 진출한 결승전에 결국 참석하지 못했다.
비슷한 시간 포뮬러 경기장에서도 경기가 진행됐다. 차가 멈춘다. 어제 왼쪽 타이어 휠이 끊어졌던 바로 그 구간이다. 끊어진 휠을 수리하며 안심했지만 이번엔 오른쪽 휠이 끊어졌다.
쓸쓸히 시상식까지 관람한 후 소모임 회원들은 서울행 셔틀버스에 올라타 말없이 창밖만 내다본다. 항의로 인해 눈치 보며 작업에 임했던 날들, 변변한 지원이 없어 회비를 아끼고 아껴서 차량을 완성한 날이 스쳐지나간다. 그 여름 장마처럼 꼬박 1년의 노력이 폭우처럼 쏟아진다. 우울한 분위기의 차 안에서 누군가 입을 연다.
“이 대회 5년찬데 매년 실수가 있었다. 그런데 실수가 5년이 되니 이제 실력이 된 것 같다. 내년엔 우승이 목적이 아니라 실수를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하자.”
“그래서 내년엔 엔진을…….”
다시 설계 얘기다. 그들의 시동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저 멀리 결승선이 보인다.
                                                       to be continued 
 

 NstopO의 신흥세력 바하
바하는 비포장도로용 차량을 말한다. NstopO은 작년에 처음 바하 만들기에 도전했다. 바하에 대한 기반지식이 없어 만드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작년의 바하는 사실상 포뮬러에 가까웠다. 일반적으로 바하는 뒤집힐 위험이 있어 높고 짧게 만들지만 작년에 만든 바하는 차 길이도 길고 바퀴달린 모양도 포뮬러에 가까웠다. 올해는 이런 점들을 보완해 비로소 바하다운 바하가 됐다. 또한 창고에 있던 오토바이의 헤드라이트를 떼어다가 바하에 붙였다. 덕택에 미키마우스, 찍찍이 등 별명만 여러 개다. 
바하 드라이버 유상훈
처음 본 그 순간부터 반했다. 봤을 때부터 운명인 줄 알았다. 영화 속에서 연인들이 첫눈에 반하듯 그렇게 유상훈씨(기계공학부 3)는 고등학생 때 자동차에게 첫눈에 반했다. 모의고사, 내신에 치여 지쳐있던 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된 TV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TV 속 대학생들이 직접 만든 자동차로 경주를 하는 그 모습에 매료됐다. 비록 “쌩”소리 나는 스피드는 없는 대학생들의 대회지만 바하 드라이버 유상훈씨에겐 이곳이 F1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속도는 역시 포뮬러
포뮬러는 자동차경주만을 위해 제작되는 자동차를 말한다. 포뮬러가 바하보다 스피드가 빠르다. 스피드가 빠른 탓에 경기 중 사고의 위험이 있어서 포뮬러 경기는 랠리(경주로 순위를 가리는 것)를 하지 않는다. NstopO은 1992년부터 포뮬러 차량을 만들어왔다. 누적된 노하우가 있는 포뮬러는 올해 리모델링만 해서 대회에 나갔다. 
포뮬러 드라이버 어준규
어준규씨(기계공학부 3)는 처음 핸들을 잡았을 때 ‘바로 이거다!’싶었다. 컴퓨터로 하는 ‘카트라이더’ 게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이 느낌이야말로 진짜 짜릿함이었다. 이후로 어준규씨는 수원, 잠실 등지로 진짜 카트(카레이싱 입문을 위해 만들어진 소형 경주용 차 및 이를 이용한 레포츠)를 타러 다녔다. 수능이 얼마 안 남은 고3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학에 와서는 까다로운 선발조건을 뚫고 NstopO의 드라이버까지 됐다. 대학교 3학년은 현실적인 꿈을 생각할 시기다. 자동차 회사라는 진로에 가려져 있지만 포뮬러에 승차하는 그 순간만은 그는 여전히 카레이서를 꿈꾼다.
 

NG
매일 미화원아주머니의 커피를 마시게 된 사연은?
유난히 무더웠던 이번 여름. 하필이면 여름방학에 봅스트홀 배관공사 일정이 잡혔다. 폭염주의보도 자동차를 만드는 이들의 열정을 막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들의 열정에 ‘브레이크’를 건 사건이 있었다. 바로 공들여 만들어놓은 카울(차 뚜껑) 사라진 것. 유력한 용의자는 바로 미화원아주머니. “난 안 버렸다”고 강력히 항변하시지만 그 뒤로 매일 가져다주시는 커피 탓에 아직도 의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힘들게 자르고 깎아 만들었건만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카울에 모두가 당황했다. 하지만 브레이크는 잠시만 걸리는 법. 다행히 샘플이 있어서 별 탈 없이 다시 제작에 들어갈 수 있었다. NstopO은 열정에 가속도를 붙여 새로운 카울을 완성해냈다.  

“자고 있으니 다 똑같아 보여서 없는지도 몰랐다”
해피죤불가마사우나가 일년 중 가장 성수기를 맞는다. 찜질방의 바닥은 파란색으로 물들여진다. 찜질방은 파란색 찜질방 복을 입은 공대생들로 북적인다. 찜질방 복을 입고 바닥에 자고 있으면 이놈이 저놈 같고 저놈이 이놈 같다. 대회 일정의 마지막 날 잠에서 깬 이재민씨(기계공학부 3)는 당황스러웠다. 수많은 파란 남정네들 중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 것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핸드폰마저 사라졌다. 같이 묶었던 다른 대학 차에 얻어타 볼까 생각은 하지만 용기가 안 난다. 결국 홀홀단신 이재민씨는 택시를 타고 대회장으로 향했다. 한편 먼저 대회장으로 떠난 NstopO멤버들은 아무도 이재민씨의 부재를 눈치 채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CUT ‘공대 아름이’는 없다
남자들이 득실득실한 자작자동차대회. 조그만 체구의 한 여학생이 드라이버를 들고 바쁘게 자동차 주위를 오간다. 바로 NstopO의 유일한 여학생인 서경원씨(기계공학부 1)다. NstopO은 여자가 4~5년에 한 명 들어올까 말까다. 하지만 이곳에 ‘공대 아름이’는 없다. NstopO 아름이의 진가는 정밀작업에서 발휘된다. 남자들에겐 없는 섬세함을 가진 탓에 쇠 깎는 일 등 정밀작업은 경원씨의 몫이다. 여기저기서 오빠들이 경원씨를 찾는다. “경원아 쇠 깎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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