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열정의 자유를 허락하라

 섭외 전화를 하다보면 간혹 인터뷰를 꺼리는 이들이 있다. 시간이 없다든지, 지면의 성격과 자신의 삶이 부합하지 않는 것 같다든지, 자신이 인터뷰할 인물이 되지 못한다든지. 여러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런다고 섭외를 포기하는 것은 기자의 도리가 아닌지라, 어떻게든 섭외에 성공하고자 애를 쓴다.
 

   하지만 얼마 전, 노력에 대한 기자의 의지를 한 번에 꺾은 일이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어떤 분께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분은 거절했다. 기자가 다시 한 번 읍소했지만 그의 대답에 말문이 막혔다. “제가 이제껏 해왔던 활동이 취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 같아요. 제가 한 일들이 어떻게 평가될지 사실 두렵습니다. 그 일들을 드러내는 것이 좀 꺼려져요.”
 

  사회가 20대에게 청춘의 자유를 누릴 틈새를 주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일찍이 ‘어쩔 수 없는 사실’로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회가 청춘의 열정과 자유에 간섭한다는 것을 새로운 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됐다. 씁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는 이 사회가 청춘의 자유를 외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배척하기에 이른 것일까.
 

  조지 오웰의 『1984』에 등장하는 텔레스크린과 같은 것이 우리 사회에도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가 순수한  자유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사회의 CCTV에 다 찍히고 있는 것일까. 이제는 청춘의 자유까지도 사회가 원하는 내용으로 즐겨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일까. 그렇다면 진정한 자유는 어디로 간 것일까.
 

  우리는 청춘의 열정과 자유를 불사를 권리가 있다. 하지만 청춘의 시기에 즐겼던 자유가 훗날 사회에 나갔을 때, 사회의 기준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것이 현실인가 보다. 결국, 현재의 자유를 즐기는 데 수많은 제약이 따른다.
 

  이제는 인터뷰 때, 고정 질문을 두려고 한다. “청춘을 자유롭게 즐기는 것이 두렵지 않으신가요?”
  

 

 학술문화부 팀장 송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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