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진실로 모든 사람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는 중앙대의 행복 전도사다. 활발한 연구 활동 이외에도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힘쓰고 있는 현명호 교수를 만났다.

 

심리학자라고 해서 날카로운 눈매에 예리한 인상을 가졌을거라 생각했는데 꼭 옆집 아저씨 같다. “심리학자는 미세한 행동, 표정의 변화로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건가”라고 묻자 “심리학은 독심술이 아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 상대의 마음을 읽거나 행동으로 심리를 예측하는 게 아니라면 심리학은 어떤 학문인가
  교과서에서는 심리학을 과학이라고 한다.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심리학이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다르게 정의를 내리자면 심리학은 사람이 사는데 이득이 되게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학문이라고도 본다. 윤리학, 철학에서도 사람 사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행동 그 자체를 말해주진 않는다. 하지만 심리학은 ‘이렇게 살아라’하는 구체적인 행동을 말해주고 과학적으로 증명해준다. 

- 심리학과의 첫 만남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참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요즘 학생들은 무얼 해야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심리학이 뭔지도 몰랐다. 고등학생 때 철학을 할까, 행정학을 할까 고민하다 재수를 했다(웃음). 재수를 하는 도중에 우연히 <여성시대>라는 라디오를 들었다. 여성 심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너무 재밌더라. ‘아 저걸 해야겠다’. 그게 시작이었다.

도박, 자살, 중독
연구하는 임상심리전문가

- 심리학과 교수이자 학생생활상담소장을 맡고 있다. 학생생활상담소에서는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
  학생생활상담소를 총괄하고 있다. 사실 학생생활상담소에 일이 많이 없는 줄 알았다. 막상 와보니 학생상담과 관련한 일뿐만 아니라 장애학생을 지원하는 업무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장애학생이 없어 실질적으로 도와줄 것은 없지만 보고서 작성이나 교육 등은 꾸준히 하고 있다.


- 최근 학생들과 도박중독예방모임을 가졌다고 들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된 모임인가
  경마나 카지노에서 나오는 수익금 일부로 운영되는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라는 기관이 있다. 그 기관에서 학생들을 위한 도박예방 교육사업을 지원해주겠다고 하더라. 괜찮겠다 싶어 심리학과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하니 열 명 정도의 학생이 모였다. 적은 지원금을 받아 8월부터 사업을 진행했다. 학생들에게 홍보자료도 나눠주고 비디오와 공연도 보여주면서 도박의 위험성을 알리는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시행해나갈 계획이다.


- 활발한 대외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자살예방협회 부회장도 맡고 있는데 거기에선 어떤 일을 하나
  청장년층과 노인들 자살 유형이나 원인이 다 다르다. 자살예방협회에선 유형별 안내서를 작성하고 교육자료를 배포하고 있다. 자살 예방을 돕는 게이트 키퍼 전문가를 양성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사실 그동안에는 예산이 적어서 큰 행사나 활동을 진행하지는 못했다. 올해 3월 자살예방법안이 통과되면서 예산이 확 늘어났다. 내년에는 도심에 큰 규모의 센터도 만들 예정이다. 


- 올해 초 카이스트 학생 자살사건이 사회적 쟁점이 된 적이 있다. 근본적인 원인이 경쟁을 부추기는 비인간적인 대학사회에 있었는데 학생들이 극단적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주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처음에는 취업이나 학점, 스펙으로 인한 불안감이 생긴다. 조금만 지나면 이 불안감이 화로 바뀐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내부로 돌린다. 스스로를 공격하는 것이다. 그게 자해고 자살이다.
  카이스트 사건을 통해 느낀건데 젊은 사람들의 자살원인은 우울보다도 행복하지 않은 사회에 있는 것 같다. 사실 불안하다고 사람이 죽지는 않는다. 학생들이 안 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실패를 몇 번 겪다보니까 절망감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취업을 하고 나서도 안정적이지 못한 생활 때문에 불안해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고. 모든 것을 성적으로 평가받는 현실에서 학생들은 행복할 수가 없다. 개개인을 치료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사회 전체가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살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21세기 대학생은 여유로운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방황하는 20대들에게 충고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행복하게 살라고 말해주고 싶다. ‘사회가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행복하게 사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람은 각자 나름대로 자신을 추스릴 수 있는 방법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잊어버리고 산다. 너무 힘드니까. 평상시에 자꾸 연습해라. 나는 학생들에게 명상을 권하고 싶은데 학생들이 명상을 하려면 잘 안 된다. 에너지가 넘쳐서(웃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연습도 많이 하고. 더 좋은 것은 사회가 행복해지는 것이다. 어려운 사람들이 많고 힘든 사람이 많다는 것을 사회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숨어있는 기부천사
현명호 교수

-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묻고 싶다. 2008년부터 꾸준히 기부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올해 5월에는 ‘이달의 나눔인’으로 선정되어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는데. 기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집사람이 먼저 하자는 이야기를 했다. 어렸을 때부터 가난하게 살아서 누군가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다. ‘나부터 살고보자’ 이런 생각을 가졌었는데 살다보니까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5만원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기부를 시작했다. 지금은 내가 버는 돈의 1/10은 매달 대한사회복지회에 기부하고 있다. 


- 지속적인 기부활동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부담이 되지는 않던가
  ‘1/10은 내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니까 자동적으로 되더라. 처음 시작만 그렇지 그 뒤로는 크게 부담되지는 않았다.

- 2006년에는 아이 한 명을 입양한 것으로 안다. 입양을 결심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당시 소년·소녀가장이 많을 때라 아이를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집사람한테 내가 먼저 운을 뗐다. 그렇게 해서 입양을 알아보게 됐는데 처음에는 걱정이 많이 됐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아이를 맞이할 수 있을까 고민도 했고. 
  입양을 위해서는 가족들의 동의가 필요했는데 둘째 아들이 죽어도 안된다고 반대하더라. 완고한 아들을 설득하다 보니까 오히려 마음이 굳어졌다. 입양을 해야겠다고. 그렇게 해서 9개월 된 아이를 처음 만났는데 지금은 커서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아이한테 ‘너를 가슴으로 낳았다’고 설명을 가끔 하는데 아직 어리다보니까 이해를 못한다. 매주 입양아 부모들과 만든 모임에 참여하면서 너만 특수한 게 아니라고 자연스럽게 알려주려고 한다.

인터뷰 말미에 눈시울을 붉히는 그를 보았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의 얼굴이 지나온 삶에 대한 회한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기자에게 자기 인생을 정리할 시간을 주어 고맙다며 인사했다. 소년 같은 웃음을 지어보이면서. 그 날 기자는 인간 현명호의 진짜 모습을 보고 왔다.  
 

현명호, 그는 누구인가

나눔이 좋아, 심리학도 좋아

  넉넉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 장손으로 태어나 일찍이 작은 가장이 되었다. 13살, 학비를 벌기 위해 공장 일에 뛰어들었다는 그의 이력이 말해주듯 그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다.

  대학교에 입학할 때는 집을 팔아 학비를 마련했다. 중앙대 심리학과를 거쳐 석·박사 과정 모두 중앙대에서 마쳤다. 부모님은 빨리 취직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기 원하셨지만 공부를 포기할 수 없어 우직하게 힘든 시절을 견뎌냈다.

  인생의 황금기는 30대 초반, 광주 세브란스 병원에서 일할 때였다. 진료가 끝나도 퇴근하지 않고 동료들과 함께 미친듯이 연구에 몰두했다. 그 결과 한 해 열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하는 기록을 남긴다. 공부를 하던 중 지금의 아내를 만나고 큰 딸과 둘째 아들을 낳아 화목한 가정을 꾸렸다. 처음에는 네 식구 먹고 살기도 팍팍해 주변을 둘러보지 못했다. 문득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부를 시작하고, 입양을 결심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고 형편이 좀 나아졌을까 살펴보니 그는 여전히 소박한 삶을 살고 있었다. 자기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려고 하고 많이 가지지 않으려 한다. 심지어 그 흔한 차도 없다. 마치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직도 심리학 공부가 너무 재밌다고 말하는 그. 지금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용서’다. 용서를 통해 마음속에 남아있는 응어리를 풀고 분노를 털어낼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고 싶다고 한다. 여기에도 역시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작은 꿈이 투영된 것일까.

 
정소윤 기자 abc@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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