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부여박물관장, 국립민속박물관장을 거쳐 현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추진단장을 맡고 있는 신광섭 동문. 백제 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를 발굴해 낸 주역이기도 하다. 올해로 박물관 생활만 33년째인 ‘박물관 박사’ 신광섭 단장을 만났다.

항상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보겠다고 말하는 신광섭 단장. 사무실에서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세종로 한복판. 분주한 도심의 한 빌딩에서 신광섭 단장을 만났다. 생각보다 그는 작은 체구의 소유자였지만 무언가 다부진 인상을 주었다.
그는 자신을 ‘행운아’라고 설명했다.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박물관 일, 우연한 기회에 얻은 보물 덕에 이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고 말하는 신광섭 동문. 박물관과 동고동락한 그의 지난 세월은 어땠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 박물관과 처음 인연을 맺은 때가 언제인가
  제대하고 고향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였다. 당시 부여박물관장님이 같이 일해 볼 수 있겠냐고 권유하시더라. 그때만 해도 박물관 관련 직업을 갖는 것이 썩 좋지는 않았다. 뜬금없는 이야기라 망설였는데 재밌을 것 같아서 해보겠다고 했다. 적성에 안 맞으면 그만두려고 했는데 벌써 33년째다(웃음).


- 부여박물관에서만 17년을 근무했다. 근무당시 백제 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와 백제 창왕명 석조 사리감(국보 제289호) 발굴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들었는데. 당시 정황이 궁금하다
  논바닥을 메우고 주차장으로 만드려는 계획이 있었다. 평소 기와가 많이 출토되는 지역이라 조사를 좀 더 해봐야 할 것 같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발굴 작업에 착수하고 보니 옛날 절터가 나오더라. 작업을 계속했는데도 발굴이 끝나지 않은 느낌이 들어 겨울에 비닐하우스를 세워놓고 조사를 계속했다.
그러다가 어느 토요일 저녁, 모든 직원들이 퇴근할 무렵이었다. 작업 중에 이상한 게 보인다는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쫓아갔다. 처음에는 그냥 조각인 줄 알았는데 뿌리가 점점 깊어지더니 엄청 큰 향로가 나오더라.


-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묻혀있던 향로와 마주했을 당시, 어떤 기분이 들던가 
  그냥 얼떨떨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물건일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완형품이 나오기가 쉽지 않은데 손상된 부분 없이 완벽한 것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밤에 발굴했다고 직원들한테 욕도 참 많이 먹었다(웃음).


- 금동대향로의 진위 판단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우선 백제가 멸망한 때였던 66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술사학회와 고고학회의 연구에 따라 그 절이 554년쯤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추측을 했다. 비슷한 장소에서 발견된 사리 석함에는 567년이라는 날짜가 적혀 있었고. 어쨌든 그 절의 창립은 567년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 사용했던 유물이라고 짐작을 하는 것이다.


- 유물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는지 궁금하다. 오래된 것이면 모두 유물이 될 수 있다고 보는건가

  첫 번째로 미술사학적인 분석, 두 번째로 유물의 연대측정법을 거쳐 선정한다. 희소성을 가지고 있고 보존할 가치가 있다면 대부분 문화재가 될 수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경우 불과 몇 년 전 물건도 수집을 하고 있다.


- 현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건립추진단장을 맡고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무엇인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현대사 박물관이다. 일제 36년, 한국전쟁, 개항기, 대한제국 그리고 현재의 역사까지 포괄적으로 다룬다. 정치, 사회, 문화, 예술, 여러 민주운동 등 시대적 삶을 많이 담으려고 한다. 세계사적 한국, 아시아적 한국, 여러 관점들을 수용하면서 지난 60년 동안 이뤄온 대한민국의 성공 사례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보여주려고 한다. 내년 6월 건물이 완공되면 12월 말쯤 오픈할 계획이다.


-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왜 필요하다고 보는가
  최빈국에 속했던 대한민국은 무려 60여 년 만에 원조를 받는 입장에서 주는 국가로의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혹자는 이것을 ‘기적이다’라고 평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 안한다. 피나는 노력과 조상들의 숨어있는 투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우리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역사를 스스로 잊어버리고 산다. 우리 역사를 우리 손으로 찾아내고 보존해야 한다. 대한민국박물관에서는 고난과 영광의 순간을 보여주면서도 ‘21세기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야하는가’에 대한 비전도 제시하려고 한다.


- 사실 대다수의 학생은 박물관을 고리타분한 곳으로 생각한다. 박물관이 편하고 친숙한 느낌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요즘 학생들은 박물관을 ‘전시된 물건을 걸어 다니면서 보게 하는 곳’이라고 많이 생각하는 것 같다. 재미없으면 안 된다. 역사는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내용과 컨텐츠의 문제는 둘째 치고 어떻게 표현하느냐 하는 방법의 문제가 중요하다. 
  지금의 아이들은 40년 전 내가 경험했던 이야기나 400년 전 이야기를 똑같이 생각한다. 임진왜란이나 한국전쟁이나 직접 목격하지 않았으니 아이들에게는 다 똑같은 역사 일 뿐이다.
  이번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는 아이들에게 우리 역사의 사실을 즉각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해서 최첨단의 디지털 기술을 적용시켰다. ‘뭐 박물관이 이래?’ 이럴거다(웃음). 혹자는 ‘가볍다, 경망스럽다’고 비판하기도 하는데 자라나는 청소년과 역사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역사적 메시지를 전해주는데 의의를 두려고 한다.


- 역사를 보는 시각은 정말 다양하다. 신광섭 단장의 역사관은 어떤가
  사학자는 여러 역사관에 휩싸이게 되면 큰 문제가 생긴다. 학교에서 근무할 때 주변 선생들이 그러더라. 사학자는 성직자 이상으로 자신을 절제해야 한다고. 그래서 항상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에 서려고 한다. 누가 봐도 납득할 수 있게 사실 중심으로.

- 30년이 되는 시간 동안 박물관 일을 하면서 힘들었던 적은 없었나
  힘들었던 것들은 지나가면 다 잊어버린다(웃음). 젊은 시절, 부여박물관에서 아무 잡념 없이 연구조사와 발굴에 전념할 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 또 백제대향로 발굴에 직접 참여할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추진단장으로서 전체를 컨트롤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것도 큰 보람이다.


- 중앙대 후배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지금은 경쟁사회다.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아무도 밥을 떠먹여주지 않는다. 한번 뿐인 자신의 인생을 어디에 쏟을 것인지 빨리 결정해라. 뭘 하든 자기한테 맞는 일을 어서 찾아라. 어디서든 열심히만 하면 기회는 주어진다.     

 

부여박물관장만나 33년 외길로

대학교 2학년, 처음 역사에 흥미를 느꼈다.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성격 탓에 전국 방방곡곡을 후비고 다녔다. 역사에 깊이 빠져 학부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이어갔다. 대학원을 졸업한 후에는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잠시 동안 기간제 교사로 근무했지만 ‘학교’라는 곳은 신광섭 단장을 품기엔 너무 꽉 막힌 곳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30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군입대를 감행한다.


1980년. 제대를 하고 고향 부여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우연히 부여박물관장을 만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박물관과의 첫 만남.


부여박물관 재직시절 백제 금동대향로를 발굴해내고 17년간 부여 연구에만 몰두했다. 1999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가게 된다. 성실함 하나로 똘똘뭉친 그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관리부, 역사부를 거쳐 국립전주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의 관장을 역임한다. 몸 담았던 박물관에서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변화를 시도한 공로로 지난 2010년 ‘자랑스런 박물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1월,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추진단의 지휘자로 발령받아 새로운 변화를 꿈꾸는 중이다.

   

 

    
글·사진 정소윤 기자 abc@cauon.net

 

국보 제287호로 지정된 백제 금동대향로.  지난 1993년 부여에서 신광섭 동문이 직접 발굴한 소중한 유물이다.  이 향로는 녹도 슬지 않은 원형 그대로 발견되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의 학계에서도 주목받았다.  백제 금동대향로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선정한 ‘우리유물 100선’에 선정되었으며 현재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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