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학생들은 정말 깊은 병에 걸려 있다.
바로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는 병이다.

지금 공부 잘하고 능력 있다고 하는 스카이 학생들은 군대식 표현으로 하면 ‘숙달된 조교’에 불과하다.  - 홍세화 선생님


대학생들은 학벌이 자기 인생을 모두 규정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벌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 박희은 씨

현실에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개개인의 학벌이나 퀄리티를 높이려고 한다. 즉, 자기부터 살고 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 - 이준기 씨

일제시대, 학벌은 유일한 성공의 통로였다. 기존 권력층이 탄탄했던 시절, 소시민들에게 있어서 학벌이란 신분상승을 의미했다. 그렇게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학벌지상주의. 약 한 세기가 지나 찾아온 오늘. 그것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전부를 의미하게 됐다.
 우리는 이러한 배경을 알지 못한다. 이 세상에 눈을 뜬 순간, 벌써 학벌주의에 편승해 있다. 순위가 높은 대학에는 한없는 열등감이, 낮은 순위의 대학에는 근거 없는 우월감이 우리 안에 내재해 버렸다. 사회의 기준에 충실하고자 오로지 한 가지 목표만을 향해 무단한 노력을 우리들. 그러나 보상으로 돌아오는 것은 평생 동안 따라올 낙인이었다.
학벌이 뭐기에, 왜 대학이름 하나로 죽을 때까지 서열화 되어야 하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을 던지는 두 사람이 있다. 이준기 학생(국어국문학과 4)과 박희은 학생(국제관계학과 2)이 학벌에 대한 고민을 풀고자 홍세화 선생님께 상담을 요청했다. 


# 한국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학벌


박희은 학생
: 한국 사회에는 학벌주의가 만연하다. 왜 이렇게 됐나.
홍세화 편집위원 : 아마도 일제강점기와 미군정 시기가 큰 영향을 미쳤을 거라 생각한다. 미국과 일본은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역시나 학벌주의가 만연한 사회다. 일제 강점기와 미군정을 거치면서 일본과 미국의 시스템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렇게 위계화를 확실하게 시켜 놓으면 지배하기가 편하다. 로마시대 때부터 식민지를 지배하는 전략이었던 Divide&Rule. 분리시켜서 지배한다는 뜻이다. 일렬로 세워놓으면 지배하기가 편하다.
: 6월 민주항쟁이 학벌사회를 타파할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 분명히 6월 민주항쟁이 변화의 기회였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단적인 예로 87년 6월 이후 6월 민주항쟁 분위기에 이어서 노동자 대투쟁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6월민주항쟁만 기억한다. 6월 민주항쟁은 그 자체로 멈췄다. 그것이 한계였다.
이준기 학생 : 유럽은 한국과는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
: 유럽과 한국은 확실히 다르다. 유럽의 대학들은 평준화를 통해 횡적으로 되어있는데 반해 한국의 대학들은 종적으로 구성돼있다. 따라서 유럽은 대학에서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그 순간에 낙오될 수 있는 구조다. 이런 구조 속에서 엘리트가 된다는 것은 자기하기 나름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대학들이 일렬로 줄서있다. 아무리 자기가 노력해도 대학 간판이 자신을 규정해버린다. 그래서 현재 대학생들은 대학에 들어가는 순간 자신의 위치를 규정한다. 이게 참 중요한 얘기다. 유럽은 대학부터 계속 자신을 다듬고 또 다듬어야 한다. 이렇게 자신을 계속 성숙시켜 나가면서 인정받는 구조인데 반해, 한국 사회는 대학 입학이면 다 끝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아무리 애를 써도 일정한 학벌층에 끼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 분명히 대한민국에서는 학벌문제가 너무 고착화된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사회에서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영위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차등은 어쩔 수 없이 생겨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학벌주의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차선책으로 볼 수도 있지 않나.
: 피라미드 구조로 가면 차등이 있긴 하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한국과 같은 사회는 계층간 소득 편차가 심한 피라미드다. 이런 한국사회에서 학벌주의는 차선책이 아니라 최악이라고 본다. 한국처럼 학벌이 견고한 나라는 없다. 학벌주의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일본이나 미국을 예로 들지만 한국만큼 심하지 않다. 한국은 스스로를 보편적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특수적인 상황을 가진 국가다.
: 선생님께서는 학벌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다. 하지만 학벌이 좋은 학생들이 능력이 더 좋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 여기서 능력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필요하다. 현재 대입 시험 점수로 학생들의 계급이 규정되고 있는데 대입 시험 점수가 높다고 해서 능력이 좋다고 할 수는 없다. 현재 대입 시험 점수로 매겨지는 등수가 말해주는 것이 무엇인가. 문제를 잘 풀었나, 암기 잘했나, 이런 것이다. 여기서 능력이 있다고 얘기하는 것은 기존 체제에 대한 숙지를 잘했다고 말하는 것일 뿐이다. 지금 공부 잘하고 능력 있다고 하는 스카이 학생들은 군대식 표현으로 하면 ‘숙달된 조교’에 불과하다. 사실상 지배체제에 잘 적응하는 능력을 기른 것일 뿐이다. 한국은 현재 자본주의 사회다. 하지만 학생들 학교 다닐 때 자본주의에 대해 제대로 공부한 적 있는가. 현재 한국은 주체화 교육이 전무한 사회다. 기득권층이 규정한 것만 배워서 순위를 매기고 있다. 학벌이 있다는 사람들의 능력은 이 체제를 강고히 하기 위한 능력에 불과하다.
: 확실히 능동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다.
: 사회에서 의식 체계는 교육이나 미디어를 통해 형성된다. 칸트가 말했듯이 사람들은 생각을 하는 존재다. 하지만 여러분들, 생각을 자유롭게 하는가. 여러분이 생각하는 바는 주체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대부분은 미디어나 현재 제도 교육에 의해 정의된 생각에 불과하다. 영화 매트릭슬를 떠올리면 쉽다. 여러분 전부다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프로그램화 된 것이다. 지금 현실도 그렇다. 주입식 교육에 의해 만들어진 생각에 규정되고 있다.

# 학벌의 노예가
   돼버린 학생들


: 대학생들은 학벌이 자기 인생을 모두 규정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벌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 학벌로 자신의 위치를 규정하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이미 학생들이 대학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정해버리니까 소위 스카이(서울대·고려대·연세대) 학생들은 대학 이후에는 공부를 하지 않아도 죽는 순간까지 학벌만 믿고 산다. 사회가 자신을 규정해버린다면 죽는 순간까지 그 규정대로 살아야 한다.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야 하는데 학생들 스스로를 학벌에 규정시키는 객체가 되고 있다. 지금의 한국사회는 신분사회와 다를 것이 없다. 다른 점은 조선시대에는 태어났을 때부터 신분이 규정됐지만 지금은 수능이 끝난 시점부터 신분이 규정된다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혁파해야한다. 지금은 민주주의 사회다.
: 하지만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이것을 인식할 수밖에 없다. 스카이를 보고 동경하거나, 조금 낮은 서열의 대학생을 보면 멸시한다거나, 이런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
: 그것이 지금 대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병이다. 대한민국 대학생들은 정말 깊은 병에 걸려 있다. 바로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는 병이다. 그 병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 ‘쟤는 스카이 나왔는데 나는 여기 나왔네’, ‘30살이 되면 쟤는 50평짜리 아파트에 살텐데 나는 힘들겠다’, ‘쟤는 자식 100만원 짜리 과외 시키는데 나는 이것밖에 못해주네’ 이런 끊임없는 비교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여러분들이 정말 남겨야할 비교는 ‘어제보다 내가 성숙했는가’, ‘오늘보다 내일 성숙할 것인가’, ‘나와 주변 사람들의 관계는 오늘보다 내일 더 나아질 것인가’ 이런 것이다. 남과 가진걸로 비교해봐야 아무런 의미는 없고 자신의 성숙은 멈춘다. 남과 비교하는 사람일수록 그 사람은 자기 집단의 우위에 기대게 된다. 집단에 귀의해서 집단으로부터 이득을 얻고자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학벌이나 족벌, 재벌, 군벌까지 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다.
: 그런 것 같다. 중앙대를 예로 들면 서울캠에서 안성캠 학생이 수업을 들으면 서울캠 학생들 사이에서 수군대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학내의 이런 갈등들이 본·분교 통합 이후에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 사람들이 홈스테이를 했었다. 그 때 백인들에게는 받는 것도 없이 대접했다. 하지만 동남아시아 사람들이나 흑인들에게는 주는 것도 없으면서 멸시만 했다. 이것과 똑같은 것이라고 본다. 본교와 분교 문제에서도 본교 출신들은 남들과 비교하면서 분교생들 앞에서 자기 집단의 우위를 확인하면서 알량한 만족감을 얻을 뿐이다. 자기 성숙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것들로부터 벗어나 있다.
: 그 뿐 아니다. 두산이 들어온 이후에는 단지 재단이 바뀌었을 뿐인데 중앙대의 서열이 올랐다는 생각을 가지는 학생들도 많다.
: 자기가 속한 집단의 순위에 매달리고 폼 잡는 것. 정말 한심한 일이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다. 서서히 인간들은 경제동물로 축소되고 있다. 얼마를 버는지만 중요하게 여겨진다. 두산이 들어올 때 박수치면서 환영한 것도 학생들이 취직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정말 모든 잣대가 경제적인 수치로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인격이나 지혜다. 그런 것을 사람들이 잊고 산다. 소크라테스의 말을 인용하자면 ‘배고픈 인간’과 ‘배부른 돼지’중 현재 대학생들 대부분은 ‘배부른 돼지’를 지향하고 있는 것 같다.
: 하지만 선생님도 서울대 출신이신데 서울대 출신답지 않은 생각들을 가지고 계신 것 같다.
: 내 경우는 돌연변이다. 21년 동안 한국을 떠나서 프랑스에서 지냈던 경험이 학벌 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 것 같다. 한국에 있었으면 한국 사회 자체가 끊임없이 이러한 현실을 확인시켜주니까 아마 ‘KS(경기고-서울대)’출신이라고 해서 엘리트 의식을 버린다는 게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서민으로 살았던 프랑스에서 그것이 아마 나의 의식을 자연스럽게 소멸 시켜준 것 같다.
: 지금은 서울대 출신이라는 우월감은 없으신가요?
: 완전히 없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학벌 의식은 대부분 희석되어버린 것 같다. 학벌에 대해서 인식 자체를 하고 있지 않다.

# 고착화된 학벌사회에서
   찾을 수 있는 희망


: 학벌문제는 한국 사회의 여러 가지 부분과 복잡하게 엉켜있기 때문에 요원한 문제가 아닐까하는 걱정이 든다.
: 분명 힘들다. 하지만 넋 놓고 있을 문제가 아니다. 여러분들이 결혼하고 나서 자식을 낳으면 그 아이의 문제이기도 하다. 2차 대전 이후에 유럽 학자들이 교육을 통해 계층순환이 가능한가에 대해 연구했다. 연구결과는 계층순환이 힘들다는 것이었다. 현재의 교육과정은 계층의 대물림을 합리화해주는 과정이다. 이것이 경쟁으로 포장되어있을 뿐이다. 그래서 유럽 학자들은 대학의 문턱을 낮추고 역차별도 허용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은 대학들의 서열화가 명백한 사실이다. 서열화 돼있는 이 구조 속에서 부와 명예를 독점하게 되는 이 구조를 어떻게 혁파할지가 공동의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을 전부 ‘내 자리’로 여기니까 이 구조가 강고해질 수밖에 없다.
: 강고한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
: 조직에 참여해서 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 그런 방법 밖에 없다. 이런 구조에서는 절대 다수가 루저가 된다. 구체적으로 등록금 투쟁 등을 통해서 지금 대학생들 혹은 후세대를 위해 사회를 바꿀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구조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이 필요하다. 비판적 인식은 끊임없는 공부만으로만 가능하다. 학생들은 편입, 지금 다니는 대학보다 더 높은 대학의 대학원 진학, 스펙 쌓기를 통한 대기업 입사 등에만 관심이 있다. 계속해서 이렇다면 현재 구조는 바뀔 수가 없다. 지금 구조를 잘 살펴봐라. 경제적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자식에게 교육 자본까지도 물려주고 있다. 이러한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스펙 쌓기에 지든 나를 바꾸고 이웃을 바꿔야 한다.
: 하지만 현실에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개개인의 학벌이나 퀄리티를 높이려고 한다. 즉, 자기부터 살고 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학생들이 운동에 뛰어들기란 쉽지 않다.
: 여러분들의 선배를 보라.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들은 현재 사회에서 대다수가 루저다. 그런데 변화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고 있는가. 그렇지 못하더라도 어차피 운동은 대다수가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희생을 무릅쓴 소수가 있어야만 사회는 바뀔 수 있다. 어차피 다수는 언제나 무임승차 해왔다.
: 선생님 말씀은 이해하지만 그것을 개인이 헤쳐 나가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 물론 그렇다. 올바른 길이 쉽다고 생각해봐라. 그렇다면 이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힘들다는 말만 해서는 안된다. 어려운 길, 그것이 바로 가야할 길이다. 최근의 등록금 투쟁에서 볼 수 있듯이 어려운 길이지만 많은 학생들이 그 길을 가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분명히 최근 복지 문제나 등록금 문제에서 사회가 올바른 쪽으로 변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다.
: 사회의 변화 속에서 학벌 문제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 구체적으로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방안은 무엇인가.
: 서울대 프리미엄이 너무 강하다. 그것을 축소시킬 필요성이 있다. 방안으로는 서울대를 인문학 중심의 대학으로 특성화시킨다거나, 대학원으로 만드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권력과 분리되는 방안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또한 지역과 서울의 격차가 너무 큰 것도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에 있는 권력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 그렇기 된다면 그 권력이 연세대나 고려대로 분산되지 않을까.
: 상상력이 너무 부족하다. 서울대가 축소되거나 없어진다고 해서 서울대 출신들이 없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최소한 30년은 사회 지도층 자리를 유지할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연·고대 출신들은 서울대 출신들이 견제해줄 것이고 새로운 구조가 자리를 굳힐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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