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철 수학과 교수


지난 7월 말, 학과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학사경고를 이미 두 번 받은 학생이 또 경고를 받으면 제적이 되니 이번만은 면하게 해달라는 전화였다. 사실 교수로서 성적관련 문의가 들어올 때면 이따금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안타까운 사정의 경우 학점을 올려주고 싶지만 형평성과 공정성 등을 중시하는 현재의 엄격한 학사 시스템에선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런 사정을 해당 학생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나서도, 나는 안심이 되지 않았다. 몇 달 전 카이스트에서 4명의 학생이 성적을 비관하여 잇따라 자살을 하고, 뒤이어 정년보장을 받지 못한 교수도 자살하는 엄청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시나 이 학생이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할까봐 정성을 다하여 설득하고, 희망과 용기를 주려고 몇 시간 동안 진땀을 흘렸다.


그런데 후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는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학생은 물론 교수, 직원, 더 나아가 학과, 계열, 대학 단위로 매년 수십 번의 온갖 다양한 평가를 통해 학점 아닌 학점을 받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이렇게 계속되는 평가에 대해 어떤 이들은 긍정적 측면, 즉 평가를 통한 자리매김과 경쟁의 유익만을 줄곧 선전하고 있다. 과연 경쟁과 평가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그렇다면 올 봄 카이스트에서의 학생 및 교수들의 자살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사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경쟁처럼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도 없다.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은 엉뚱한 자만심이나 우월감에 빠질 수 있고, 반면에 패배한 자는 쓸모없는 열등감과 자괴감에 짓눌리기 쉽다. 이제 대학을 비롯한 우리 사회는 과연 경쟁에서 뒤처지거나 낙오된 수많은 이들에게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가? 또 우리 스스로는 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성경의 요한복음 끝부분에 보면,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를 알려주는 예수께 베드로는 같은 제자이자 동료인 요한의 장래가 어찌 될지 묻는다. 그에 대해 예수는 “그것이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고 대답하신다.


오스 기니스가 그의 책 『소명』에서 묵상한대로 쓸데없는 호기심과 남에 대한 생각, 그리고 나 자신과의 비교 등은 우리에게 매우 해로운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마다 삶의 여정은 같지 않다. 곧 남과는 다른 나에게 주어진 독특한 길이 있으며, 타인의 경우는 단지 참고자료일 뿐인 것이다. 따라서 주변의 상황이나 현실에 동요하거나 굴복하지 말고, 나의 길을 오롯이 걸어가야 한다.


이제 대학을 포함한 현재의 치열한 경쟁사회, 아니 좀 더 정확히 얘기하면 치열한 경쟁을 부추기고 권장하는 사회 속에서 계속해서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도 예수는 똑같이 말씀하신다. “그것이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바라건대 이를 숙고함으로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넉넉하게 살아갈 지혜를 찾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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