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중혁 학생(사회학과 4)

Newspaper는 새로운 소식들을 담은 종이를 뜻하고, 新聞은 새로운 것을 듣는단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인터넷과 SNS가 등장해 새 소식을 급속도로 전파함으로써 신문의 ‘새’소식 전달 경쟁력을 낮춘 듯하다. 그렇다면 신문은 더 이상 경쟁력이 없을까? 개인적으로는 아니라고 본다. 신문은 새 소식을 전하는 것뿐 아니라 그것을 깊이있게 다루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1767호의 학내 교수-학생간 성추행 관련 기사들, 특히 ‘불이익 두려워 피해 사실 숨기는 경우 많아’ 기사가 아쉽다. ‘교수의 학생 성추행 문제가 양자 간 불균등한 권력관계에서 비롯되고, 그래서 은폐되기 쉽다’는 걸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그래서 이에 그친다면 독자는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하고 생각할 수 있다. 좀 더 깊이 파고 들어갈 필요가 있다.


가령, 문제해결을 위해 학교차원에선 교수들에게 관련 교육을 하는지, 성추행을 엄벌해 재발방지 노력을 하는지, 권력관계에 따른 성추행을 없앨 해결책은 있는지 등을 물어볼 수 있지 않았을까? 또 ‘학생식당 가격 올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기사에서 학생식당의 판매량이 감소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 경우 가격인상은 더 큰 판매저하로 이어지진 않을지, 그렇다면 메뉴의 질 향상이 더 나은 방안이 아닌지 등을 묻는 게 좋지 않았을까?


필자 외에도 ‘중대신문을 읽고’ 기고자들은 심층취재를 반복해서 요구했다. 고부응 교수님께선 홍보가 아닌 언론이 되라며 관련 조언을 해주셨고, 1767호의 기고자들도 비슷한 맥락에서 문제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대신문엔 단편적이고 홍보성이 짙은 기사들이 여전히 많아 보이고, 몇몇 사진은 여전히 불필요하게 커 보인다. 아마 심층취재가 그만큼 어려운 탓일 테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하다. 이를 늘 명심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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