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살기 위해서 먹는가,아니면 먹기 위해서 사는가’라는 명제는 분명히 진부한 말임에 틀림없다.왜냐하면 인간이 경제적 측면의 중요성을 생각지 않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보다 높은 의식을 지닌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먹기 위해서 산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오늘날 문명의 요람인 우리 대학이 처해 있는 상황은 위와는 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 하다.

지난 6월 10일 학교당국은 대학출판부의 연평균 적자액 및 미수금 급증, 기타 관리 운영상의 문제를 들어 경영수지개선의 명목으로 중앙대학교 출판부(이하 출판부)를 폐지시켰다.

출판부의 3년간 연평균 적자폭은 1억3천여만원, 공간활용비, 인건비 등을 감안한다면 2억여원정도라는 것이다. 이는 출판연구사업비 1억 4천여만원을 초과하는 액수로 엄청난 금액임에는 틀림없다.

기획실에서는 출판부가 비록 영리기구는 아니지만 교양필수과목 폐지등 대학출판사업환경의 변화와 이에 따른 현재 출판부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출판부 폐지라는 결정이 불가피했다고 말한다.

이런 대학 당국의 조치에 대해 교수와 학생들 일각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학 본래의 소임인 연구, 교육 그리고 사회봉사의 기능을 시장논리와 맞바꾸고 있다는 원론적 문제제기는 차치하고라도 교수들에게 직접적인 저술활동의 기회를 제약한다는 것이다. 특히 서적이 교수들의 연구업적활동 지표로 이용되는 시점에서 지금과 같은 출판부의 부재는 중앙대 교수들의 연구활동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기획실 박윤갑 계장은 “출판부 폐지 이후에도 교수들의 출판에 따르는 지원은 계속될 것이며 출판부 운영에서 오는 적자분을 교수 연구비로 환원하는 방향도 검토 중”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지금의 폐지를 통한 출판사업운영 개선이 연구활성화나 경영적인 측면에서도 일견 효율적이라는 설명이다.

이번 폐지안에 대한 비판여론이 더욱 거센 이유는 출판부 폐지후 현재 문제되고 있는 미수금 회수나 재고도서 처리에 대한 부분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이같은 일이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출판부 폐지후에 대한 대책마련도 없이 졸속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현재 출판부 현황 자료에 따르면 출판부를 보유한 서울소재 대학 22개 대학가운데 중앙대학교 출판부는 유통도서수 1백10권으로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고려대), 건국대, 성균관대, 단국대, 동국대에 이어 8번째로 많았다. 그러나 직원수는 서울대 21명, 건국대 7명, 연세대 5명 등에 비해 중앙대는 1명에 불과했고 도서창고가 없는 유일한 대학으로 꼽혔다.

출판부 송만선 계장은 “지난해 10월부터 출판부 운영에 대한 개선안을 학교측에 요구했으나 해가 지나도록 어느 하나 시행된게 없다”고 말한다. 이에 지난 4월 출판사업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려달라는 요구안을 보냈다. 이 요구안에 따르면 △출판사업전면폐지 △존폐여부검토 △출판사업활성화 등 3안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학교측의 답변은 지난 6월 11일 ‘출판부 폐지’라는 공문으로 내려온 것이다. 송만섭 계장은 “학교측의 이러한 처사가 납득할 수 없다”며 대학출판부 활성화를 위한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대학출판부의 열악한 상황과 비추어 대학출판부 운영에 대한 문제제기는 오래전부터 계속 지적되어 왔다. 대학원신문 제77호(96.4.17일자)에서 ‘대학출판부 강화를 위한 제언’에서는 출판부 독립과 원생들까지 포함하는 지원요건의 확대 등 출판부의 전반적 구조조정을 언급한 바 있다. 또한 중대신문 제1406호(98.10.19일자)에서는 예산, 인력의 보충, 업무 전산화, 출판부에 대한 인식전환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출판부 폐지일까지 출판부 상황은 전혀 호전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출판부의 직제가 출판부(3-4명)-출판운영과(2-3명)-출판운영계(1명)으로 축소되는 등 출판부를 활성화시키키 위한 학교측의 어떠한 의지도 없었다고 판단된다.

이러한때 각 대학 출판부가 대학별로 특화한 출판 기획을 꾀하며 대학가 밖으로 독자층을 넓히고 있는 일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동안 대학출판부들은 대학 교재 출판등 한정된 독자를 대상으로 출판해왔지만 근래 몇몇 대학을 중심으로 교재 출판의 비중을 줄이면서 일반 독자대상의 학술교양서 등을 활발하게 펴내는 것이다.

특히 대학출판부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서울대는 주목할 만 한데 서울대 출판부장인 김용덕교수는 지금까지 대학출판부가 필자로부터 출판 의뢰를 받아 학술·교재·교양 관계 책을 내는 데 자족해 왔다며,현재“출판을 통해 지식사회에 적극 공헌할 수 있는 기획저서의 발간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서울대출판부와 함께 최근 활발한 출판활동을 벌이고 있는 곳은 건국대, 이화여대, 한국외국어대출판부 등이 있다. 이화여대의 경우 여성학과 유아교육,종교 등의 분야로 특화된 책들을 중심으로 16만여권의 판매실적을 올리고 있다. 특히 지난 94년 이화여대출판부에서 나온‘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은 10만부가 팔려 대학출판물 가운데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최근 연간 40종 정도를 꾸준히 발행한 건국대출판부의 주력상품은 수험생과 일반인들을 겨냥한 문고본 교양도서‘문학의 이해와 감상’시리즈는 세계문학사에 족적을 남긴 국내외 유명작가 1백20명에 대한 작가론을 다룬 것이다. 한국외국어대출판부는 대학의 특성을 이용한 외국어사전과 ‘세계문학총서’등을 기획해 성공을 거두었다.

경영난을 이유로 출판부를 폐지한 중앙대와 달리 타대학 출판부가 보여준 이러한 사례는 중앙대출판부 폐지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당위성을 말해준다.

대학개혁을 위한 일대 구조조정이 단행되고 있는 가운데 중앙대학교출판부가 그 대열에 포함되었다는 것은 앞으로 중앙대의 학문풍토조성에 해가 되지 않을까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 대학의 교육, 연구 성과물들을 생산해내고 유통시키는 것이 대학출판사의 기능이라면 대학출판사는 또한 그 대학의 지적수준을 가늠케 하는 기구이기도 하다. 진정 대학의 역할은 이 기구가 제역할을 잘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길일 것이다.

<김선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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