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 아래 땀이 비오듯 흐른다.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대원들의 파이팅 소리에 다시 힘을 얻는다.
  하늘이 노랗다. 이번 시험도 기대했던 점수는 나오지 않았다. 시험점수 뿐만이 아니다. 스펙을 위해 쌓아왔던 토익점수, 컴퓨터 자격증, 인턴십 모두 만족할만한 성과가 없었다. 친구에게 말하니 한 가지 제안을 한다. 같이 국토대장정을 떠나보자고. 마침 학교 이곳저곳에 국토대장정 홍보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그래, 한번 떠나보자. 12박 13일 동안 걸으며 내 인생의 출구를 찾아보자.
 

  6월 24일 포항 호미곶 광장. 서울에서 제3회 국토대장정 발대식을 마치고 포항으로 내려왔다. 같이 12박 13일을 걷게 될 친구들과는 서먹서먹하지만 그래도 표정은 모두 밝아 보인다. 한 명도 중간에 부상입지 않고, 탈락하지 않고 무사히 종주를 마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불어 내 미래의 표지판을 찾길 바라며.
 

  비오는 소리에 텐트에서 깼다. 모두 판초(우의)를 입으라는 스텝의 목소리가 들린다. 판초를 입고 걷는데 잔 언덕이 너무 많아 탄성이 절로 나온다. 중식은 자장면으로 해결했다. 오늘은 포항에 있는 북부해수욕장에서 숙영을 한다.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설마하며 잠자리에 들었는데 바람에 흔들리는 텐트가 뺨을 때린다. 다른 조의 텐트에는 물이 차 텐트와 침낭, 가방이 모두 젖었다. 비가 와 준비 체조와 마무리 체조도 제대로 되지 않은데다가 잠까지 설쳤다. 온 몸이 결리고 아프다.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닌데.
 

  아침이 밝았다. 어쩔 수 없이 축축한 옷과 신발을 착용하고 길을 나섰다. 어제보다 비가 더 온다. 우의를 착용해도 옷이 젖는다. 결국엔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긴급하게 버스를 불러 코스를 이동했다. 예정대로라면 포항의 월포 초등학교에서 숙영해야했지만 폭우가 내리는 바람에 그마저도 무산됐다. 학교 근처의 민박집에서 테트리스처럼 사람을 끼워 넣고 잘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나를 포함한 5명은 잠자리를 찾지 못해 스텝 방에서 같이 자야했다.
 

  다행히 날씨가 맑다. 준비운동과 마무리운동을 시작했다. 점차 우리들의 생활에 자리가 잡혀간다. 운동을 하고 자서 그런지 오늘은 몸이 개운하다. 그런데 일어나자마자 2명이 서울로 올라간다. 최초로 탈락자가 발생한 것이다. 9명은 시내의 병원으로 진찰을 받으러 갔단다. 발등의 인대에 무리가 가서 더 걷기 위험하다는 진단을 받고 시내로 간 9명 중 5명도 집으로 돌아갔다. 나도 그들을 따라 서울로 올라가고 싶어졌다. 나에게 물어봤다. 첫 마음가짐은 어디 갔냐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부끄러웠다. 이대로 올라가면 취업은 커녕 자신감만 상실한 채 살아갈 게 뻔했다. 몇 번이고 고민하다 다시 길을 나섰다. 다리는 무겁지만 마음만은 가볍다.
 

  산뜻한 마음으로 다시 출발한다. 물집 잡힌 곳이 터지고 여러 군데 파스를 붙이는 고생이 계속됐지만 이게 중간지점이라는 생각으로 한발 한발 내딛는다. 그런데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다. 비가 그쳤다 오기를 반복하니 우의를 벗었다 입었다를 계속해야 했다. 오후 8시에 울진의 불영사 계곡에 도착했지만 코스가 험난해 여기저기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이 꼭 내 인생과 닮았다. 불빛 한 점 없이 캄캄해서 무서웠지만 대원들끼리 서로서로 의지하며 숙영지에 도착했다. 드디어 반을 완성했구나. 이제 끝이 보인다.
 

  불영사 계곡에서 하루 휴식을 하고 출발했다. 날씨가 좋았다. 걷기 좋은 하늘에 시원한 바람까지 분다. 점심에는 미숫가루를 나눠줬다. 꿀맛이다. 대원들끼리 친해지니 스텝들이 본격적으로 게임을 진행하기 시작한다. 대박 상품도 기다리고 있다. 순위권에 든 조에게는 과자, 샤워1등 이용권, 초코바가 기다리고 있다. 평소에는 쳐다보지도 않던 과자였지만…… 갖고 싶었다. 간절했다. 이것이 바로 동물의 생존본능!
 

  일어나니 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제 대장정의 생활에 적응했다. 숙영지는 영월의 다구박물관 야외전시장이었다. 텐트를 치고 씻을 준비를 했지만 배수가 원활하지 않아 비누샤워가 불가능했다. 군소리 않고 물샤워로 빗물만 털어냈다. 샤워를 했다는 게 어딘가.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평창초등학교. 평창초를 숙영지로 12박 13일의 종주가 끝이 난다. ‘평창’이라는 글씨가 적힌 표지판이 보일 때마다 단원들 모두 ‘파이팅!’을 외친다. 평창군청이 보이고 드디어 평창초에 도착했다. 군청 직원들이 앞마당에 나와 우리를 반겨주신다. 전 스텝이 앞으로 뛰어나갔고 총장님, 부총장님과 손뼉을 마주치며 우리의 대장정을 모두 마쳤다.
 

  눈물이 흐른다. 종주기간 흘렸던 눈물과는 뭔가 다르다. 기쁨의 눈물도 아니요, 슬픔의 눈물도 아니다. 뭐 하나 제대로 해낸 적 없는 내가 처음으로 이룬 성취의 눈물이다. 자신감이 생겼다. 2주의 고난을 이기니 이제 뭐든 할 수 있다.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샘솟는다.

 

  이 기사는 국토대장정 대원들의 경험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 취재에 도움주신 분 : 김규석(전자전기공학부 3), 김지선(건축학부 4), 김태형(경영학부 2), 박현찬(기계공학부 4), 윤자영(일어학과 3), 황은미(민속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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