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차 안양에 있는 초등대안벼리학교를 찾았다. 60명 남짓한 학생들이 대안교육을 받고 있는 아주 작은 학교였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함께 머물며 취재할 작정이었다. 점심을 먹고는 학교 근처 놀이터에 나갈 일이 있었다. 술래잡기를 하고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서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바~~보!” 5학년 반의 한 아이가 지나가던 선생님을 놀리고 있었다. 아이의 행동보다 더욱 당황스러웠던 건 담임선생님이었다. 아이를 말리긴 커녕 다른 아이들과 합세해 같이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그것도 더 크게. 더 얄밉게! 아무도 그 아이에게 그만하라고 다그치는 사람은 없었다.


황당한 경험은 계속 이어졌다. 환경미화 시간이었다. 장난기가 발동한 아이 하나가 자석을 칠판에 던지기 시작했다. 재밌어보였는지 옆에 있던 아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던지는 손이 많아질수록 미처 달라붙지 못한 자석들이 바닥 여기저기 떨어졌다. 아이를 말리려는 순간, 저 멀리서 “와~ 재밌겠다!”라고 말하며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담임선생님이었다. 그리고는 같이 자석을 던지기 시작했다.


10여년 전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하루는 칠판에 낙서를 하고 지우는 걸 깜빡한 일이 있었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학교에서 꽤나 무섭기로 소문이 나있는 호랑이 선생님이셨는데 교실에 들어오시자마자 낙서를 한 범인을 찾아내기 시작하셨다. 자수를 해야 했지만 선생님이 너무 무서워 쉽게 손을 들 수 없었다. 결국 제보정신이 투철한 아이 덕분에 범인이 나라는 게 들통 났고 칠판에 낙서한 죄와 범죄 사실을 은폐한 죄가 합해져 정말 호되게 혼났었다. 그 일이 있은 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칠판에 낙서하는 아이들을 보면 자연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그때 선생님이 범인을 발본색원하지 않았다면, 아이들 앞에서 호되게 혼내지 않았다면 긴장 속에서 살지 않았을 나였다.


생각해보면 잘못된 행동도 아니다. 자석이 떨어지면 주우면 되고 칠판에 낙서를 하면 지우면 될 일이다. 10년 전 말도 안 되게 규정지어졌던 내가 10년 뒤 아이들을 그렇게 규정짓고 있었다. 누가 이 행동을 정상이 아니라 판단했던가. 선생님께 장난치고 칠판에 자석을 던지는 일이 정상이 아니라면 진정한 기쁨이나 호기심을 느껴보지도 못한 채 의미 없는 경쟁과 엄숙함에 파묻혀 사는 아이들, 정해놓은 시간표에 맞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정상인 것인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으로서 정상의 범주를 맘대로 그려버린 나를 반성한다. 아이들이 긴장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벼리학교 선생님들을 보며 참교육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처음부터 정상궤도에서 벗어난 아이는 없다. 어른들이 맘대로 그려놓은 궤도 밖에 아이들이 있을 뿐이지. 붉게 물든 석양아래 교문을 나서며 만감이 교차했다. 만 가지 감정 중에 하나는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부러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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