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에 수업을 듣는 학생과 단 둘이 타게 되었다. 평소와는 달리 단정한 정장을 입고 있었고, 얼굴에도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학기 말이고 취업 시즌이다 보니, 면접 시험 일정이 있는 듯해 격려를 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단정하게 입었네요. 어울려요. 조금 경직되게 굴지 말고, 스스로 자신감 있게 행동하려고 노력하세요”
“예, 교수님, 긴장이 되어서 영 어색해요”
“또박또박하게 자기 표현이 잘 되도록 명확하게 이야기하고요”
“맞아요. 강의실 유세를 하다보면 성량 조절도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어, 강의실 유세, 취업 면접이 아니고 선거에 나갔어요?”
우리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같은 내용인 듯 나누고 있었다. 그는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여 동분서주하고 있었고, 나는 ‘취업 인터뷰에 잔뜩 긴장했다’고 생각해 격려해 주려 했던 것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짧은 대화였지만, 우리 시대 대학의 풍경이 겹쳐지는 경험을 했다. 대학 내에서 쟁점이 되는 두 가지 사항이 한꺼번에 충돌한 것이다. 그것은 개인과 공동체, 현실과 미래, 성찰과 참여 같은 개념의 갈등 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대립적 상황에 직면해 항상 선택의 기로에 선다. 공동체의 공공적 운영에 개입하는 것과 미래를 위해 개인적 역량을 축적하는 것의 충돌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는가, 현실의 모순에 대응하려는 의지와 개인적 불안감을 해소려는 노력 사이의 갈림길은 어떠한가, 적극적인 행위로서의 자치활동과 세계를 바라보는 성숙한 시선의 확보를 위한 공부 사이에서 어느 쪽에 더 마음이 쏠리는가.

  나는 인문학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기존의 가치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것’에 대해 강조한다. 기존 관습을 의심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생적 삶에 스스로를 복속’시킨다고 강조해서 말한다. 스스로 자율적인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회의하며 실천하는 삶의 태도가 중요하다. 그것은 삶의 긴장을 깊은 사유를 통해 견디며, 실천적으로 행동하는 것이기도 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가르치는 스승은 제자들의 불안한 미래에 위안을 주고 싶고, 배우는 제자는 현실의 부조리에 직면해 스승의 격려를 기대했다. 서로 다른 상상이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엉킨 것이다. 나는 그 학생에게 당당하게 자기 표현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유권자들과 의사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힘내라! 학생회 선거에 관여하는 모든 출마자들! 선거는 세상을 바꾸는 조그맣지만 의미있는 실천이지 않는가.

오창은 교양학부대학 교수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