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에 입사한지 어언 2년. 이번 주가 지나면 내정자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떠나야한다는 사실이 새로운 감회로 다가온다. 끝이라는 아쉬움 반, 또 다른 시작이 기다린다는 설레임 반. 여느 학보사 기자들처럼 임기만료하는 선배들을 바라보며 언제쯤 그런 날이 올까 더듬어 봤었는데 마지막 칼럼을 끄적이고 있는 지금 이순간도 신문사는 후배들의 웃음소리로 여느 때와 다름이 없다. 수습기자 모집을 보고 중대신문을 두드렸으나 평탄치 않았다. 안성캠의 유일한 여자 동기는 입사한지 일주일도 채 안되어 나갔고 기장을 자처한 동기는 군입대를 이유로 쥐도새도 모르게 떠났다. 풋내기 시절, 마음대로 취재하다 크게 데여 잠 못 이뤘고 기사마감에 쩔쩔매 금요일과 토요일을 밤새가며 기자들과 삭아갔다. 그렇게 나의 청춘은 사람들과 부대낀 추억들로 여물었다. 갈등을 좋아했다. 갈등을 다루는 기사를 취재하며 줄타기하는 기분이 유독 짜릿했다. 그래서 2년 동안 취재한 기사의 반 이상은 갈등취재였나 보다. 갈등이 첨예한 취재를 나설 때면 기도를 하곤했다.

어떤 결말이 나오든 ‘끝장을 보았으면’하는 바람을 담아. 당사자들의 다툼을 중계만하기 싫었다. 양측을 객관적으로 담아 사건의 진척을 이끌어내 자연스레 여론이 형성되길 바랐다. 사실 이왕 시작한거 끝은 봐야하지 않겠냐는 개인적인 욕심이 가장 컸다. 그나마 발품을 팔았던 시절 매듭지은 몇 개를 회고한다. 3일 동안 학교에 머물며 안성캠 총학생회장 선거의 부정투표자를 밝혀냈고 방호원과 미화원들에게 매년 금품 헌납을 요구하며 주요 보직을 마음대로 결정했던 소장을 해고로 끝냈다. 이후 편집장을 역임하며 취재지시와 편집의 일선에서 직접 취재한 기자만이 느낄 수 있는 경험은 후배기자들의 몫으로 돌렸다. ‘어떤 기사를 만들어볼까’ 두근두근했던 그때의 기억은 희미해져만 갔다.

마지막 신문제작 주. 기사마감을 앞둔 금요일 밤. 한 후배기자가 반값등록금 시위 현장에 다녀왔으나 사진이 별로라고 토로했다. 뜻밖에 시위현장으로 자원하려는 기자가 나오지 않았다. 취재 현장에 대한 두근거림이 다시금 나를 깨웠다. ‘이제 끝나는거 언제 이렇게 다시 불태워보겠나.’ 결국 강제로(?) 사진기자단 몇몇을 꾸려 광화문으로 향했다. 경찰과 대치하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인 그들은 가두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반값등록금 공약을 어긴 것에 항거하여 시위에 나선 대학생들은 7일째 울부짖고 있었다. 그들의 외침이 지면에 담겨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후배들과 셔터를 눌렀다. 학생기자 신분으로 나섰던 나의 마지막 현장취재는 이렇게 끝났다. 비록 이번 시위의 끝장을 보지 못했지만 이젠 학생으로서 시위에 참가해 마침표를 찍어보련다. 그간 스쳐지나간 고마운 인연들을 기억한다. 조금 더 신경쓰지 못했던 아쉬움과 소홀함으로 비롯된 미안함은 복합적인 감정을 자아낸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나에게 주어졌던 작은 맺음을 끝으로 새로운 끝맺음을 찾아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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