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 홍련>을 시작으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의형제>, <악마를 보았다>까지. 이모개 감독은 이 수많은 작품의 영상을 그려낸 장본인이다. 올해 12월 개봉될 영화 <마이웨이>의 후반작업에 전력을 쏟고 있는 이모개 감독을 만나 그의 삶과 일에 대해 들어봤다.

 

▲ 따뜻한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말하는 이모개 감독. 시종일관 진지한 태도로 기자의 질문에 답했다. 이지영 기자

 

  한 편의 영화로 배우들은 일약 스타덤에 오르고, 감독은 매스컴의 조명을 받는다. 그 이면에는 많은 스탭들의 노고가 숨어있지만 그걸 알아주는 대중은 몇 없다. 그 중에서도 특히 베일에 가려진 사람이 있다. 바로 촬영감독이다. 누구보다 묵묵히 그리고 열정적으로 현장을 활보하고 있는 영화판의 숨은 진주, 이모개 촬영감독을 만났다.

- 이름이 특이하다. 본명이 맞나
  본명 맞다. 고향이 부산인데 부산 사투리로 모과가 모개다. 모과가 울퉁불퉁 못생겼지 않나. 어렸을 때 못생겼다고 가족들이 그냥 모개라고 부르던 것이 이름이 돼버렸다(웃음). 이름이 모개라고 하면 사람들 다 웃었다. 친구들한테 놀림도 많이 받았고. 


- 처음 카메라를 잡게 된 사연이 궁금한데
 20살의 나는 원래 부산대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전공도 사진이랑 전혀 관계없는 정치외교학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사진동아리에 가입하게 됐는데 거기서 ‘사진’이 뭔지 처음 알았다. 당시 사진을 찍는 게 너무 재밌고 즐거워서 ‘이걸 하면 잘 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망설임 없이 학력고사를 다시 봤고 그래서 사진학과에 들어오게 된 거다.


- 좋아하는 걸 선택했으니 대학생활도 재미있었겠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학교를 싫어했다. 내가 찍고 싶은 사진을 촬영하고 싶은데 찍기 싫어하는 것까지 촬영하라고 강요하니까. 그런 압박감이 싫어서 수업도 자주 빠졌다(웃음). 그래도 졸업하고 나서 보니 학부생 때 배워두었던 것들이 정말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이모개 인생 제2막,
충무로에 입성하다

- 순수 사진을 전공하다가 갑자기 영상 쪽으로 진로를 바꾸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학부생 때 나는 주로 강한 이미지에 매력을 느꼈고 인물사진 위주로 촬영했다. 많은 사람들을 찍다보니 어느 순간 사람들이 삐딱하게 보이더라. 사람이든 사물이든 나름의 본질이 있는데 내 방식대로 왜곡해서 해석해야 하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나중에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고 더 지나니까 사진 찍기가 싫어지더라. 한동안 카메라를 멀리했다.


  그래도 카메라 다루는 법을 배웠으니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까, 무얼 할까 고민하다가 같이 자취하던 친구의 권유로 영상원에 들어가게 됐다.


-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으로 충무로에 입봉했다. 김지운 감독과 각별한 사이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영상원에서 실습을 하던 시절에 단편영화를 몇 편 찍은 적이 있다. 그 때 내가 찍은 단편영화 <소나기>를 눈여겨 본 김지운 감독이 같이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러고는 나를 덜컥 <장화, 홍련> 촬영감독 자리에 앉혔다. 32살에 경험도 없고 검증되지 않은 내가 촬영감독을 맡은 건 당시로서는 정말 파격적인 일이었다. 그분에게도 모험일 수 있었는데 나를 믿고 끝까지 함께 가줬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 김지운 감독과 인연이 깊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 <악마를 보았다>도 함께 작업했는데 호흡이 잘 맞을 것 같다
  다른 사람보다도 김지운 감독과 작업하면 편하다. 서로의 생각, 말하고 싶은 것들을 거리낌 없이 얘기할 수 있고 때로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할 때가 많다. 두 편 이상의 영화를 함께 작업한 유일한 감독이기도 하다.


- 혹시 싸우지는 않는가 
  싸우기도 한다(웃음). 싸움은 상대방의 논리가 내 논리를 설득시키지 못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때로는 ‘이건 아닌데’ 싶을 때가 있다. 감독님의 생각이 이해되지 않고 내가 생각하는 게 맞다고 확신할 때는 가감없이 내 주장을 펼친다. 이미지의 퀄리티는 내 책임이다. 대충 찍을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대부분 감독님의 논리에 내가 설득당할 때가 많다(웃음). 


- 첫 장편영화를 작업하면서 시행착오도 겪었을 것 같다
  처음에는 NG를 내가 다 냈다(웃음). <장화, 홍련>에 보면 임수정이 숲속에서 발을 빠르게 하면서 달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 한 컷을 밤새 찍었다. 내 실수 때문에 촬영이 늦어지니까 도망가고 싶었다. 아주 잠깐 그만둬야 겠다 마음먹기도 했고. 그런데 스탭들은 다 나를 기다려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고맙다. 


- 현장 일이 많이 고되다고 들었다. 일이 유동적이기도 하고 생활고를 겪고 있는 영화인도 많은 것으로 아는데 힘들지는 않은가
  실제 촬영현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 화면에 보이는 것처럼 아름답지도 않고. 영하 20도가 넘는 추운 날씨에 계속되는 야외촬영이나 밤샘촬영은 둘째치더라도 현장에서는 아무도 보호받지 못한다. 배우든 감독이든 마찬가지다. 이걸 견뎌내는 사람만 현장에 남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다 떠난다. 8년 전 영화를 찍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현장 상황은 크게 나아진 게 없다. 그래도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서 크게 힘들지는 않다.

이모개의 마지막 목표는
따뜻한 영화 만들기

- 지난해 개봉된 <악마를 보았다>가 대중들에게 남긴 임팩트는 무척 컸다. 이모개 감독도 영화를 찍으면서 “시각적인 쾌감은 얻었지만 죄책감을 느꼈다”고 고백한 적이 있는데
  촬영에 들어가고 나서 많이 힘들었다. 대다수의 영화가 선에 기반 한다면 <악마를 보았다>는 악(惡) 그 자체였다. 영화를 찍을 때 만큼은 모든 스탭들이 실제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촬영에 몰입한다. 촬영하는 동안 나도 똑같이 악해지고 악한 감정에 충실해야 했다. 정신적으로 너무 고통스러웠다. 후유증도 컸고.


- 그럼 지금까지 작업했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뭔가
  <꽃피는 봄이 오면>이다. 촬영하는 내내 행복했다. 완성된 영화를 보고 있어도 마냥 행복하다. 그런 따뜻한 영화가 좋다.


- 직접 만들어보는 건 어떤가. 연출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을 것 같은데
  연출 욕심은 없다. 촬영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나한테는 연출자가 가져야하는 능력이 없다는 걸 배웠다. 연출자는 많은 스텝과 배우 앞에서 자신의 가치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한다. 근데 나는 그런 걸 잘 못한다. 내 얘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한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것도 싫다. 카메라 뒤에 있으면 내가 안 보인다. 그냥 촬영하는 일이 제일 재밌고 좋다.


- 언론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감독이나 배우들을 볼 때 한편으론 섭섭하지는 않나
  그건 그 사람들의 역할이다. 섭섭한 것은 전혀 없다. 나를 알아주길 바라는 것도 아니고.


- 처음 영화를 촬영할 때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마인드나 기술적인 부분에서 변화된 점이 있나
  전체를 통찰할 수 있는 눈이 생겼다는 것이 아마 가장 큰 변화인 것 같다. 처음 영화를 찍을 때는 한 컷 한 컷 지엽적인 부분에만 신경을 썼는데 지금은 전체적인 흐름을 볼 수 있게 됐다.


- 앞으로도 계속 촬영 일을 하고 싶은가
죽을 때까지 하고 싶다. 촬영감독이라는 직업은 나이가 들면 하기 힘들다. 체력이 뒷받침될 때까지 계속 촬영을 하고 싶다.


- 그렇다면 어떤 촬영감독이 되고 싶나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유영길 촬영감독 같은 감독으로 남고싶다. 내가 평소에 존경하는 분인데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영화를 찍고 돌아가셨다. 나도 그런 영화 한 편 꼭 찍고 죽고 싶다. 그게 전부다.


정소윤 기자 abc@cauon.net
 

 

 

 

 

 

 

 

 

 

이모개

학 력
중앙대학교 사진학 학사
한국예술종합학교영상원 영화과 석사

촬영작품 
2010 <악마를 보았다>
2010 <의형제>
2009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
2008 <고고70>
2008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2006 <가을로>
2005 <외출>
2004 <꽃피는 봄이 오면>
2004 <마지막 늑대>
2003 <장화, 홍련>

수상경력
2010 제31회 청룡영화상 촬영상
2008 제4회 대한민국 대학영화제 촬영상
2008 제7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촬영상
2008 제29회 청룡영화상 촬영상
2008 제2회 AP스크린 어워즈 촬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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