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한 서점에 들어갔을 때 “책 냄새가 좋다”고 말했을 때, 변태 보듯 쳐다보던 여자친구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나름대로 낭만적인 멘트라고 생각했는데 완벽하게 실패해서 종일 의기소침했다. 하기야 곰팡내 나는 서점을 이렇게 세련되고 깔끔한 여자가 좋아한다는 것도 조금 어색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이다. 클릭질 한 번에 깨끗한 책이 알아서 집으로 찾아오는데 서점에 갈 이유가 없기야 하다. 서점에서 책을 찾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고, 바닥에 푹 주저앉아 책을 찾느라 오금이 저리기도 하는데 말이다.


  이런 풍조 때문인지 몰라도 청맥서점이 문을 닫는다. 책을 거둬들이고 자리를 정리하는 ‘청맥’의 풍경을 보며 사람과 책의 거리가 참으로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일전에 나는 책을 보고 싶다면 학교 가는 길에 ‘청맥’으로 가 책 한 권을 들고 오면 그만이었다. 장소가 좁으니 책을 훑어보던 중 다른 책도 겸사겸사 가져올 수 있었다. 시간이 빌 때 들러 책을 뒤적거리다 찾은 양서도 적잖다. 이제는 대형서점으로 가야할테다. 나는 넓은 공간을 버거워하는 편이라 점원에게 미리 적어간 책 목록을 보여주고 찾아달라고 부탁할테다.
 

  서점이 사라진다. 비단 중앙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사회적인 현상이다. 비록 교보, 영풍, 반디앤루니스 등 대형 서점이 번화가에서 모든 종류의 책을 판매하고 있지만 이것과는 다른 문제다. 하다못해 동네에 작은 옷가게 한두 개 쯤은 있다. 계절이 바뀌면 옷을 사러 명동에 가듯 연례행사처럼 책을 사러가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책이라는 것은 계절이 바뀌는 횟수보다는 더 자주 찾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인터넷 서점도 서점의 대체재가 아니다. 어느 날 ‘문득’, ‘우연히’ 눈에 띈 책이 자신의 인생과 가치관을 뒤바꾸는 낭만적인 일은 이제 요원해질 것이다. 책장을 들춰보지도 않고 책을 사는 도박을 매 클릭질마다 하게 될 것이다. 물론 문제집이라면 인터넷 구매가 문제되지 않을테지만 말이다.
 

  ‘먹고 살기 힘든데 무슨 책이냐’, ‘잘난척하지 말고 앞가림이나 잘하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취업해서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 내가 늘어놓은 말들이 쓸데없이 사치스러울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다만, 한 권의 책으로 인생의 방향타를 비튼 나로서는 사람과 책이 멀어진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실제로 ‘한 권이 책이 나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는 증언은 어렵잖게 찾을 수 있다. 책이 어느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면 서점의 가치는 충분하다.
 

  그래서 책과 사람 사이에 점원이나 디지털 매체가 있다는 것이 좋게만 보이진 않는다. 책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청맥의 소식지 ‘청솔’을 본 적이 있다. ‘사람과 책, 청맥입니다’ 당시에는 표지에 자그마하게 들어간 이 문구가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행간에 서점의 본질이 묻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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