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서라벌홀 814호 첨단강의실에서 제139회 중앙 게르마니아가 열렸다. 이 날 발제를 맡은 조윤경 교수(이화여대)가 ‘초현실주의와 초육체성’을 주제로 게르마니아를 진행했다. 조 교수는 주제 선정에 대해 “초현실주의가 몸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우리에게 낯섦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초현실주의라고 하면 회화부터 떠올린다.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몸의 일부를 뒤집어서 표현하거나 원구로 얼굴을 표현함으로써 분열되고 파편화된 몸을 나타내기도 한다.
 초현실주의 회화는 ‘우아한 시체 놀이’로 완성된다. 우아한 시체 놀이란 다른 사람이 그린 각각의 부분 그림을 합치는 놀이다. 르네 마그리트의 좰인어좱는 물고기 윗부분과 사람 다리를 통해 혼종성의 몸을 보여준다. 우아한 시체 놀이는 우리의 잠재된 무의식을 깨운다. 루이스 브뉘엘의 영화 좰안달루시아의 개좱는 남자가 여자의 눈을 잡고 면도칼로 자르는 행위을 통해 우리에게 ‘일상의 눈을 단절하고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라’고 말한다. 즉, 내면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는 의미다.
 초현실주의 회화의 특징은 ‘머리’를 왜곡한다는 점이다. 머리가 이성을 상징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살바도르 달리의 좰몸의 확대와 끝없는 왜곡좱에서 머리는 남성의 성기로 표현된다. 또 다른 작품인 좰탐욕스러운 몸과 먹을 수 있는 몸좱은 나체인 두 남녀가 서로를 잡아먹는 그림이다. 인간의 식욕과 성욕을 동시에 그려냈다. 식욕과 성욕이 별개의 본능이 아닌 하나의 본능인 것이다.
 또 우아한 시체 놀이는 경계를 규정하지 않는다. 한 예로 르네 마그리트의 좰풍경으로써의 몸좱을 들 수 있다. 이 그림은 여성의 엉덩이를 여러 개 그려냄으로써 파도와 갈매기를 표현했다. 엉덩이 라인과 파도, 갈매기의 형태가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자연과 인간은 각각의 존재가 아니라 서로 연결된 존재라는 게 증명된다. 우아한 시체 놀이가 회화로만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글쓰기를 통해서도 표현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적은 각각의 문장 성분을 연결하면 문장이 완성된다. 글쓰기에서의 우아한 시체 놀이는 ‘그림을 그리는 야채는 산을 바다를 몹시 달려갔다’, ‘우아한 시체가 새 술을 마실 것이다’ 처럼 문장 성분은 다 있지만 주술이 호응되지 않는 문장을 말한다.
 로베르 데스노스는 정신병자가 다섯 손가락에 맞춰 5번 반복하는 모습을 보고 좥사탕좦이라는 시를 썼다. 이 시는 신체의 부분 부분을 언급함으로써 현실에서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표현한다. 이처럼 초현실주의는 일반인들이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에서 발견된다. 
 많은 사람들이 초현실주의를 현실을 초월한 즉, 현실을 탈피한 사상으로 알고 있다.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초현실주의는 현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사상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극도로 증대된 현실이 초현실이다. 앞에 언급된 예들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초현실주의는 ‘몸’, ‘문장 성분’ 등과 같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에서 시작된다.
 초육체성도 이런 부분에서 초현실주의와 일맥상통한다. 벵자멩 페레는 시 좥기억들좦에서 ‘곰 한 마리가 젖가슴을 먹어치웠다’, ‘젖가슴으로부터 암소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라는 문장을 통해 신진대사로 몸의 신비로움을 표현했다. 또, 동시에 곰과 암소는 사물의 경계가 규정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젖가슴이라는 신체부위에서 암소가 배설되었다는 것을 통해 우리는 초육체성이 완전히 육체를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기반으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위치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것은 가장 정점에 이른 육체성을 지칭한다. 육체성이 정점에 이르게 되면 영혼과 육체 같은 이분법을 넘어 넓게는 이상과 현실, 현실과 상상, 의식과 무의식을 아우르게 된다.
 이렇게 초현실주의와 초육체성은 존재하는 것에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움’을 더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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