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마다 중대신문을 읽는 일이 기다려진다. 단순히 학교 소식을 전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하면서도 날카롭게 보려는 흔적들이 많아서다. 문화면에 카페를 소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럼에도 청춘다방 프로젝트에 관한 기사가 반가운 이유는 중대신문이 ‘대학생’의 초점에서 넓어지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대학생들이 다른 누군가와 소통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 소통의 범위를 넓혀주는 기사의 첫 단추 같아 기뻤다.

  세대 간의 소통에 대해 말한 문화면을 지나 학술 기획은 거기서 드러날 수 있는 허점들을 놓치지 않게 해준다. 지금 우리의 나이, 국적, 그 외의 차이점들이 섬과 섬으로 존재해 그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현실 속 문제를 놓치지 않는다. 사실 청춘다방 프로젝트는 특별한 경우다. 이 씁쓸한 현실의 지점을 되짚어 보는 것에서 끝난다면 두루뭉술한 기사에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국제면의 기사는 촘촘하게 순서를 엮어간다. 실제 우리가 만나는 교환 학생들의 대화를 통해 차이와 다양성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지금임을 환기시킨다. 서로 다른 담론들에서 이어지는 희미한 맥락을 재치 있게 배치한 것을 따라 읽어 가면 누군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대학생, 그 자체에 기대지 않고 우리가 주체가 되어 세상을 보려는 시선의 가운데에 중대 신문이 있다는 느낌이 든달까.

  이쯤 되니 다시다 코너가 조금 아쉬워진다. 사실 ‘또 다른 시선을 만나다’는 언제나 유심히 보는 코너 중 하나다. 그러나 에너지가 새고 있다 정도의 기사를 다른 시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필요한 부분을 짚은 것이지만 ‘다른 시선’이라기엔 어쩐지 좀 맹맹하다. 전기세를 포함한 학교의 운영 예산비가 부풀리기 식으로 편성돼 쓸데없이 등록금을 더 높게 받는다는 외부 신문기사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

김샛별 학생(연극영화학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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