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일 이인식 선수가 훈련을 마치고 웃고 있다.

06:20
아침을 여는 선수들
안성캠 수림체육관 뒤 잔디구장. “꼬끼오~” 학교 옆 농장에서 키우는 닭이 목청 좋게 울어댄다. 닭 울음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시끄러운지 이인식(사회체육학부 3) 선수는 인상을 찌푸린다. 잔디밭에 앉아 축구화 끈을 매고 있는데 코치가 호루라기를 분다.
헤딩 연습으로 훈련이 시작된다. 헤딩은 점프 위치와 타이밍이 빠르게 계산되어야 원하는 위치로 공을 보낼 수 있다. 때문에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이인식 선수의 주특기는 헤딩이다. 그는 큰 키를 이용해 제공력을 선점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하지만 오늘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공이 머리를 빗나가기 일쑤다.
중앙대 축구부 조정호 감독의 눈빛이 매섭다.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던 조정호 감독은 “선수들이 중고등학교 때 헤딩을 어느 정도 배워 온 줄 알았는데”하며 혀를 끌끌 찬다. 덩달아 코치들의 언성도 높아진다. “정신 안차려? 몸이 왜 이렇게 무거워.” 코치들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그의 표정에서 긴장감이 묻어난다.
찬 새벽 공기가 가실 즈음 훈련이 끝난다. 일찍 일어나 졸리지 않았냐는 질문에 조용히 “사실 원래 새벽 훈련은 잠깰 때 끝나요”라고 말하며 씩 웃는다.

08:15
마음이  녹는 식사시간

그가 배식판에 밥을 가득 담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 앉는다. 누가 등 뒤로 “악마!”하며 부른다. 코치가 싱글벙글 웃으며 서있다. 아까 훈련 때 선수들을 보던 얼굴은 온데간데없다. ‘악마’는 성격이 독하다며 코치가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하며 그가 눈을 흘긴다. 식사시간에는 사제지간의 긴장감도 눈 녹듯 사라진다.

▲ 새벽 운동 후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09:00
운동복은 내려두자

“You touch me baby, touch! touch!” 운동부 숙소 3층. 미쓰에이 수지의 목소리와 굵직한 남자 목소리가 섞인다. 축구부 분위기가 한층 들떠 있다. 복도를 가운데 두고 있는 선수들의 방 문이 활짝 열려있다. “내 양말 네 방에 있냐?”, “여기 있다. 찾아가”하며 다른 방 선수와 이야기를 나누며 부산스럽게 수업을 준비 한다.
이인식 선수도 1교시 수업을 위해 준비한다. 땀 냄새 나는 운동복을 벗고 깔끔한 옷으로 갈아  입는다. 다른 학생들은 청바지에 백팩을 매고 숙소를 나선다. 하지만 그의 옷차림은 후드에 추리닝 반바지. 왜 청바지를 입고 가지 않느냐는 질문에 “전공수업이잖아요. 타과생과 함께 듣는 수업이면 이렇게 나가지 않아요”라며 문을 나선다.

 09:30
출석에 의의를

수림체육관 유도실. 그는 최근 몇 주 동안 시합 준비로 결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운동부는 매주 경기를 치러야 하는 점을 고려해 교수님들이 이해해주는 편이다. 어느새 훌쩍 나가버린 수업 진도에 어안이 벙벙해진다. 아마도 오늘 수업은 공칠 것 같은 예감이 든다며 그는 조용히 뒷자리로 옮긴다. “오늘은 출석에 의의를 두어야 겠다”며 멋쩍은 듯 웃는다.

 11:00
그의 방 곳곳엔

“와 책이다!” 이인식 선수 앞으로 소포가 도착했다. 박스 안에는 한 권의 책이 담겨져 있다. “저희는 주말에만 외박이 허락되요. 책을 사러 갈 시간이 없어요”라고 말한다. 책의 제목은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깨닫게 되는 것들」이다. 그가 이 책을 찾게 된 계기가 있다. 지난 달 27일 중앙대는 서울디지털문화예술대와의 경기에서 3대 1로 지고 말았다. 반드시 이겨야 할 팀이었기에 그날 팀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다음 날, 4학년 선수들이 결의를 다지며 머리를 짧게 깎았다. 후배들도 선배들을 따라 빡빡 머리가 되었다.
그는 “내가 먼저 깎았어야 했다”고 말한다. 이인석 선수 개인적으로도 충격이 컸기 때문이다. 그는 수첩 하나를 보여준다. 경기가 있을 때마다 그날 부족했던 점을 적은 수첩이다. ‘4월 27일. 골 찬스 5개 놓침. 크로스 골대 헤딩으로 맞춤’이라고 연필로 꾹꾹 눌러쓴 글씨가 보인다. “운동은 정신력 싸움이에요. 책 읽으면서 다시 마음을 다지려구요”라고 말한다.
숙소를 둘러보니 다른 선수들도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스마트폰 삼매경이다. 숙소에만 있으면 지루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사실 운동밖에 한 것이 없어 운동 외에는 젬병이에요. 노는 법도 잘 모르고”라고 말한다.     

▲ 점심 먹기 전 책을 읽고 있다.

15:30
뙤약볕 아래
훈련 시작 시간에 맞춰 구름이 걷히고 햇볕이 쨍쨍 내리쬔다. 선수들이 더운 날씨에 기력을 잃자 코치가 한가지 게임을 제안한다. 룰은 축구와 같지만 골을 무조건 헤딩으로 넣어야 하는 게임이다. 코치가 사기를 고취시키려 “공을 받으려는 의지가 없어!”하자 선수들이 기를 쓰고 소리를 지른다. 선수들의 격렬한 몸싸움이 시작된다. 팔굽혀 펴기 20개가 걸린 미니게임이지만 이미 여긴 월드컵이다.
경기 후반 이인식 선수가 많이 뛰지 못한다. 지친 탓이다. 그에게 오는 공을 상대편에게 뺏기고 만다. 그러자 얼른 같은 편 선수가 공을 다시 빼앗아 그에게 넘긴다. 실수를 만회하고자 두 명을 제친 후 공을 띄워 헤딩으로 골을 넣는다. “우리 팀 왜 이렇게 잘해?”하며 하이파이브를 한다. 

▲ 연습을 위해 골대를 옮기고 있다.
▲ 이인식 선수가 패스를 받고 있다.

17:30
꿀 같은 휴식
근력 운동을 끝으로 오후 훈련이 끝났다. 파이팅 구호로 훈련을 파한 후 선수들은 일제히 양말과 신발부터 벗는다. 그때 동료가 이인식 선수에게 소심한 복수를 한다.
이인식 “거기 있는 내 신발 좀 던저줘. 항공모함 같이 생긴 것”
친구 “이거?”(신발을 들더니 반대 방향으로 신발을 던진다)
이인식 “어, 야 뭐야”
친구 “아까 내 무릎 찬 값이다”
이인식 “(웃음)에이. 속 좁은 놈”

▲ 부상 방지를 위해 근력운동은 필수다.

20:00
자신과의 싸움
수림체육관 헬스장. 두 명의 보디빌더가 덤벨을 들고 있다. 그 사이로 이인식 선수가 지나간다. 그는 10kg짜리 바벨 두 개를  벤치 프레스 위에 올려둔다. 요즘 상체를 키우는데 힘을 쏟고 있다. 약한데 강한 상체에서 좋은 스피드와 점프력이 나오기 때문이다. 매일 드는 바벨이지만 20kg는 아직 그에게 버겁다. 20번을 들고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웨이트도 자신과의 싸움이거든요. 이 시간에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아요.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에요”

 

이인식 선수

그의 플레이는 화려하지 않다. 특별한 포지션도 없다. 그는 공격과 수비를 모두 소화한다. 대학 입학 후 고정되지 않는 포지션은 그에게 큰 스트레스였다. 매 경기마다 바뀌는 탓에 집중적으로 포지션을 연습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이인식 선수는 자신을 냉정하게 평가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기량을 파악하고 어떻게 발휘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철저한 자기 평가 끝에 그는 롤모델을 이동국 선수로 삼았다. 이동국은 ‘평범한 공격수’라고 불린다. 하지만 전방과 후방에서 플레이를 하며 경기를 리드한다. 골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고 성공시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이동국 선수의 플레이는 이인식 선수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해 줄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것이었다.
스스로 마음을 잡자 그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난해 그는 대학 U리그 득점왕이 되며 작은 목표를 하나 이뤘다. 중앙대 축구부 조정호 감독은 “공기 같은 존재다. 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라며 “성실하고 꾸준히 훈련에 임하는 모범생 스타일이다”라고 평가했다. 
초등학교 4학년, 그는 “너 공 좀 차는구나. 축구부 들어올래?”하는 조기축구회 아저씨의 말에 축구를 시작했다. 좋아서 시작한 축구는 이제 즐거움보단 간절함으로 다가온다. 목표는 프로 입단. 프로 입단의 길 외에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남들에게 그의 하루는 운동으로 채워진 단조로운 일상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이인식 선수는 어제와 다른 자신을 위해 하루를 자신과의 치열한 경기를 치루고 있다.

글·사진 정미연 기자 MIYONI@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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