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재욱 교수가 생명윤리 준수를 역설하고 있다. 이설 기자

 지난 18일에 서라벌홀 814호 첨단강의실에서 제144회 중앙 게르마니아가 열렸다. 이 날 발제를 맡은 추재욱 교수(영어영문학과)가 ‘맞춤인간을 대량생산하는 미래사회’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강연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매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의 내용을 기초로 진행됐다.
 추재욱 교수는 두 책을 선정한 이유에 대해 “인간의 생명과 삶이 작위적인 형태로 조작되고 통제되는 모습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비록 시대적 배경이 다르지만 두 책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새 생명을 창조해낸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두 작품 속에 나타난 사회 및 인물의 생명윤리의식을 고찰하고 포스트휴먼 시대인 오늘날 과학연구에 있어서 요구되는 생명윤리의식의 생태학적인 균형에 대해 논의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생명연장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지속되면서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연구했고 최초의 시험관 아기인 루이스 브라운과 최초의 복제양 돌리로 결실을 맺었다. 이 둘의 탄생은 생명공학기술이 생명의 경외감을 넘보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의미한 사건이었다. 많은 국가들이 줄기세포와 같은 첨단 생명공학 분야를 ‘국가 성장 주도산업’으로 지정하고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순수했던 불로장생의 ‘꿈’은 사라지고 자본의 힘으로 뒤덮인 불로장생의 ‘욕망’만 남은 것이다. 
 자본으로 도배된 생명공학에는 생명윤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멋진 신세계』에서 인간은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구성원에 불과하다. 이들이 죽으면 화장되는 ‘허물 화장터’에서는 시체를 비료의 생산원료로 사용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가치의 상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프랑켄슈타인』에서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완성된 창조물로부터 위협을 느끼자 실험실에서 뛰쳐나왔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성취한 결과에 대해 과학자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고 주변의 여러 가족들이 죽는 비극을 초래했다. 추재욱 교수는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실험결과와 관련한 사후처리 문제에서도 책임을 다하는 윤리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간의 필요로 만들어진 ‘생명’은 인간세계에서 철저하게 배제된다.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해낸 생명체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생명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이유는 프랑켄슈타인을 비롯한 다른 모든 사람들이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자 생각하는 유일한 주체라는 전통적인 인간중심주의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켄슈타인은 그 생명체를 인간이 아닌 열등한 비인간적 존재로 간주함으로써 생명체와 인간들 사이에 갈등을 유발시킨다. 이처럼 『프랑켄슈타인』에서 인간은 지나친 인간중심주의를 내재하고 있다.
 반면 『멋진 신세계』에서 인간은 부품으로 취급받는다. 인간의 삶을 풍족하게 만드는 과학기술이 인간을 부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두 작품은 인간에 대한 극단적인 사상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현재 인간은 과학기술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포스트휴먼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포스트휴먼 시대는 인간과 과학기술을 각각 하나의 생명체와 인간의 삶의 일부분으로 인식하고 있다. 추재욱 교수는 “과학이 발전하는 부분에 있어 생명윤리의 문제가 벗어나서는 안된다”라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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