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은 폭력적인 감각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 우리는 평생동안 무엇인가를 들어야만 한다. 우리가 듣는 것은 대개 주위환경에 의해 결정되고 우리가 원하지 않는 소리를 ‘소음’이라 한다.
 

최근 학내에서 불거진 소음문제에 대해 말해보고자 조금 거창하게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는 소음문제의 원인은 집행부나 동아리가 아니다. 그런 소음, 언제나 있었다. 바뀐 것은 단지 시간이다. 변해버린 시대가 소음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80년대 학번, 이른바 386세대에서 소음문제는 크게 불거지지 않았다. 아마 그 시절의 선배들에게 학교 공부는 21세기의 대학생들보다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대학생의 학외활동이 잦아들고 학교공부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이때, 소음문제는 필연적이다. 중앙대처럼 공간이 협소한 학교는 더욱 심하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소음의 진원지를 멀리 떨어뜨리는 것이다. 하지만 중앙대 90여 년 역사 동안 지독하게 등장한 공간부족해결은 요원하다.


해결방안을 찾아야하지만 여의치 않다. 소음을 부분적으로 차단할 수 없다는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소음을 차단하고자하면 모든 동아리와 학과 주점을 추방해야할 것이다. 이미 축제기간 외에 모든 주점과 공연에 제재를 가할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이러한 단순한 해결방식은 최선이 아니다. 소음은 큰 문제고 취업전선에 출진할 수많은 고학번 선배들의 앞날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불거진 소음 문제를 단순히 면학분위기 조성측면에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단편적이고 극단적인 접근은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배척하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는다. 당연스럽게도 싸움 끝에 공생의 가능성은 없다. 이러한 폭압적인 태도는 “쫓아내면 끝나는 일을 왜 그렇게 불편하게 해?”라는 말처럼 들린다. 불편한 것을 싫어하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재미없는 공부에 내일 죽을 것처럼 매달리면서 정작 주위의 문제는 너무 간편하게 해결하려한다.
또한 소음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모습을보이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러한 문화가 정말 대학에 불필요한 해악인가. 단순히 ‘노는 것’으로 접근할 문제는 아니다. 본디 그 세대와 시대의 문화와 정체성을 표상하는 것은 소모적인 문화생활이다. 신촌과 홍대가 왜 젊음의 심벌이 되었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초반을 풍미한 우리의 문화는 서태지의 노래와 H.O.T의 춤이었다. 이런 불필요한 것들은 생각보다 거대한 상징이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21세기 전후의 문화충돌을 함의하고 있다. ‘시끄러워!’라는 말 한마디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문제에 접근하는 모습에 ‘대학다움’이 묻어있었으면 좋겠다. 시끄럽다고 쫓아내고 최고의 효율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이 문제가 가지는 상징과 역사성에 조금 더 눈을 돌리는 것이 대학이 아닐까.


이 모든 것을 부정하고 ‘꼭 필요하지는 않은 것’을 모조리 배척하는 순간 학교는 참으로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공간이 될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동시에 이곳은 회색도시가 되어버리지 않을까. 난 적어도 회색 도시에 침잠된 인간이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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