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보드리야르와 질 들뢰즈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성, 모더니티의 전복자 그리고 90년대 문화담론의 중심이라는 점 등에서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이론가들이다. 더욱이 한국사회에서 맑스주의의 위기를 기점으로 폭발한 포스트모더니즘 논쟁, 탈근대성 논의의 중심에는 언제나 그들이 있었다. 하지만 보드리야르와 들뢰즈가 도달한 이론적 지형, 한국사회가 두 학자에게 주목했던 정치적 목적은 공통점보다는 상반된 지점이 더욱 많다. 프랑스 담론의 수입이라는 비난 섞인 꼬리표에도 불구하고 근대적 사유를 가로질러 탈근대의 문화지형을 분석하기 위한 무기로 그들이 선택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보드리야르가 근대적 사유를 넘어 다다른 세계는 허무주의적이고 종말론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이다. 그는 탈근대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현상을 모두 상징적인 이미지와 기호의 논리로 설명한다. 보드리야르에게 현대사회는 상품의 물신숭배가 기호의 물신숭배로 전도된 사회이며, 진리와 허위를 구별할 수 없는 근본적으로 변질된 시대상황이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티로 표현되는 오늘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상황은 모더니티를 상징해 오던 자율적 주체, 이성적 주체 및 합리적 주체의 종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보드리야르에 있어서도 출발점은 맑스주의였다. 최근 서점의 신간코너에 진열된『사물의 체계』(백의)는 이 점을 잘 보여준다. 보드리야르의 초기 저작이자 그의 박사학위논문인『사물의 체계』는 정확히 말해 ‘사물의 기호학’이다. 여기서 ‘사물’은 그가 맑스주의자라는 근거로, ‘기호학’은 맑스주의와의 결별점으로 작용하게 된다. 왜냐하면 당시 보드리야르는 자본주의에 대한 맑스주의적 비판의 범위 안에서 소비의 영역을 분석하고자 하였으나, 그는 소비주의의 특질을 새로운 방식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기호학 이론을 사용하면서 맑스주의와 멀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의 작업은『소비사회』,『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를 통해서 물질 문화의 기호학과 일상 생활의 상품화 사이의 관계, 그리고 소비 상품과 기호의 관계에 대한 연구로 집중된다. 즉 보드리야르는 맑스주의가 문화영역을 ‘생산의 거울’로 보았으나, 오늘날과 같은 소비 자본주의 사회의 일상적 삶은 기호의 법칙 혹은 코드의 법칙에 의하여 각인된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보드리야르의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은 료타르와 제임슨이 주목한 ‘재
현’(representation)의 문제를 뛰어넘어 실재와의 그 어떠한 관계도 인정하지 않는 매우 극단적인 이론으로 나아가게 된다. 순수한 환영이며 가짜인 시뮬라시옹(simulation) 혹은 모사는 이제 실재와는 그 어떠한 관계도 없다는, 기호의 지시기능마저 소멸시키는 극단적인 선언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적 재화의 산업적 생산이 모더니티의 핵심적 영역이었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의 사회에 있어서는 시뮬라시옹이 실재에 선행하는 모델로서 사회를 주도하고, 실재보다 더 실재같은 하이퍼리얼(hyperreal)의 세계가 도래한다.

따라서 보드리야르의 이론은 아우라가 없는 디지털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 매우 유의미한 문제제기를 던지고 있다. 테크놀로지의 발달에 따른 미디어의 발달이 재화의 소비를 뛰어넘어 사이버스페이스라는 가상현실의 주체를 호명하고 있는 오늘날, 보드리야르의 상징질서와 시뮬라시옹이라는 개념은 다양한 탈근대적 문화현상을 분석하는데 있어 상당부분 적절한 분석틀을 제시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드리야르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기호의 물신숭배가 만연된 오늘의 소비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어떠한 정치적, 문화적 대안이나 전복의 가능성을 제시하지 않는 극단적인 상대주의에 우리를 가두어 버리고 만다. 세상에 불만은 많으나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어떠한 일도 부질없다는 식의….

보드리야르가 사회변혁의 이론인 맑스주의에서 출발하여 극단적인 허무주의에 도달했다면, 들뢰즈는 이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탈근대의 지형을 횡단한다. 그는 맑스주의의 핵심으로 간주되어 온 (헤겔의) 변증법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자신의 탈주를 시작하여, 주체들의 존재론적인 역능을 통한 무한한 가능성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들뢰즈는 근대의 해체를 통한 패배주의와 허무주의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탈근대적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시선을 끈다. 특히 미시권력을 통해 탈근대적 사유의 지평을 열었던 푸코가 생산적 권력에 대한 반작용 수준에서 저항을 수동적으로 다룬 것과는 달리, 들뢰즈는 탈주하는 힘의 선차성에서 출발함으로써 주어진 사회적 배치 속에서 탈근대적 주체들의 잠재적 역능을 포착한다. 따라서 들뢰즈의 사유 속에서 주체는 근대적인 거대한 구조에 갇히거나 포스트모더니티 속에서 완전히 내파(implosion)되는 것이 아니라, 세력관계의 변위(變位)와 전복, 기존 질서의 전환과 재배치, 그리고 새로운 관계로의 이행과 탈주를 향해 열려져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탈근대 지형에 있어서의 문화분석과 그를 통한 운동의 가능성을 들뢰즈의 욕망이론에서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욕망의 통제와 탈주 : 스피노자에서 들뢰즈까지』(전경갑, 한길사)도 그러한 작업 중의 하나이다. 여기서 저자는 들뢰즈가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스피노자의 형이상학에서 시작하여 다양한 정신분석학자들의 욕망이론을 가로질러 들뢰즈·가타리의 분열분석에 이르고, 곧이어 포스트시대의 정치적 대안으로서 들뢰즈·가타리의 이론적 가치에 주목한다. 즉, 들뢰즈와 가타리의 욕망이론은 변혁에 회의적인 포스트모던 담론의 한계를 극복하고 변혁의 이론적, 실천적 가능성을 탐색하는 작업인 것이다.

맑스주의의 위기 이후 횡행하고 있는 진보운동 진영의 패배주의 속에서 제기된 들뢰즈의 대안적 전략은 매우 독특한 작업이다.(특히 하버마스의 작업이 이상적 담화와 이성적 의사소통을 통해 해방을 낙관적으로 기다리는 소박한 전략이라면, 들뢰즈·가타리의 작업은 욕망의 무의식적 열정을 통해 해방의 가능성을 분출하는 지나칠 정도의 대담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들뢰즈의 전략은 보드리야르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포스트 학자들이 다다른 기호의 유희, 특히 기표의 절대성이라는 함정에 도전한다. 이는 기호와 실재대상의 관계라는 이항대립의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기호의 외부와 기호의 운동(실천)에 주목하는 것이다. 따라서 들뢰즈의 기호학은 보드리야르의 기호학처럼 기표의 절대성에 따른 허무주의로 귀결되지 않는다. 들뢰즈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보드리야르가 도달한 기표적 기호학은 기호로 시작해서 기호로 종결되며, 이 순환의 내부에는 관념론적으로 존재하는 표상체계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들뢰즈는 기호의 외부로 시선을 돌려 기표와 기의의 이분법을 횡단하고, 언표행위의 집단적 배치를 통해 기호의 실천을 모색한다. 따라서 들뢰즈의 기호학에서 중요한 것은 의미작용을 넘어서는 비기표적, 탈기표적 체계이다.

뿐만 아니라 들뢰즈의 전략은 포스트모더니즘이 빠진 ‘구조와 주체’ ‘객관성과 주관성’이라는 이분법적이고 상대주의적인 함정도 도전한다. 들뢰즈가 제시하는 욕망이나 생성의 미시정치는 주체의 행위에 대한 동일시가 아니다. 이는 ‘구조 대(對) 주체’의 이항대립 속에서 구조의 결정성을 비판하고 후자의 손을 쉽게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주체를 사회적 관계와 집합적 배치의 산물로서 인식하는 과정이다.

왜냐하면 들뢰즈가 제시하는 이론은 인식과 행위의 선험적 기원으로서 주체를 전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정된 자기 동일성을 가지는 규정되고 고정된 주체는 들뢰즈에게는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끊임없는 주체화의 과정만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질서를 향한 탈주와 이행의 가능성은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항시적으로 존재한다.

급변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문화를 분석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대안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나쁜주체들’의 가능성을 찾는 것은 그리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수많은 사상가들과 사유들이 내파되거나 자본주의로 재편입되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종착점이 냉소적인 허무주의나 비관적인 패배주의이기를 거부한다면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실험은 지속될 것이다. 그 실험의 몸부림이 들뢰즈의 사유를 통해 한국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다면, 그 유행에 대한 반감을 가질 이유는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이 원 재 <신문학 석사 4차>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